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특정 국가나 지역 출신에 대한 혐오, 차별적 발언이 일상으로 퍼지고 있다.
만약 올 하반기까지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사회는 이방인을 어떻게 인식할까? 전망은 비관적이다. 감염의 해외 유입을 막기 위해 각국이 앞다퉈 국경을 높이고 있지만, 그 앞에서 좌절하는 난민들의 목소리는 벽을 넘기 어렵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바이러스의 확산은 공공정책이 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이라도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단속의 위협 없이 검사받을 수 있고, 감염됐다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는 ‘미등록 외국인’도 신분 걱정 없이 마스크를 공급받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국가기관이 ‘불법체류자’라는 멸칭(蔑稱)에 가까운 용어를 쓰지 않고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최초의 사례로 보인다. 물론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는 국제표준에 맞춰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도 방역 정책의 대상에 포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이 발언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마땅히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회 구성원의 범위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확장되리라 본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결정은 ‘사회 구성원이 될 자격’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진정 대상인 피해자들은 국내에서 출생한 미등록 이주 청소년이다. 이들은 법무부의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 방안’ 지침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부모와 함께 강제 퇴거가 유예됐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다시 강제 퇴거 대상이 됐다. 법무부는 이 청소년들을 장기간 체류 자격 없이 한국에서 체류한 ‘불법체류자’로 분류하지만, 체류 자격 없이 한국에서 성장한 건 이들의 선택이나 책임은 아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공교육 과정을 이수하며 성장했고 대한민국의 언어, 풍습, 문화, 생활환경 등에서 자아와 정체성을 확립한 ‘한국 사회 구성원’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청소년들이 강제 퇴거되면 최소 5년간 재입국이 금지됐다. 체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절차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피해자들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상시적 제도가 없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 퇴거 조치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봤다.
이 청소년들은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들을 보며 사회 구성원의 자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본다. 비록 미등록 상태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성장해 정체성을 형성하고 공교육을 모두 이수했다면 사회 구성원의 자격을 주는 것이, 즉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이미 많은 선진국은 이러한 아동 청소년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장기적인 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입국해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장기간의 불법체류’는 이들이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간이기도 했다.
공동기획 |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재단법인 동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