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칼럼] 한국서 50년 살았어도 ‘장애인 등록’ 안 해주는 정부

A씨는 중증 지적 장애인이다. 나이는 50대 초반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계속 생활하였다. 현재 시설에서 머물고 있는데 조만간 그가 지내는 시설이 폐쇄될 예정이다. 이 경우 다른 시설로 옮겨갈 수도 있고, 시설에서 독립해 생활할 수도 있다. A씨는 식사 및 이동을 혼자서 할 수 있고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애인 활동지원 등이 제공된다면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이 시설 내 사회복지사들의 판단이다. A씨도 국가의 지원을 받아 자립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한다. 중증 장애인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은 장애인의 생존권을 충분히 보장해 줄 수 있는 예산과 행정력을 갖춘 국가다. 그러나 이런 A씨의 소박한 목표가 좌절될 위기에 처했다. A씨가 미등록 체류 상태의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화교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중화민국(대만)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만, 비자 없이 생활한지 오래다. 어렸을 때부터 시설 안에서만 살아온 A씨에게 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비자가 없으니 귀화할 수도 없다. 한국 국적이 없으니 생계급여를 받을 수도 장애인 등록도 될 수도 없으며, 생존을 위한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지금 머물고 있는 시설에서는 직원들의 사비를 보태어 A씨의 의식주를 지원하고 있으나, 조만간 시설이 폐쇄되면 이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고 장애인 등록이 안 되어 있는 A씨를 다른 시설에서 받아줄 가능성은 적다. 무엇보다 A씨의 탈시설에 대한 욕구, 즉 독립된 주체로서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싶다는 의사가

[모두의 칼럼] 법무부의 난민법 개정안, 피해자 양산이 우려된다

이 칼럼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과분하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마땅히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들의 기회를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가로채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권리를 침해당한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공간은 제한적이다. 특히 난민신청자들의 목소리가 일반 대중에 닿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은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출입국·외국인청의 ‘선처’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처지다.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어렵다. 외국인의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출입국관리법은 난민신청자들의 집단행동을 제약한다. 참다못해 나오는 이들의 호소는 극단적인 단식 농성을 할 때나 간간이 우리의 귀까지 미치고, 가뭄에 콩 나듯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법원의 판결문에 흔적을 남길 뿐이다. 지난해 10월 15일 공개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문(18진정0572400)을 읽다 보면 그동안 눌려 왔던 난민신청자들의 목소리들이 뾰족하게 튀어나온다. “제가 첫 번째 난민면접에서 ‘단지 일자리를 찾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으며 이집트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진술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치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제 난민면접조서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절망감이 듭니다. 저는 한국을 믿었습니다. 한국 같은 문명국은 (본국인) 수단과 달리 정당한 대우를 해줄 줄 알았습니다.” 법무부가 설명하는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지난 2015~2017년 일부 아랍어권 난민신청자들의 난민면접 과정에서 진술하지 않은 내용이 면접조서로 작성됐고, 이에 근거해 난민지위가 인정되지 않았지만 극히 일부의 일탈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다르다. 법무부는 당시 시행 중이던 ‘난민심사 적체 해소방안’에 따라 매달 할당된 목표 건수를 채우기 위해 다수의 난민신청자를

[모두의 칼럼] 인신매매 퇴치와 근절을 위해

2020년 한국에는 여전히 인신매매 피해자가 존재한다. 유엔이 2000년 채택하고 한국이 2015년 비준한 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 따르면, 현대적 의미의 ‘인신매매’는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 파는 경우뿐 아니라 착취를 목적으로, 납치, 속임수 등 사람의 취약한 지위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모집, 운송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이 정의에 따라 사실상 노예상태에서 놓여 있었던 ‘염전 노예 사건’의 피해자는 물론이고, 여권과 통장을 압수당해 선상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 외국인 어선원들도 인신매매 피해자로 분류된다. 그 외에도 인신매매 피해가 가장 문제되는 집단 중 하나는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들이다. 이들은 무대에서 공연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예술흥행비자’로 입국했지만, 실제로는 업주의 강압으로 유흥업소에서 성매매 등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사례는 1990년대말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발생해 왔다. 초기에는 러시아, 이후에는 주로 필리핀 국적 여성들이 예술흥행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후 피해 사례가 발생했다. 몇 년 전부터는 관광비자로 입국해 마사지업소 등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태국 여성들의 숫자가 부쩍 증가하고 있다. 작년에는 여러 명의 브라질 여성들에게 ‘한국에서 연예인을 하게 해주겠다’라고 속여 한국에 입국하게 한 다음 성매매를 강요한 사례도 있었다. 국적이 달라도 피해사실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업주가 바로 인계해 여권을 압수하기도 하고, 자신이 출입국 공무원들과 친하고 지역의 ‘마피아’들과도 잘 아는 사이라 도망쳐도 소용 없다는 협박을 한다. 성매매를 직접적으로 강요하지 않더라도 비자를 받기 위해 많은 돈을 썼으니 빚을 빨리 갚아야 한다고 한다고 윽박지른다. 또 업주가 정한 일일 매출 기준을 채울 때까지 퇴근하지 말고 일하라는 식의 강압적인 분위기를

[모두의 칼럼] 출생신고 되지 않은 아이들

몇 년 전 약 15개의 시민단체가 결성한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모든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등록이 되어야 한다는 ‘보편적출생신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신고’라는 이름의 캠페인이었다. 활동가들은 열띤 토론 끝에 캠페인 이름을 정한 후, 가장 적절한 이름을 찾았다며 기뻐했다. 출생등록은 다른 모든 권리를 누리기 위한 첫 단추다. 출생등록이 되지 않으면 법률상의 신분 증명이 어려워진다.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에서도 누락돼 학교에 보내지 않더라도 확인하기 어렵다. 출생등록이 되지 않으면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어 의료 혜택에서도 배제된다. 현재 우리나라 가족관계등록법은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게 일임하고 있다. 또 부모가 신고하지 않는 경우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감독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출생등록이 되지 않는 경우이다. 혼인 중 출생한 자녀는 법률상 남편의 자녀로 추정되기 때문에 실제 부(父)를 기재해 출생신고 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혼부의 출생신고도 모(母)의 개인 정보 일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쉽지 않다. 한국 국적이 없는 아동은 출생신고 할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혀 있다. 가족관계등록법상의 출생신고는 원칙적으로 한국 국적이 아닌 외국인에 대해서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다수의 국제 인권 조약 기구가 우리 정부에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아동에게는 ‘출생등록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한국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이 지체 없이 출생등록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큰 변화는 없었다. 미혼부도 출생신고 할 수 있도록

[모두의법] 사회 구성원의 자격과 미등록 이주 아동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특정 국가나 지역 출신에 대한 혐오, 차별적 발언이 일상으로 퍼지고 있다. 만약 올 하반기까지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사회는 이방인을 어떻게 인식할까? 전망은 비관적이다. 감염의 해외 유입을 막기 위해 각국이 앞다퉈 국경을 높이고 있지만, 그 앞에서 좌절하는 난민들의 목소리는 벽을 넘기 어렵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바이러스의 확산은 공공정책이 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이라도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단속의 위협 없이 검사받을 수 있고, 감염됐다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는 ‘미등록 외국인’도 신분 걱정 없이 마스크를 공급받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국가기관이 ‘불법체류자’라는 멸칭(蔑稱)에 가까운 용어를 쓰지 않고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최초의 사례로 보인다. 물론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는 국제표준에 맞춰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도 방역 정책의 대상에 포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이 발언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마땅히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회 구성원의 범위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확장되리라 본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결정은 ‘사회 구성원이 될 자격’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진정 대상인 피해자들은 국내에서 출생한 미등록 이주 청소년이다. 이들은 법무부의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 방안’ 지침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부모와 함께 강제 퇴거가 유예됐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다시 강제 퇴거 대상이 됐다. 법무부는

[모두의법] 전염병과 국가의 보호의무

출근길 지하철을 타니 주변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온 공포를 실감한다. 외부에서 오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종종 ‘바깥’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에 대한 배타와 차별로 이어진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후진적인 중국의 식문화를 성토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NO CHINA”를 선언하며 중국인 출입을 막는 가게들도 생겨났다. 미지의 병에 대한 공포와 생존에 대한 갈망은 본능에 가깝다. 문제는 공포가 타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는 기제다. 혐오 정서에 편승하고 부추기는 몇몇 언론의 모습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림동을 가보니 실로 위생상 문제가 많았다”는 ‘르포’ 기사가 버젓이 언론매체에 실리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소환한다. 몇 년 전 메르스 방역의 실패는 지난 정권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는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즉흥적인 여론에 즉각 호응하는 것만이 국가의 보호의무일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불필요한 공포의 확산을 막고, 방역에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국가 3부 기관 중 하나인 입법부의 모습은 어떠한가. 일부 국회의원은 혐오 여론에 재빨리 편승해 ‘중국인 입국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2018년 제주도 내 예멘인 난민신청이 불러온 ‘법안 발의 러시’와 비슷한 행태다. 당시에도 ‘대중 추수주의’를 넘어 ‘혐오 추수주의’에 가까운 법안들이 우후죽순으로 발의됐다. 대부분 난민의 권리와 생존을 제한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에 올라간 법안은 전무하다. 이번 입국금지 법안 등도 혐오정서의 불쏘시개로

[모두의법] “종교 활동 금지도 박해” 난민 심사 일관성 유지해주길

로마 제국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 대상이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도시의 수호신을 경배하지 않아 기존 사회 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고 신앙을 숨겼다면 위해를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로마 지하 카타콤에서 몰래 ‘안전하게’ 예배를 드리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2000년대 초반 미국의 한 난민 소송에서 법원은 초기 로마제국 기독교인들의 사례를 예로 들며 ‘종교의 자유’에는 ‘종교 활동의 자유’도 포함한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제시한 바 있다. “초기 로마제국의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종교 생활을 했다면 사자 밥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로마제국이 기독교인을 박해하지 않았다거나, 자신의 종교를 숨기지 않은 기독교인이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한국 법원에서도 ‘종교 활동에 대한 자유’의 침해를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난민의 손을 들어줬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운 결정이다. 작년 한 해만 1만6000명이 넘는 난민 신청자가 있었지만, 50여 명만 최종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인정률이 1%도 되지 않는 셈이다. 법원에서 난민 신청자의 승소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는 점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건에서의 원고는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 국적 난민 신청자였다. 법원은 이슬람교가 국교인 이란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배교 행위’로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는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과, 십자가를 착용하는 등의 공개적인 종교적 표현과 전도 행위 등도 정부 탄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