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자원봉사자 3인 인터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에서 활약할 자원봉사단이 공식 출범했다. 지난달 8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발대식에서 1000여명의 봉사자들은 선서문을 낭독, 대회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발대식에는 주인공인 자원봉사자들과 이희범 조직위원장,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 정만호 강원도 경제부지사, 심재국 평창군수, 김영진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얼마 전 직무배정을 받은 자원봉사자들은 자원봉사 서비스 수준을 극대화하기 위한 직무교육과 현장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교육을 마친 자원봉사자는 올림픽의 경우 2018년 1월1일부터 최대 59일, 패럴림픽의 경우 2월19일부터 최대 31일간 본격 활동한다.
자원봉사자는 선수와 관광객이 가장 먼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올림픽의 얼굴’로 통하기도 한다. 1988 서울올림픽의 경우, 2만7000여 자원봉사자가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총 2만24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약할 예정이다. 많은 자원봉사자가 모인 만큼 저마다의 사연도 다양하다. 시니어 통역 봉사자 김경룡씨, 다문화 가정 출신 중국어 통역 봉사자 심채평씨 그리고 패럴림픽 봉사자로 활약할 장애인 육상 선수 하태규씨에게 올림픽과 봉사의 의미를 물었다.
◇“시니어의 저력,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보여줄 것”
김경룡(72)씨에게 ‘봉사’는 아주 친숙한 단어다. 2004년 한국은행 은퇴 후 꾸준히 영어 교육 및 통역 봉사를 해오고 있는 그는, 현재 각 지역 복지관에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역사 및 영어 강좌를 9년째 이어오고 있다. 또 무료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NGO인 bbb코리아의 통역 자원봉사자로 15년째 활동 중이다.
“처음엔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어요. 다시 직업을 가지자니 육십 넘은 사람을 신입으로 받아줄리 만무하고 집에서 가만히 있자니 자괴감이 들더라고. 그러다 주변에서 지역 복지관에서 영어강의를 해보라고 제안했는데 이거다 싶더라니까. 내가 한국은행을 다니면서 독일, 미국 등 해외 파견과 다수의 컨퍼런스 발표 경험 덕분에 영어는 좀 하거든요. ‘나도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뿌듯하더라고요.”
봉사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고 있다는 김씨,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인생 후반에서야 나를 되돌아보고 세상을 배우고 있다”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 또한 내게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처음 나이 때문에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이에 자원봉사 대신 평창 동계올림픽에 파견될 외국인 자원봉사자의 심사를 맡았다. 그러나 자원봉사자 후보들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봉사자로 함께하고 싶다는 열정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마음이 시키는 일을 거부할 수 없었던 김씨는 bbb코리아의 단체 통역 자원봉사자로 신청했다.
“젊은 사람들에 비해 내가 통역을 잘 하지 못할까봐 포기하려 했어요. 그런데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만의 올림픽이에요. 내 여생 중 우리나라가 개최할 국제 경기에서 봉사를 할 일이 또 있겠어요?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는 청년시절의 도전정신과 열정을 다시금 불러일으켜 줬습니다.”
올림픽에서 젊은이 못지않은 시니어의 저력을 보여줄 거라는 김씨는 통역은 물론 한국 음식, 관광지, 역사 등 문화를 알려줄 책자도 만들어 외국인 관광객에게 나눠줄 계획도 세웠다. 그는 내년 1월부터 3월 중순까지 57일간 안내데스크에서 풀(full)타임 통역 봉사를 할 예정이다.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경직된 한중관계 풀리길”
중국에서 온 다문화 주부 손채평(39)씨는 2000년 남편과의 결혼 이후 중국에서 13년을 살다 4년 전 한국으로 이주했다. 아직 한국어가 서툴러 여러 불편이 있지만 이보다 더 힘들었던 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는 자괴감과 타향살이의 외로움. 친구 하나 없던 손씨는 남편과 세 아이들이 집밖을 나서면 홀로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고모와 함께 봉사를 다니면서부터 외로움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봉사를 통해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 생긴 것. 현재 독거노인의 주거 청소 및 목욕봉사를 하는 그는 “몸은 힘들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귀여움도 받고 친구를 사귈 수 있어 봉사를 할 땐 늘 행복하다”고 한다.
특히 이번 동계올림픽 자원봉사는 심씨에게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동안 사드 문제로 냉각된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어요. 서로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 하는데 그게 한동안 잘 안됐잖아요.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중국어 통역 봉사를 하면서 이런 부분도 잘 설명하고 싶어요.”
그는 “언어와 문화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나의 마음이 올림픽 정신과 맞닿아 있어 한국인으로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것이 뿌듯하다”고 했다.
또 2022년 열릴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중국에서 펼쳐질 올림픽에서는 통역 관련 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손씨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정선 알파인스키장 내 경기장 물품정리를 돕는 역할을 맡았다”며 “4년 뒤 한국어 실력을 제대로 갖추고 나면 중국에서 한국인을 돕는 봉사를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국가대표 장애인 육상선수의 꿈, 봉사 통해 한 발짝 더”
“언젠가는 저 트랙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할 저를 상상해 봅니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하태규(24)씨는 24년간 장애와 함께 살아왔지만 누구보다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청년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운동장 트랙을 돌 생각만 하면 저절로 미소 지어진단다.
그는 오른쪽 팔과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왼쪽 뇌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신경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올 4월 평택대학교에서 재활상담학을 전공하던 중, 우연히 장애인체육 전담 코치의 눈에 들어 육상에 입문했다. 그는 “취미로 시작한 육상이었는데 문득 ‘이렇게 달리는 게 좋은데 달리는 것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후 서울시 장애인 육상 선수팀에 들어가 훈련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올해 10월, 큰 기쁨을 누리는 동시에 굳은 결심도 했다. 5개월간 갈고 닦은 실력으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서울시 대표로 첫 출전, 100m와 200m 단거리 육상에서 각각 은메달의 영광을 안은 것. 이와 함께 내년 열릴 평창 패럴림픽에 자원봉사자로 지원할 계획도 세웠다. 장애인 육상 국가대표가 목표인 그에게 동계패럴림픽 자원봉사는 단순 봉사를 넘어 큰 경기를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 이에 하씨는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의 성화봉송 주자와 자원봉사자를 모두 신청했고 지난달 29일 전북 임실에서 성화를 봉송했다.
“전국체전 이후 평창 동계패럴림픽 자원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어요. 패럴림픽에서 열정과 도전정신을 보여줄 장애인 선수들을 가까이서 보고 운동선수로서의 직업정신과 의지를 다질 수 있으니까요.”
내년 열릴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뛸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그는 패럴림픽 기간 강릉 컬링경기장에서 관중 안내 자원봉사를 맡는다. 하씨는 “이곳저곳을 다니고 오랫동안 서 있어야 해서 팔과 다리 힘을 강화하는 운동을 하고 하루에 1시간씩 영어 회화공부를 하는 중”이라면서 “나도 지체장애 3급 장애인이라 장애인들의 불편한 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만큼 패럴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자원봉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계올림픽만 1만6000명, 패럴림픽 6400명 등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는 총 2만2400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한다. 2만2400명을 뽑는 자원봉사에 무려 9만1656명이 몰려 4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자원봉사요원은 내국인만 선발하는 게 아니다. 외국인(재외동포 포함) 1000명도 선발했는데 10배수가 넘는 약1만2000명이 지원해 그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온라인 및 오프라인 교육을 받아 1월 말부터 3월까지 각 자리에 배치돼 활동하게 된다.
789
이관우 평창 동계올릭핌 조직위원회 자원봉사 팀장은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의 특징을 숫자로 ‘789’라고 설명했다. 78%가 여성, 89%가 20대라는 의미다. 그만큼 전체적인 분위기가 젊고 활기찬 것이 특징이다.
10시간 · 107회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의 또 다른 특징은 직접 대면교육을 했다는 것이다. 국제 대회의 자원봉사자 교육은 통상적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 평창의 자원봉사자들은 10시간의 대면교육을 이수했다. 이를 두고 이 팀장은 덕분에 평창동계올림픽의 열정과 영감을 자원봉사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심어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팀장은 “내심 자원봉사자들이 신청만 하고 교육은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걱정을 했는데 교육 첫날 200명 중 198명이 참석했다”면서 “모두 107회의 교육이 진행됐는데, 최종 이수자 비율이 89.2%로 자원봉사자들의 열정에 저희 직원들 모두가 놀랐다”고 이야기했다.
16세 · 88세
평창 동계올림픽 최연소 봉사자와 최고령 봉사자의 나이이다. 이 둘은 무려 72년이 난다. 이 팀장은 “88세의 어르신이 최고령 자원봉사자이고 2002년생인 16세 중학생이 최연소 자원봉사자”라면서 “최고령 자원봉사자는 88년 서울올림픽을, 2002년생인 중학생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떠올리게 해 자원봉사자 기록을 하면서 직원들이 신기해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