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우주강국 환호에 가려진 탄소배출

얼마 전, 한 커피 브랜드에서 일회용 컵 사용 절감이라는 친환경 메시지를 담아 진행한 굿즈 마케팅이 연일 이슈였다. 지난주에는 정부에서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을 향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발표하며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린워싱, 택소노미, ESG 등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리스크에 대한 단어는 연일 언론에 등장하는 단골 주제가 되었다. 환경운동의 영역에서 그린워싱은 198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하는 등 그 역사가 오래된 표현이다. 지난 수십 년간 잠잠했으나 이제는 폭발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는 ESG에서도 일찌감치 환경요소를 가장 먼저 내세워왔다. 고객들 역시 가격이 비싸더라도 친환경 상품이라면 기꺼이 구매한다는 연구 결과도 이어진다. 특히 기업의 목적을 사회의 개선으로 보는 등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들이 경제 활동의 주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소비자 행동주의 역시 강화될 전망이다. 무엇이 친환경인 척하며 포장하는 행위인지에 대한 문제는 계속 지적되어왔다. 애매모호한 주장이나 부적절한 인증라벨을 통해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특별히 환경적이지 않지만 다른 제품보다 환경적이라고 주장하는 등의 그린워싱에 대한 사례나 정부나 시민사회단체에서 발표한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은 해를 거듭하며 계속 언급됐다. 금융시장에는 예상치 못한 변화로 자산가치가 하락하여 부채로 전환되거나 상각해야 하는 자산을 일컫는 좌초자산이라는 말이 있다. 최근 에너지 기업들을 중심으로 신규 석탄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거나 기존의 석탄 발전소를 매각하는 등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은 고탄소 자산들은 좌초자산이라는 평가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들도 이어진다. 친환경이기에 금융시장과 고객들로부터 선택받지만, 그것이 허위이거나 과장된 것이라면 한순간에 좌초자산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간의 그린워싱이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CSR 전략과 ESG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 CSR과 ESG의 본질은 같다. 기업이 법적, 윤리적,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다함과 동시에 기업을 둘러싼 사회 및 이해관계자와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CSR이라면, 이를 측정하는 지표가 바로 ESG다. ESG가 주목받기 이전부터 CSR 가이드라인은 이미 존재했다. 2010년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인 ISO26000, 2006년 농구화 제조사 앤드원의 바트 훌라한이 설립한 B-Lab에서 좋은 기업으로 인증하는 B-Corp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ESG는 이러한 기존의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투자자 관점에서 친환경 경영, 사회 책임 경영, 올바른 지배구조의 투명경영 등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를 측정하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트렌드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애플, 아마존, 구글 등 플랫폼 기반의 거대기업의 무형적 비재무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기업의 평판, 브랜드, 인적자본, CEO의 역량 등 기업의 무형적 가치는 재무적 가치와 같은 글로벌 표준이 부족했다. 기업의 재무적 가치는 제품과 서비스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로서 매출, 영업이익 등 글로벌 표준화된 회계기준과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연간보고서 형태로 의무 공시되는데, 비재무적 가치는 체계적인 측정 및 공시 시스템이 부족했다. 따라서 블랙록이나 모건스탠리, 연기금과 같은 거대 금융자본과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환경, 노동인권, 안전보건, 공급망 관리, 지역사회 관계 등 비재무적 가치가 측정 가능하게 관리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재무적 가치의 중요성 확대와 기관투자자의 필요성이 코로나19·기후위기와 맞물리면서 CSR과 지속가능경영의 측정 지표인 ESG 브랜드로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도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
[모두의 칼럼] 미래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나요?

2020년부터 2030년까지 가장 빠른 속도로 종사자가 늘어날 직업은 뭘까. 최근 미국 노동통계국(The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이 관련 리포트를 발표했다. 리포트에 따르면 1위는 풍력발전 기술자, 2위는 숙련 간호사, 3위는 태양광 설치 기술자, 4위는 통계학자, 5위는 물리치료 보조사였다. 다음 순위로는 정보 보안 애널리스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가정 및 개인 간호 보조사, 의료 및 건강 서비스 매니저, 의사 보조사 등이 언급되었다. 에너지 분야, 데이터 및 보안 분야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헬스케어 분야가 10위권에서 무려 네 자리나 차지한 점이 퍽 놀라웠다. 기후위기로 인류의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이 바뀌고 자동화와 디지털화 덕분에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동시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새로운 노동 수요가 창출되는 것도 당연하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특히 가정 및 개인 간호 서비스 종사자가 2030년까지 100만명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아갈 거라며 걱정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여전히 많고 심지어 새로운 직업도 다수 생길 거란 전망에 조금 희망적인 마음을 갖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래의 직업, 일자리, 노동을 이야기할 때 개인이 마주하는 진짜 문제는 일자리 수 감소가 아니다. 기존의 일과 새로운 일 사이의 ‘기술 격차(Skill Gap)’를 줄이는 것이다. 우리가 일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동안은 내가 보유한 기술과 최신 기술 사이의 갭을 최소화해야 한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메워야 하는 갭은 점점 넓어진다. 맥킨지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일하는 사람들의 커피

90년대 초반, 대학생 농촌활동을 위해 충남의 한 지역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농민과 학생이 연대한다’라는 모호한 말보다는 넓은 밭에 가지런하게 심겨진 푸른 먹거리들을 구경하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밭을 보면 그 댁 어르신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듯 반듯하게 정리된 들판은 그 자체로 예술품이다. 한번은 농민회 아저씨가 학생들 고생한다며 간식을 들자고 청했다. 집에 계신 아주머니께 전화를 한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읍내 다방 마담이 커피 보온병과 커피잔을 가지고 나타났다. 뾰족한 힐을 신고 논두렁 길을 걸어왔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병에서 커피 프림 등을 한 숟갈 뜨면서 아저씨, 아주머니와도 친하게 이야기했다. 여러 잔의 커피를 사람 수에 딱 맞게 만들더니 “아저씨, 나 지금 바빠서, 저기 배달 좀 갈게. 학생들 좀 있다가 봐” 한다. 대학생들이 이렇게 시골에 나타나면 귀한 손님 대접한다고 아저씨들은 안 하던 일을 벌이신다. “맛있지유?” 아저씨가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물으시는데, 여자 종업원이 따라 주는 커피를 어린 여자인 내가 손님이 되어 먹는 것이 편할 리 없다. 1987년 커피 수입자유화 조치로 원두커피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인스턴트 커피는 여러 활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커피 매장은 ‘카페’와 ‘다방’으로 나뉘어 각각 원두와 인스턴트 커피를 팔았다. 다방들은 고급 이미지의 원두커피에 상대할 힘을 얻기 위해 ‘음악다방’이나 ‘티켓다방’으로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래방의 등장은 음악다방의 운명도 위태롭게 했다. 티켓다방은 점점 도시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시골에서도 이런 현상은 있었는데, 서로 다 아는 지역사회에서 티켓을 ‘세게’ 팔 수는 없고, 고작

[모두의 칼럼] 우리는 임팩트재단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NGO를 흔히 ‘비영리조직’ ‘비영리재단’ 등으로 부른다. 어떤 조직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비(非)’라는 부정형용사로 불리는 것이 조금은 서글프다. 누군가의 특성을 말하는데 ‘무엇이 아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편적이진 않다. 그런데 비영리조직에는 이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공공조직이나 영리조직으로 불리는 곳은 공공성 혹은 영리를 추구한다는 목표가 분명히 드러난다. 비영리조직은 영리가 아닌, 그렇다고 완전히 공공의 이익도 아닌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비영리를 ‘영리가 아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호칭은 마치 영리조직에 비하면 비주류인 것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비영리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는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교육 사업을 하기도 하고, 기업이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연구·전시·사업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임팩트’라고 할 수 있다. 비영리조직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영리의 존재 이유를 잘 나타내는 명칭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조직들은 스스로를 ‘임팩트재단(Impact Foundation)’이라 칭하기로 했다. 지난 9월 임팩트재단 다섯 곳이 공동으로 ‘임팩트 측정의 학습과 연습’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출간했다. 보통의 측정보고서는 방법론과 결과값, 특히 숫자를 중심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는 다소 구구절절하다. 참여한 조직의 공동 입장, 임팩트 측정을 하게 된 각자의 배경, 측정방법론을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고민 등이 담겼다. 일부러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담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측정에 사용된 임팩트 프레임과 방법론도 단체마다 모두 다르다. 측정 결과 역시 숫자, 서술, 도식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SH-사회주택, 공존과 경쟁을 촉구합니다

지난 8월 유튜브 채널 오세훈TV는 “2014억 원…사회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낭비된 서울시민의 피 같은 세금” 등의 표현으로 사회주택을 비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게재했다. 사회주택 업계는 ‘신뢰할 수 없는 통계로 사회주택을 왜곡하며 주택 정책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서울시장의 SH 공사가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사업을 사회적경제주체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공급한 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이는 서울시 임대주택 정책이 SH 중심의 공급으로 회귀할 것을 시사한다. 반문하자면, 사회적경제주체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SH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사의 공공성에 대한 믿음은 LH 사태를 겪으며 이미 무너졌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독점 구조는 부작용을 낳는다. 주거복지 영역에서 사회적가치를 추구하겠다는 민간 조직이 나선만큼, 이러한 사회적경제조직과 공공이 더 좋은 주거를 두고 경쟁·협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실 사업자 문제는 경쟁 과정에서 걸러지고, 책임 있는 감독을 통해 해결할 부분이다. 서구 유럽의 여러 주거복지 선진국에서는 민간 비영리단체 등이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하여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저렴하게 공급하는 사회주택이 일찍이 활성화되었다. 사회주택의 총량이 누적되면서 프랑스 파리는 20%, 네덜란드는 전체 시장의 30%를 훌쩍 넘는다. 공급자가 많고 다양해질수록 경쟁을 통해 공급 비용은 낮아지고, 주거의 질은 높아진다는 것은 주거복지 영역에서도 동일하다. 민간 사업자의 확대는 민간 자본 확대로 이어져 공급 총량도 늘어날 수 있다. 과거 대단지 획일적인 주택 개발·공급에 있어서는 공공 중심의 공급이 적합했을지 모른다. 이를 통해 빠르게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을 높일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더 이상 물 쓰듯 쓸 수 없는 물

‘푸른 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 표면의 70% 를 물이 덮고 있는 지구는 그야말로 물의 행성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인간을 비롯한 육지 생명체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민물의 비중은 3% 정도이고, 빙하와 만년설을 제외하고 실제로 사용 가능한 지표수와 지하수의 비중은 1% 미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1% 미만의 담수로도 인류 문명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뤄냈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담수 자원을 말 그대로 ‘물 쓰듯’ 하며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리고 이 연재글의 내용이 항상 그러했듯이, 안타깝게도 이러한 풍요로움도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이미 물 부족은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이슈다. 이론적으로 담수 자원은 현재 인류의 사용량을 충당할 수 있지만 담수 자원의 지리적 분포와 중저소득 국가의 부족한 인프라로 인해 전 세계 인구의 26%인 20억명이 안전하게 관리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 연간 200만명 이상이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인류의 비효율적인 담수 자원 사용과 수질 오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담수가 풍부한 지역에서도 수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하 대수층 37개를 관찰한 결과, 21개의 수량이 줄어들고 있고 그중 13개는 심각한 수준의 물 스트레스(물 유입보다 유출이 훨씬 많은)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군다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각종 곡창지대의 기상이변, 특히 가뭄이 증가하면서 지하수 유출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전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 중 하나인 미국 캘리포니아는 2000년 이후 빈발하는 가뭄으로 인해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기업 사회공헌의 미래 트렌드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다. 미국뿐 아니다. 홍콩, 대만, 베트남,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싱가포르 등 총 14개국에서 1위에 올랐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39개국에서는 2위에 랭크돼 있다. 드라마에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오징어’ 등 한국인에게 친숙한 고전놀이가 여럿 등장한다. 게임에서 지면 죽고 살아남으면 수백억원의 돈을 가져간다는 다소 비현실적이며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 또래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녀의 친구들까지 보고 있으니, 전 세대를 걸쳐서 공감대를 형성한 듯 하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생각도 나고 재미도 있었지만, 미래세대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치열한 경쟁 사회의 일면을 본 것 같아 섬뜩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공정을 말하지만 현실은 공정하지 않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게임에 뛰어들었지만 이면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좌절감, 왜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게임을 하고 살아남아야 하나라는 억울함 등 여러 가지 우리 사회의 문제가 깔려있다. 오징어게임이 기업 사회공헌의 미래 트렌드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싶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에너지와 자원 고갈, 기후변화, 사회갈등의 심화, 인구구조의 변화로 우리는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위험한 게임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아갈 수도 있다. 위험한 게임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게임의 탈락자들에게도 재도전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공헌이 비즈니스 또는 자원과 연계된다면 든든한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다. 즉 전략적 사회공헌이 필요한 것이다. 전략적 사회공헌은 기부 중심의 자선적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코로나에서 살아남기

나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가 얼마 전 건강하게 회복했다. 설마 내가 감염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표현을 이번 계기로 정확히 이해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후 흉통과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이튿날 저녁 대형병원 음압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치료를 받았고 폐렴 소견과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받고 퇴원했다. 기간은 짧지만 코로나 환자로 지내는 동안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현재 대한민국의 감염병 확진자 대처 시스템이 예상보다 더 혼란 속에 빠져 있다고 느꼈다. 첫 번째는 연락망이 너무나 중구난방이다. 기관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 확진 판정을 받으면 정말 여러 곳에서 역학조사와 격리장소 마련 등을 위해 연락이 오는데, 그때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답해야 했다. 두 번째는 비상상황 시 바로 의료적인 조처를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양성 결과가 나왔던 두 번째 PCR 검사를 받은 날 새벽에 급성 호흡곤란이 왔었다. 정말 위급했었기 때문에 당장 응급처치를 해야 했다. 하지만 애초 모든 병원의 응급실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갈 수 없었다. 1339 등 관련 연락처는 상담원 연결도 힘들뿐더러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상황에 ARS 연결 과정이 너무나 길어 불편하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나마 경증이고, 호흡곤란도 저절로 가라앉아 괜찮았지만, 정말 중증이거나 급성일 경우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그대로 자택에서 숨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코로나 치료를 받는 모두가 가장 바라는 것은 빠른 쾌유다. 하루라도 빨리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우리는 자격 있는 이해관계자인가?

약 10여년 전 ‘남자의 자격’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부제를 갖고 있던 이 프로그램은 합창단 도전, 실제 라면으로까지 출시된 라면왕 콘테스트 등 유명한 에피소드를 많이 만들어냈다. 비록 목표했던 101가지 모두를 담지 못한 채 97개의 미션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방송에서 보여준 출연진들의 노력은 이들의 자격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자격(資格, qualification)’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의미한다. 최근 진행된 UN 총회에서는 유명 보이그룹인 방탄소년단이 문화특사 ‘자격’으로 연설을 했다. 의사, 바리스타, 제빵사 등의 직업도 ‘자격’을 취득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부적절한 행위가 발견되면 부여받은 자격이 정지 또는 취소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격’은 어떤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기준이 된다. 최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주주뿐 아니라, 임직원, 고객, 협력회사,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하여 기업경영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가 기업의 중요한 경영전략이 된 이후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MZ세대와 지역사회의 이해관계자를 신경 쓰기 시작한 기업과 기관이 늘어나고 있고, 조직 내부의 노동조합을 포함한 임직원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은 이처럼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경영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이와 같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이해관계자’는 아무런 조건 없이 부여받은 권리일까? 마땅히 해야 할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오늘도 대표직을 내려놓고 싶은 그대에게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제가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한 초기 스타트업의 창업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면서도 이렇게 서늘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이 그만두시면 회사도 함께 문을 닫게 될 겁니다.” 새로운 리더가 갑자기 등장하여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한다는 이야기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다. 창업의 나라인 미국에서는 실제로 스타트업 대표자 교체가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일은 대부분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라 어떠한 선택이라도 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벌어진다. 회사의 주요 지표들이 호조를 보이고 있고 자금 역시 1~2년 이상 버틸 정도로 거뜬하다 해도 자신이 창업하지도 않은 스타트업의 대표직을 수행할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을 대표로 모셔오는 일은 무척 어렵다. 그리고 그 정도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이미 창업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재미있는 것은 사업을 계획대로 잘 진행하는 창업자들도 ‘대표자를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종종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 즉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날수록 더 그렇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맞나’ ‘내가 대표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은 아닌가’ 등의 의문을 가지게 된다. 내가 없더라도 내가 아끼는 사업은 그 자체로 꾸준히 성장하면서, 동시에 대표직의 무게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대표직을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를 매각하는 것이다. 근래에도 사업의 초기부터 투자로

[아무튼 로컬] 로컬의 시간: 슬로라이프와 생명의 속도

요즘 요가에 관심이 좀 생겨 이런저런 책과 동영상을 찾아보고 있는데 백서현 작가가 80일간 인도 요가원에 다녀와서 쓴 ‘요가 좀 합니다’를 보니 이런 대목이 있다. “인도에서는 평생 쉬는 호흡의 수가 수명과 연관이 있다고 믿기도 한다. 느리게 쉬면 더 오래 살 수 있다.” 처음엔 인도 특유의 신비주의적 생명관이겠거니 했는데 일본의 유명 동물학자 모토카와 다쓰오 전 도쿄공업대학 교수가 쓴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을 읽으면서 뜻밖에도 이게 과학적 근거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모토카와 교수는 동물들이 몸의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신체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포유류의 심장 박동 주기는 체중의 4분의 1 제곱에 비례하는데, 이를테면 코끼리는 3초에 한 번, 생쥐는 0.1초에 한 번 심장이 뛴다. 몸집이 클수록 심장이 느리게 뛴다고 하니 호흡도 느릴 것이고, 슬로비디오처럼 느린 템포로 100년을 사는 코끼리와 훨씬 빠른 생리적 템포로 허겁지겁 몇 년을 살다 죽는 생쥐의 삶을 비교해 보면 ‘느린 호흡=장수’라는 공식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모토카와 교수의 이론에는 극적인 반전이 있다. 포유류의 평생 심장박동 수는 20억회로 몸의 크기와 상관없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5분짜리 동영상을 빨리 돌려 1분 만에 보더라도 그게 같은 동영상인 것처럼 코끼리와 생쥐의 물리적 수명은 다르지만 시간의 밀도를 생각해 보면 결국 같은 길이만큼을 살다 가는 셈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흐르는 생명의 시간 속에서 동물들은 각자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 살아간다는 멋진 가설을 세웠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