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칼럼] 삼성家의 상속세와 사회 환원 ‘새로운 기부 문화’ 신호탄 되려면

세계 최고의 상속세 12조원. 지난 29일 발표된 이건희 회장의 상속세다. ‘정직하게 국민이 납득할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이 회장의 신념대로 유족들은 담담히 세금 납부와 사회 환원 결정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 3년치(2017~2019년) 상속세 수입(10조6000억원)보다 많은 돈이 한 번에 세수로 확보되니 정부 입장에서는 대환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다른 나라의 부자들은 상속세 대신 기부를 선택해 엄청난 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데 왜 우리는 세금일까. 만약 ‘사상 최고의 기부금 12조원’이 됐다면 어땠을까.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말이 있다. 장자(莊子)가 조릉의 정원에서 까치 사냥을 했는데, 까치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까치는 사마귀를,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지 못함을 두고 한 말이다. 미국, 영국 등 기부가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당장 정부의 세수가 줄더라도 세금 감면 등 장기적으로 기부를 활성화하고 장려하는 정책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한 치 앞을 못 보는 것 같다. 기부는 항상 우리 역사에 중요한 변화 동력이 돼왔다. 한강의 기적, IMF와 코로나 위기, 모두 기부의 현장이 됐다. 지금도 기업, 자산가, 개인 기부자를 막론하고 ‘기부 DNA’를 가진 착한 사람들이 사회 빈틈을 메우고 있고 기부가 일상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십일조를 떼놓듯 ‘내 이윤의 일부는 사회 환원을 하겠다’는 정서도 생겼다. 민간 활동은 점점 더 다양해지며 내용도 세밀해지고 영역도 확장되고 있다. 정부의 힘이 닿지 않는 모든 곳에 민간의 유능한 인력과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갈 곳 잃은 여행자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많은 시련을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궤멸적인 피해를 본 산업 중 하나가 여행·관광 산업이다. 2019년 전 세계 GDP의 10.4%를 차지하던 여행·관광 산업은 2020년 5.5%로 약 49.1%(약 4조5000억달러)나 감소했고, 관련 일자리도 18.5%가량 감소했다. 정부의 긴급 보조금을 가장 많이 수혈받은 업계 중 하나였는데도 이 정도라면 실제 여행·관광 업체 종사자들이 느낄 고통은 얼마큼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무착륙 비행’이라는, 기후변화 시대에 상상하기 어려운 고탄소 배출 상품이 인기를 끈 것도 결국 이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리라. 예상보다 장기화되는 코로나에 해외여행 욕구가 커진 고객들과, 당장 현금이 없어 피가 마르는 관광 업계와 항공 업계의 수요가 맞아 도착지도 없이 면세점 쇼핑과 비행만 하는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씁쓸하다. 설령 갈 곳이 없어도 훌쩍 떠나고 싶은 욕구를 지닌 인류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점점 발목이 묶일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여행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장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여행 산업을 위한 비영리 민간단체 ‘서스테이너블 트래블 인터내셔널(Sustainable Travel International)’에 따르면 관광 산업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를 차지하며, 그중 절반이 이동 수단에 의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이전까지 중국, 인도 등 최근 경제 성장이 가파른 국가의 해외여행 수요가 폭증하고, 저가 항공들이 대거 생겨나면서 1990년 5억t 수준의 항공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8년 10억4000만t이 돼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차치하더라도 관광은 해당 지역에 큰 사회적, 환경적 부담을 준다. 수용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임팩트] 히든챔피언을 기다리며

독일 경제의 핵심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즉 미텔슈탄트(Mittelstand)다. 미텔슈탄트는 직원이 500명을 넘지 않고 매출은 5000만 유로(약 670억원) 미만인 기업으로, 독일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한다.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은 ‘연 매출 40억 달러 미만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수출을 위주로 하며 세계 시장에서 1~3위 또는 소속 대륙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강소기업’을 히든챔피언이라고 정의했는데, 2017년 기준 독일의 미텔슈탄트 1300여개가 히든챔피언이었다. 전 세계 히든챔피언 2700여개(2017년 기준) 중 절반 가까이가 미텔슈탄트인 셈이다. 대다수의 미텔슈탄트들은 가족소유 경영을 한다. 이들 기업의 특징은 첫째, 기업인이 직원에 대해 큰 책임의식을 가지고 가족처럼 대한다는 점이다. 둘째, 가족 경영이라는 특성 덕분인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지속가능하고 장기적인 경영 방식을 가지고 있다. 셋째, 기업이 속한 도시나 지역,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히든챔피언들은 사회공헌 활동이나 재단 설립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있으며, 재단을 통해 가문의 헤리티지(유산)를 이어가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디지털 시대, 필기구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파버카스텔’은 독일의 대표적인 히든챔피언이다. 설립자인 안톤 볼프강 폰 파버카스텔 백작은 “사업가로서 절대로 미래 세대의 비용을 사용해 이익을 창출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확고했다. 파버카스텔은 연간 20억 자루의 연필을 제작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약 15만톤의 목재가 필요하다. 목재의 조달로 황폐해지는 지구에 대한 책임을 느낀 파버카스텔은 브라질 사바나 황무지에 여의도의 30배가 넘는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경영자를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

지난 2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은 전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50대 기업을 발표했다. 기업의 혁신성, 인사관리 부분, 자산 활용, 사회적 책임과 품질 관리, 재정 건전성, 장기 투자 가치, 제품·서비스 품질, 글로벌 경쟁력 등 9개 항목을 평가한 결과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GPTW도 매년 탁월한 리더십과 높은 사명감으로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들고 혁신적인 경영철학을 확산·보급하는 CEO를 선정해 ‘일하기 좋은 직장(Great Place to Work)’을 시상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여러 단체들도 매년 사랑받는 기업과 존경 받는 기업을 선정하고 발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정 기업들은 실제로 사회에서 사랑받고 존경받고 있을까? 사실 기업은 우리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는 못했다. 경영진이 횡령과 배임으로 구속되기도 하고, 협력업체에 갑질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일감 몰아주기와 노동조합 탄압을 지시하기도 했고, 노동자가 임원을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해외의 경우는 어떤가? 2001년 기업의 사기와 부패와 관련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한 에너지·물류 회사인 엔론이 회계부정 사건으로 파산하면서 당시 경영진은 사기와 내부자 거래 등의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엔론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미국 5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아서앤더슨 역시 영업정지를 받고 결국 파산했다. 이후 2007년에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위한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전 세계 많은 회사들이 파산하며 금융위기를 맞은 일이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회사의 부실 대출과 함께 이들을 감시하는 신용평가사 조차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일반 시민들의 피해가 더욱 커졌다.

210420-0012
[모두의 칼럼] 네 가방을 보여 줘!

SNS나 미디어에서 유명인이나 일반인이 자신의 가방 속 물건을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방 속에는 어떤 물건들이 들어 있을까? 그 속을 살펴보면 소비 트렌드를 알 수 있고, 조금씩 달라지는 일상의 변화도 감지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핸드크림을 가방에 넣고 다녔지만 이제는 손 소독제가 추가됐다. 겨울철 핫팩이 있던 자리는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갈 차례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 텀블러 외에 생수병도 하나씩 넣기 마련이다. 다 쓴 물건을 다시 채우고, 낡은 것을 새로 바꾸면서 새삼 ‘작은 전자 기기들과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이 많은 물건을 어떻게 매일 들고 다녔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편리함이 가져온 환경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지나 이제 인류는 ‘플라스틱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류를 향한 플라스틱의 역습이 시작됐고 이제는 대안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지난해 말부터 투명 페트병을 별도 분리배출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한 업사이클링 제품들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기업과 상품이 많아지며 구매도 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우시산’은 작년에 페트병 6개로 만든 원사가 들어간 맨투맨 티셔츠로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는데 목표의 789%를 달성했다. 업사이클링 전문 브랜드 ‘젠니클로젯’은 천막 자투리로 만든 어닝 백, 페트병을 이용한 펫 백 등 다양한 상품들로 완판 행진을 이어간다. 비닐은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47만톤이 버려진다고 하는데 이러한 비닐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핸드메이드 카드 지갑을 만드는 예비 사회적 기업 ‘두에코’도 있다. 이런 기업들의 상품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몰라 봐서 미안하다

5년 전 투자한 회사에 이어 작년에 투자한 회사에서도 얼마 전 우리 소풍벤처스로 배당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사업 성과가 뛰어난 두 기업의 배당 통지를 받아 들고 조언을 받아야 하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시드 투자사이자 액셀러레이터이다 보니 배당을 받는 경우가 이례적이라서 배당에 따른 세금과 배분 문제 등이 우리에게 생소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풍이 투자한 소셜벤처는 80곳을 돌파했다. 이 중 95%는 소풍이 첫 투자자였고, 50%는 법인조차 설립되지 않은 곳이었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예 없거나 검증이 안 된 초기 팀들을 마주하는 것이 액셀러레이터의 일상이다. 아무리 좋은 팀, 비즈니스라도 초기 모습은 대부분 엉성하다.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으로 만나 투자사와 피투자사로서 인연을 맺은 기업이 어느새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여 배당하는 상황은 금액 크기를 떠나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배당이 가능한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한 이들을 보며 떠오른 곳들이 있다. 바로 소셜미션과 진정성에는 크게 공감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없거나 지속 가능하지 않은 창업팀이다. 의외로 자주 찾아오는 이 안타까운 순간을 마주할 때면 복잡한 감정이 밀려든다.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이를 비즈니스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점을 대면하는 것이기도 하고, 더 괴로운 것은 창업가에게 투자 거절이라는 모진 말을 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언해 줄 방향이나 아이디어조차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는 자괴감까지 더해져 힘이 쭉쭉 빠진다. 액셀러레이터로서, 진정성 있는 창업자와 역량이 좋은 구성원들이 엄청난 비즈니스를 가지고 스스로 찾아오는 행운을 앉아서 기다릴

[사회혁신발언대]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에게

올해로 12년째 베트남 하노이에 살고 있다. 처음엔 한국 단체 소속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파견됐고, 베트남에 정착한 이후엔 여러 한국 기관들의 지원사업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노이의 사회적경제 생태계에 발을 딛게 되었고, 훌륭한 현지 사회적기업가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된 이들은 베트남에서 하는 나의 여러 활동을 함께 해주고 도와주는 든든한 ‘백’이 됐다. 그리고 지금은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 교육, 예술, 장애, 여성, 환경 등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작당 모의’를 해오고 있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도와달라는 의뢰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물론 그중엔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진심으로 베트남 사회에 기여하려는 훌륭한 기업도 있지만, 아쉽게도 베트남 현지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기획을 갖고 오는 곳도 많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 기금을 따내기 위한 일회성 사업을 마치고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이런 ‘문제적 기업’ 가운데 스스로를 ‘사회적기업’으로 칭하는 기업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베트남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없고, 현지 문제 해결에 기여를 하지 못하는데도 이들은 자신을 사회적기업으로 당당하게 소개한다. 이들이 내건 사업 목표에 ‘베트남의 취약계층과 함께한다’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취약계층이라는 단어는 베트남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포괄한다는 것이다. 장애인, 소외 지역에 사는 청소년, 한국에서 돌아온 귀환 결혼 이주 여성, 한국인 핏줄이지만 버려진 아이들, 농어촌 빈곤층, 성별, 지역, 직업 등에 따라 각자의 특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취약계층’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진다. 현장의 정확한 문제 파악이나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인류에게 던져진 不和의 황금사과

어린 시절 열심히 읽던 그리스 신화 세계관의 시작은 바로 트로이 전쟁에 대해 다룬 ‘일리아스’였다. 올림푸스의 신들이 아카이아인과 트로이인들을 통해 대리전을 펼치는 이 중요한 이야기가 ‘에리스’라는, 그리스어로 ‘불화(不和)’를 뜻하는 여신에게서 시작됐다는 건 꽤나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불화와 이간질의 여신인 에리스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신들 사이도 이간질하며 불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로 인해 벌어진 전쟁터를 전쟁의 신 ‘아레스’와 함께 누비며 자신이 일으킨 파괴의 흔적을 즐기는 존재로 묘사된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에리스가 열심히 가꾸는 ‘불화의 황금사과 과수원’쯤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팬데믹, 시시각각 닥쳐오는 기후변화 등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문제가 산적한 상황인데도 인류는 대동단결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서로 갈라져 다투느라 여념이 없다.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극단주의다. 정치, 종교, 사회적 이슈 전반에 걸쳐 극단주의가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극단주의는 자신이 믿는 이데올로기를 ‘극단적’으로 내세워 자신과 타인 모두의 이익을 짓밟는 비합리적 행동으로 치닫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던 백인 우월주의 단체 프라우드보이스나 음모론을 신봉하는 큐어넌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현재 이러한 극단주의가 자라날 최적 상황이 조성됐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자본의 세계화와 반복된 경제 위기는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한 국가들의 중산층을 붕괴시켰고, 빠른 속도로 양극화가 진행됐다. 실업률 증가, 정부 복지 재정 고갈은 일본·영국·미국 등 선진국들의 급격한 우경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또한 중국과 미국의 패권 정치와 아프리카, 중동 정세 악화로 인한 대규모 난민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새로운 여행

영리기업과 비영리단체는 그 경계가 명확하고 서로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 사회 통념이다. 영리기업은 수익 창출과 주주이익이 우선이고, 비영리단체는 사회적 가치 창출과 공공의 이익이 우선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영리기업에서 사회공헌을 담당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영리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거나 비영리단체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어떤 면에서는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시대적으로도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기업을 통해 부를 창출한 비즈니스 리더 중에서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사회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비콥을 통해 사회혁신 기업을 발굴하는 미국의 비영리기관 ‘B Lab’을 이끄는 바트 홀라한은 스포츠 의류회사인 앤드윈의 회장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 빌게이츠는 2000년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기후변화 등 전 세계의 사회문제에 대한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 회장은 전설적인 등반가, 서퍼, 환경운동가이다. 파타고니아는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서 사업을 한다’라는 사명 선언문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환경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기업인지 환경단체인지 헷갈릴 정도다. 또한, 비영리 영역에서도 대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협동조합으로 시작한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가전, 건설, 첨단산업을 바탕으로 250여개 사업체로 구성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직원들의 해고 없이 극복하였으며, 오히려 1만 5000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며 안정적 성장세를 이어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주주가치 극대화와 이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듯이, 사회적 가치와 나눔을 추구하는 비영리의 마인드는 지속가능한 포용적 사회를 위해

[기자수첩] 소셜벤처의 힘, 생태계

지난 17~19일 소풍벤처스 주최로 서울 역삼동에서 열린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마스터코스’에 참여했다. 2019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마스터 코스는 ‘임팩트 액셀러레이팅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임팩트투자의 개념부터 국내 임팩트투자 현황, 창업팀 발굴과 관리 방법, 사회적가치 평가 등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소풍벤처스가 직접 사용하는 툴킷을 그대로 공개하고 투자 심의 관련 서류 관리법, 대표님 멘탈 관리법 등 실제 펀드를 따고 창업팀을 발굴, 육성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모든 내용을 공개한다. 듣다 보니 ‘이렇게 다 공개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과정에 참여한 인원은 40명. MYSC, 사단법인피피엘 등 같은 초기 소셜벤처나 사회적기업을 키우는 기업이 대다수였다. 쟁쟁한 경쟁자들에게 신입사원 연수 수준의 내용을 모두 공개하는 게 쉽지 않겠다 싶었다. 문득 처음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마스터 코스에 초대하던 한상엽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영업 비밀을 다 공개한다”면서 “생태계가 자라야 우리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풍벤처스가 생태계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건 어쩌면 조직 특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풍벤처스는 2008년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국내 최초 임팩트 전문 액셀러레이터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생긴 게 2007년이니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일해왔을 것이다. 다른 조직과 힘을 합쳐 필요한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언론과 대중에게 사회적가치를 위해 뛰는 기업과 투자의 가치를 알리고….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해야 재무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실제 기업 운영 과정 모든 단계의 구체적인 의사 결정 마디마다 이를 모두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 평가에 대한 기업의 4가지 반응

최근 ESG(환경·사회·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가운데, ESG에 대한 우려와 한계 또한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일명 지속가능성 지수로 불리는 ESG 평가의 실제 의도는 투자자가 ESG 관련 위험에 대한 노출평가와 관리, 피투자 기업과의 교류 등을 목적으로 비재무적 성과를 보다 광범위한 기업과 비교 평가해 책임 있는 투자상품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재는 표준화된 공시기준과 평가기준이 없다는 지적이 단골로 제기되며 ESG 공시 및 평가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GRI, CDP, IIRC, SASB, CDSB 등 5개 기관은 지난 9월 기업이 공시하는 보고서 표준을 통합하겠다고 밝히고, IIRC와 SASB는 내년 중반까지 합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ESG 평가에 대해 ‘좌절’을 느끼는 기업이 많은데 그 이유는 수십 개의 평가기관이 연중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플랫폼과 다른 방식을 사용해 유사한 것을 측정함으로써, 기업에 ‘분노’와 ‘냉소’와 ‘보고 피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에스터 클레멘티노(Ester Clementino)와 리처드 퍼킨스(Richard Perkins)는 ESG 평가에 대해 기업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하는지, 실제로 ESG 평가가 기업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연구하였고 몇 가지 흥미로운 결과를 확인하였다. 먼저 에스터 클레멘티노와 리처드 퍼킨스는 ESG 평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이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ESG 평가 및 등급이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ESG 관련 조직을 정교화하고 이들 조직의 역량강화에 힘을 쏟기 시작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외부평가가 마치 게임에서 높은 점수를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유니콘·VC도 ‘ESG’를 피할 수 없다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ESG’가 기업의 전략과 운영에 있어서 필수적인 접근으로 여겨지고 있다. ESG의 확산은 어느 정도 예견된 미래였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로 인한 2020년의 위기감이 일종의 ‘가속 페달’ 역할을 한 셈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Venture Capital)로서 최근 ESG의 폭발적인 확산을 지켜보고 있자니, 지난 십여 년간 급성장한 ‘임팩트투자’와 2006년 UN이 발표한 ‘책임투자(Responsible Investment)’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SG는 책임투자의 한 가지 방법 혹은 고려해야 하는 요소로 ‘비재무적(non-financial) 정보’라고도 불린다. 임팩트투자는 특정한 사회문제 해결 및 가치창출을 위해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의 방식이다. 투자 대상 기업의 ESG 요소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게 자본 투자 과정의 필수적 절차로 자리 잡아가는 상황에서, 얼리 스테이지(Early Stage)에 있는 기업들도 ESG를 수용하게 할 수 있을까. 나아가 임팩트투자의 대상 기업으로 바뀌게 할 수 있을까. 몇 년 전부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자본 투자를 선언하며 기업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전체 자본 투자에서 임팩트투자의 비중은 여전히 소수다. 대부분의 자본이 여전히 수익률만을 기준으로 투자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마치 과거 ESG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ESG 역시 오랫동안 기업들의 자율에 맡겨져 왔다. 지속가능성보고서 혹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으로 불리는 문서를 통해 자본 시장 및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은 소수였다. ESG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데에는 기업을 둘러싼 여러 위험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환경·사회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물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궁극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