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우리는 자격 있는 이해관계자인가?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약 10여년 전 ‘남자의 자격’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부제를 갖고 있던 이 프로그램은 합창단 도전, 실제 라면으로까지 출시된 라면왕 콘테스트 등 유명한 에피소드를 많이 만들어냈다. 비록 목표했던 101가지 모두를 담지 못한 채 97개의 미션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방송에서 보여준 출연진들의 노력은 이들의 자격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자격(資格, qualification)’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의미한다. 최근 진행된 UN 총회에서는 유명 보이그룹인 방탄소년단이 문화특사 ‘자격’으로 연설을 했다. 의사, 바리스타, 제빵사 등의 직업도 ‘자격’을 취득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부적절한 행위가 발견되면 부여받은 자격이 정지 또는 취소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격’은 어떤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기준이 된다.

최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주주뿐 아니라, 임직원, 고객, 협력회사,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하여 기업경영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가 기업의 중요한 경영전략이 된 이후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MZ세대와 지역사회의 이해관계자를 신경 쓰기 시작한 기업과 기관이 늘어나고 있고, 조직 내부의 노동조합을 포함한 임직원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은 이처럼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경영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이와 같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이해관계자’는 아무런 조건 없이 부여받은 권리일까?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 있지는 않을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최근에 많이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1930년대부터 ‘주주 자본주의’와 대립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며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개념을 피라미드 모형으로 정리한 캐롤 교수는 197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기업에 이해관계자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해관계자’는 기업이 경영활동을 하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져 왔으나, 이해관계자의 자격이나 역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이해관계자는 어떠한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

2007년, 에드워드 프리먼(Edward Freeman) 교수와 일행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논문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자유, 권리 적극적인 의무의 동의에 의한 창조’를 기반으로 한다고 설명하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만들어지고 작동되며 유지되기 위한 여섯 개의 작동원리를 강조했다. 첫 번째는 ‘이해관계자 협력’의 원칙이다. 이해관계자 간 자발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거래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두 번째는 ‘이해관계자 참여’의 원칙으로, 기업의 가치 창출에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받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직접 참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이해관계자 책임’의 원칙이다. 자신의 행동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도 수락해야 진정한 가치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복잡성’의 원리로, 인간은 다양한 가치와 관점에서 행동할 수 있는 복잡한 심리를 가진 주체로서, 단지 주주만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복잡한 의사결정을 하며 동기부여를 받는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지속적인 창조’의 원칙으로 기업은 이해관계자와 협력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고, 마지막은 ‘새로운 경쟁’의 원칙이다. 경쟁은 자유로운 사회에서 생겨나고 경쟁은 이해관계자의 선택권이 있음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즉,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이해관계자가 만들어가는 경제구조를 의미한다.

우리는 기업의 이해관계자인가? 그렇다면 위 원칙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른 이해관계자와 협력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우리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면 기업은 복잡한 이해관계자를 이해할 수 있고,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며, 경쟁을 통해 이해관계자에게 선택을 받는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상사로 미국에서 오신 한 임원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 황금률로 알려진 이 문장은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역시 새기고 실천해야 할 원리이자 기본이 아닐까 싶다. ESG 경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의 단어와 함께 기업이 이해관계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지금, 우리는 자격 있는 기업의 이해관계자인지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오늘의 논문
— R. Edward Freeman, Kirsten Martin and Bidhan Parmar (2007), “Stakeholder Capitalism”, Journal of Business Ethics, 74(4), pp. 30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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