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사회는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면 부하직원이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상사가 그 이유를 납득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네’라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상사가 지시하면 우선 ‘네’라는 답을 하고 뒤돌아서 ‘왜?’라고 의구심을 가진다. 직무중심의 조직문화는 납득할 만한 직무를 부여할 때 업무가 작동하는 원리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직급중심의 조직문화란 사람 사이에 서열을 정해주면 업무가 작동하는 원리를 뜻한다. 따라서 전자는 이유가 중요하고 합의과정이 중시되어 능동성이 개입된다. 후자는 직급에 적합한 권한과 책임의 부여가 중요하고 일정한 당위성이 개입된다. 직무중심이냐 직급중심이냐의 기준으로 미국 기업문화와 일본 기업문화를 조망한 윌리엄 오우치의 Z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인한 조직을 바라보는 두 개의 관점은 수직인가, 수평인가라는 이분법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질서가 있는지(hierarchy, 하이어라키), 아니면 복잡하여 질서가 잘 드러나지 않는지(heterarchy, 헤테라키)에 대한 논쟁이 그 시작이다. 하이어라키는 서열을 뜻하는 위계(位階)로 풀이된다. 질서가 있으되 잘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상황을 일컫는 헤테라키는 혼계(混界) 또는 비위계라고 불린다. 혼계는 권한이 분산되고 협력과 유연한 작동이 가능하여 수평적 조직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하지만 혼계를 수평적 조직으로 단언하면 안된다. 그 이유는 수직적 조직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화를 급속히 이행하는 많은 경우 예기치 못한 변수와 왜곡이 불거지고 구성원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완벽한 수평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구현되지 않는 까닭이다. 혼계가 지향하는 것은 기계적으로 완벽한 수평이라기보다 각자의 역할에 따른 행동이 보장되고 그 바탕 위에 서로 건강한 관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