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구테크] 인구 변화를 혁신으로 전환하는 법

인구 구조의 변화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다. 그 속에서 사회 문제를 혁신의 기회로 바꾸는 일은 미래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가 된다. 인구 감소, 고령화, 저출산은 이미 전 세계가 함께 직면한 과제다. 이 문제를 단순한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와 산업적 기회를 창출하는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전략적 사고를 통해 인구 변화를 기회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일본, 초고령 사회의 교훈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현재 전체 인구의 29%가 65세 이상이며, 올해 2월을 기점으로 50세 이상이 절반을 넘어섰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변화를 단순히 복지 비용 증가로만 보지 않았다. ‘실버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해낸 것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실버테크(silver-tech)다. 돌봄 로봇, 고령자 맞춤형 가전,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독거노인의 안전을 확인하는 IoT 센서와 생활 패턴을 분석해 돌봄을 제공하는 플랫폼은 이미 일상화됐다. 특히 눈에 띄는 사례는 실버 피트니스다. 미국에서 시작된 여성 전용 피트니스 체인 커브스(Curves)는 일본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5년 진출 후 불과 10여 년 만에 전국 2000여 개 지점을 열었고, 현재는 약 90만 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2022년 기준 매출은 900억 엔(약 8000억 원)에 달했으며, 회원의 70% 이상이 50세 이상 여성이다. 이는 고령층이 ‘건강하게 나이 드는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소비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세계에서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자립의 무게, 빈틈에 놓인 무연고 탈북청소년

무연고 탈북청소년을 처음 마주한 것은 2016년의 일이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한 멘티에게 추석 연휴 계획을 묻자, 그는 담담히 “가족이 없어 아무런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혼자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털어놓은 것이다. 이미 몇 차례 멘토링을 진행하며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고백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그는 학업이나 진로 대신 교우관계, 연애상담 등 일상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부모와 함께라면 가정에서 시시콜콜하게 나눌 대화들이었다. 2024년 4월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배경학생은 2600여 명. 이 가운데 일부는 직계존속을 동반하지 않고 입국한 무연고 탈북청소년이다. ‘북한이탈주민법’은 북한에 주소·가족·배우자·직장 등을 두고 탈북한 사람 중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자를 ‘북한이탈주민’으로 정의한다. 이 중 보호 및 지원을 받는 대상자를 ‘보호대상자’라 하고, 필자가 만난 멘티처럼 보호대상자로서 직계존속을 동반하지 아니한 만 24세 이하 무연고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는 ‘무연고청소년’ 추가적인 보호 규정이 있다. 관계 법령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은 무연고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무연고청소년보호 및 지원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워원회)’를 두고 있다. 필자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위원회는 보호자 선정, 후견인 선임 필요 여부, 개인별 보호 및 정착 지원 방안 등을 심의한다. 선정된 보호자는 거주지 전입 이후 청소년의 생활 지원과 교육 지원을 맡는다. 통일부는 2024년 11월부터 무연고청소년 가산금을 신설하는 등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 많다. 첫째, 보호자의 법적 지위가 모호하다.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자’는 민법상 친권자와 별개다. 따라서

[임팩트 현장을 읽다] 오늘의 외부효과가 미래의 비즈니스 기회다

“오늘의 외부효과가 미래의 비즈니스 기회가 된다(Today’s externalities are future businessopportunities).” 지난 8월 2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 리더스 서밋에서 크리스티안 헬러(Value Balancing Alliance·VBA) CEO가 던진 메시지다. 이날 현장에는 글로벌 기업, 민간 재단, 정부 관계자 등 사회혁신 리더 350여 명이 모여 2시간 동안 ‘기업의 사회적 가치 측정’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외부효과란 기업 활동이 의도하지 않게 사회에 이익이나 손해를 끼쳤음에도, 시장에서 적절히 보상이나 비용 청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긍정적 외부효과는 사회적 편익을, 부정적 외부효과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헬러는 “외부효과를 측정하고 보상 체계를 마련한다면 사회적 가치는 물론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ETS·Emissions Trading Scheme)다. 배출 총량을 초과해 부정적 외부효과를 일으키는 기업은 과징금을 내거나 다른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반대로 전기차 보급으로 탄소배출을 줄여 긍정적 외부효과를 만든 테슬라 같은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팔아 경제적 보상을 얻는다. 실제 테슬라는 2024년 배출권 판매로 약 3조8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4분기에는 순이익의 30%가 배출권에서 나왔다. 주주 입장에서는 기업 가치 평가에 직결되는 정보다. 이 때문에 테슬라가 이를 측정·관리·보고하는 것은 당연하며, 헬러가 말한 대로 전통적인 재무제표(financial statement)와 나란히 사회적 성과를 담는 임팩트 제표(impact statement)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 임팩트 가치(Impact value)가 재무적 가치(Financial value)로 전환될 미래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사회적 가치에 가격 신호(price signal)가 부여돼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사이에 다리가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썸네일 가로형
[영리한 비영리] AI시대, 비영리가 비영리답게

AI 기술이 인간의 감정과 사고, 의사결정까지 대체하는 시대다. 생성형 AI는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고 법률 자문을 하고 심지어 상담사처럼 말한다. 스탠퍼드 대학(Stanford University)의 인간 중심 인공지능 연구소(HAI)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AI 사용량은 2023년 대비 14배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또한 AI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 AI가 사람보다 나은 성능을 보이는 영역의 증가 등을 분석했고 “AI가 학습, 판단, 창작의 모든 영역을 재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기술이 불평등을 가속할 때 AI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힌튼 (Geoffrey Hinton)은 “AI가 향후 30년 내에 인류를 멸종시킬 가능성이 10~20%에 달한다”고 말했으며,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아주 위험한 종류의 AI가 등장할 것이며, 세상을 우리로부터 빼앗으려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픈 AI의 창업자 샘 알트만(Sam Altman)과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 그리고 수백명의 AI 전문가들은 “AI는 팬데믹이나 핵전쟁과 유사한 멸종의 위협”이라면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AI의 본질은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문명 구조를 재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AI는 곧 직업의 종말을 예고하고, 언어·감정·윤리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의 삶을 다시 쓰는 시대를 열고 있다. AI는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다. 누가 어떤 목적 아래 쓰느냐에 따라 기술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기술 발전은 자본에 더 큰 힘을 쥐어주고 소수의 기업에 권력이 집중되며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이 더 구조화될 수 있다. 실제로 AI는 노동이 아닌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고 플랫폼 독점은 승자독식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다카에서 나이로비, 지속가능경영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무더운 오후, 이곳의 스타트업 관계자가 건넨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모두가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어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돈벌이 수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요.” 그리고 일주일 후, 케냐 나이로비의 한 현지 기업가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지속가능성? 좋은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는 생존이 먼저예요. 당신들이 요구하는 지속가능성과 우리의 지속가능성은 차원이 다릅니다.” 지난 2주간 방글라데시와 케냐를 오가며 현지 공공기관 관계자, 스타트업 기업가, NGO 활동가들과 나눈 30여 차례의 인터뷰는 우리가 알고 있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경영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그들만 만족하면 되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제대로 된 지속가능경영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 현지 맥락 빠진 프로젝트, 지속가능성은 없다 다카에서 만난 글로벌 대형 NGO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의 딜레마를 이렇게 지적했다. “외국 기업들이 가져오는 의료기기는 최첨단 기술입니다. 하지만 정전이 일상인 농촌에서는 전력이 없으면 작동조차 못하죠. 이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솔루션일까요? 기술적 우수성도 현지 환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케냐 공공기관 관계자의 비판도 비슷했다.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지만 프로젝트 종료 후 지속가능성 확보가 가장 큰 과제입니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여 현지 적응을 위한 구체적 고민이 부족한 경우가 많거든요. 한국 본사의 기준을 무조건 따르라고 하지만, 현지 상황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설명조차 부족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우리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 접근법 자체에 구조적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방글라데시의 한 투자사

[사회혁신가의 두 가지 언어] ‘손맛’은 없어도, 시스템 체인지는 계속된다

누군가는 당사자를 직접 만나 도움을 주고, 누군가는 법과 제도를 바꾸며 구조적 변화를 이끈다.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혁신가들이 임팩트를 창출하는 방식은 이처럼 다양하다. 아쇼카(Ashoka)는 이를 ‘임팩트의 4단계(4 Levels of Impact)’로 구분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개인이나 집단의 필요를 직접 충족시키는 ‘직접 서비스(Direct Service)’다. 결식 아동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변화가 즉각적이고 눈에 띄지만, 문제를 발생시키는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직접 서비스를 체계화·조직화해 더 많은 사람에게 확산하는 ‘스케일업 된 직접 서비스(Scaled Direct Service)’다. 프랜차이즈 모델로 복지 서비스를 전국에 확산하거나, 반복 가능한 운영 체계를 만들어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발생하는 사회 구조는 그대로다. 세 번째는 ‘시스템 체인지(System Change)’다. 법과 제도, 정책, 시장 구조 등 문제의 근원을 바꾸는 접근이다. 결식아동 문제의 경우 단순한 식사 제공을 넘어 무상급식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여기에 해당한다. 네 번째는 ‘프레임워크 체인지(Framework Change)’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사회적 규범, 인식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결식아동 문제를 ‘모든 아동이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하게 하여, 장기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선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 빠르게 체감하는 성과 vs 장기간에 걸친 변화 흥미로운 점은 단계가 높아질수록 변화의 폭은 커지지만, 사업 담당자가 체감하는 ‘손맛’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직접 서비스는 곧바로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다. 수혜자의 반응을 통해 사업 담당자는 즉각적인 보람을 얻는다. 반면 시스템·프레임워크 체인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안정권 노을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
[벤처, 건강하게 성장하기] 미션과 가치의 내재화를 위한 최적의 타이밍

제대로 수립되어 작동하는 미션과 핵심가치는 조직 성장의 뿌리다. 미션은 조직의 ‘존재 이유’를, 핵심가치는 조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에 깊이 내재된 미션은 비즈니스의 전략 방향을 제시하고, 제품과 사업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의 기준이 된다. 나아가 조직에 영감과 창의성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된다. 살아 있는 핵심가치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만들고, 높은 소속감과 몰입을 이끌어내며, 소통과 협업 속도를 극적으로 높인다. 그런데 구성원 관점에서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정작 내가 속한 조직에서는 이런 미션과 가치의 힘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 왜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미션과 가치의 효능감을 ‘나’만 못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업의 규모나 성장 단계와 상관없이 대다수 기업 조직의 일상에서는 이러한 미션과 핵심가치의 위상을 체감하기가 어렵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험상 가장 큰 원인은 당장 눈앞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과업에 매달리느라 미션과 가치의 내재화까지 챙길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원의 제약과 사업의 불확실성이 큰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의 경우, 미션과 가치 실천 노력이 투자자나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사치처럼 보일 수 있다는 부담도 존재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의 리더들이 “우선 비즈니스를 정상 궤도에 올려 놓는 일에 매진하고 사업이 안정화되면 그때 미션과 가치를 제대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언제쯤이면 사업이 안정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안정화 이후에는 미션과 가치를 실천하기가 더 쉬울까? 오히려 미션과 가치를 챙기지 않고도 사업을 잘 성장시켰다면, 나중에 가서 미션과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공공 AI, ‘도입’과 ‘검증’은 함께 가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핵심 국정 목표 중 하나는 인공지능(AI)이다. 대통령실엔 ‘AI미래기획수석실’이 신설됐고, 10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도 발표됐다. 산업 육성과 더불어 정책과 행정 전반에 AI를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정부는 인공지능을 직접 개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행정 현장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기술은 민간 업체가 만든 것을 ‘조달(procurement)’, 즉 구매해 들여오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1966년, 미국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Circular A-76’이라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부와 민간이 기술 개발을 놓고 경쟁하지 않도록 원칙을 세웠다. 정부는 가능한 한 민간 기술을 구매해 사용하고, 이를 위해 연방조달청(GSA)이 책상부터 위성기술까지 전방위적으로 조달 시스템을 운영한다. ◇ 정부 기술 외주화의 장점과 그림자 정부가 기술을 만들지 않고 사는 구조는 장점도 분명하다. 시장에서 검증된 기술을 비용 효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고, 동시에 민간 기술 생태계를 키우는 데도 기여한다. 그러나 그 그림자가 짙다. 한때 미국의 국방과학연구계획국(DARPA)에는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날의 인터넷(알파넷), GPS, 드론, 음성인식, 자율주행차 등은 모두 그들의 손에서 시작됐다. 공공을 위한 기술이 없었다면 스마트폰도, 항공권 예매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정부는 기술을 만들지 않다 보니 기술을 볼 줄 아는 인재가 줄고, 그들의 판단력도 약해졌다. 정부 예산은 단위가 다르다. 적으면 억 단위고, 크면 조 단위다. AI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는 지금, 정부는 더 강한 기술을 더 많이 사서 더 넓게 쓰려 하지만, 이를 제대로 판단하고

[사회혁신발언대] 도심 유휴지 실험, 주차장이 사회적 가치를 만든다

밤마다 갓길에 불법주차된 화물차, 누구의 책임인가. 이 문제를 ‘운전자 개인의 태도’로 치부하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작 이들이 마음 놓고 차를 댈 곳은 거의 없다. 전국에 등록된 차량은 약 2600만 대, 그중 트럭과 버스, 중장비 등 상용차만 450만 대다. 차량 6대 중 1대가 상용차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조성한 공영 화물차 차고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상용차 비중이 가장 높은 경기도의 경우, 수원·의왕·화성에 단 4곳의 공영 차고지만 운영되고 있으며 이마저도 포화 상태다. 2020년에 대기 신청한 운전자가 아직도 공간을 배정받지 못할 정도다. 결국 많은 화물차들이 골목과 갓길로 밀려난다. 밤샘 불법주차는 운전자 본인과 시민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며, 교통사고와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주차공간을 찾아 헤매는 동안 발생하는 공회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연료도 낭비된다. 시간이 지체되면 근로시간은 늘어나고, 단속을 위한 행정비용도 발생한다. 빅모빌리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트럭헬퍼’라는 도시 유휴 공간(Dead Space)을 활용한 민간 화물차 주차장을 개발해왔다. 상용차 운전자는 안정적인 주차공간을 얻고, 토지주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확보하며, 지자체는 불법주차 민원을 줄일 수 있다. 지역 주민에게도 보다 안전한 도로환경이라는 이익이 돌아간다. 화물차 주차장 1개소 기준으로 보면, 고령 토지주는 연평균 약 2400만 원의 수익을 얻고, 화물차 운전자는 연간 4750시간의 주차 탐색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로 인해 연간 약 39톤의 이산화탄소가 감축되며, 교통사고 및 행정비용 등 연 1억 원 규모의 사회적 비용도 절감된다 빅모빌리티는 이러한 정량지표를

[돌봄의 재발견] 돌봄을 지탱하는 이름 없는 도움들

“1시간 단위로 아이를 맡아주는 키즈카페 선생님이 있었는데, 1~2주에 한 번 아이를 맡겨두고 혼자 커피 한잔 마시는 게 그렇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사단법인 루트임팩트의 DEI 이니셔티브 팀은 2025년 상반기, 결혼 후 10년 이상 가족 돌봄을 전담해 온 여성들을 대상으로 약 3개월간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돌봄의 여정을 되짚으며, 각 시기에 절실했던 ‘버팀목’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 보이지 않던 기여들이 드러날 때 “아버님이 서울에 올라오셔서 병원에 함께 다녀오던 길이었어요. 아이가 잠깐만 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아버님과 함께 놀이터에 서 있었죠. 그런데 아버님이 시장하실까 봐 속이 너무 타더라고요. 그때 배달앱만 있었어도…” “심리 상담을 받았어요. 몸이 약한 아이와 시부모님 간병을 중심으로 생기는 가족 갈등을 겪으며, 제 마음 상태를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게 괴로웠거든요.”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돌보는 사람들이 만나는 의외의 지원과 기여들을 발견했다. 어떤 도움은 직접 손을 보태주는 방식으로, 어떤 도움은 돌보는 이를 돌봐주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놀아주는 일, 치료해 주는 일, 알려주는 일, 치워주는 일, 위로해 주는 일, 들어주는 일 등 형식도 다양했다. 돌봄 경제의 경쟁력은 누가 어떻게 돌봄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얼마나 세심하게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유엔여성기구를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강조하고 있는 돌봄 경제의 핵심 키워드가 ‘아무도 배제되지 않도록(Leaving no one behind)’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단순히 돌봄의 대상에서 누락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 돌봄의 주체와 노동의 다양성까지 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 돌봄도 커리어가 되는

[임팩트의 좌표] AI는 임팩트를 설계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기술 산업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제 AI는 사회문제 해결의 동반자로서, 그 역할의 무게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기존 시스템이 외면했던 사회·환경 문제에 AI가 정교하게 진입하면서, 우리는 기술의 진보가 아닌 ‘문제 해결력의 진보’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AI의 등장은 문제를 정의하고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입니다. 기후 위기, 건강 불평등, 돌봄 격차, 정보 소외 등 복합적인 문제는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변수와 다층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AI는 대규모 비정형 데이터를 학습하고 분석함으로써 보다 정밀한 예측과 개입을 가능하게 합니다. AI는 인간의 언어, 이미지, 영상, 센서 등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도출하고, 이를 토대로 판단과 예측을 수행합니다. 특히 머신러닝(ML)과 딥러닝 기술은 변수 간의 복잡한 관계를 빠르고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어, 다층적 원인과 구조가 얽힌 사회문제 해결에 강점을 발휘합니다. 의료 영상 속 이상을 자동 탐지하거나, 위성 영상을 통해 농업 기후 패턴을 분석하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예컨대, 오랜 기간 고비용 인력 투입에 의존해온 탄소배출 MRV(측정·보고·검증) 시스템은, 최근 국내 스타트업이 AI 기반 위성 분석 기술을 적용하면서 벼농사에서의 메탄 배출량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기술은 농가의 탄소배출권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단순한 분석 효율 향상을 넘어 저탄소 농업 전환의 핵심 수단이자, 새로운 시장 참여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결국 AI는 그 자체로 임팩트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임팩트를 정밀하게 구현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사회혁신발언대] 지역에서 발견한 미래, 소멸을 넘어 전환으로

“듣기 어려운 젊은이들 목소리가 들려 반가운 마음에 나왔지요.” 경상북도 영주의 한 골목에서 만난 어르신의 말씀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집 밖으로 나와 길을 안내해 주시며 건네신 말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 현실, 그리고 그런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반가워하시는 어르신의 마음은 지역이 직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대기업에서 정년 퇴직 후,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나에게 이번 원주-풍기-영주로 이어진 현장 탐방은 특별한 의미였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지방소멸’이라는 무거운 단어로 표현되는 현실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와 혁신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이었다. 영주도시재생센터 센터장의 말씀이 울림을 줬다. “지방소멸이라는 표현은 외부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가능하면 ‘소멸’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얼마나 서울 중심의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재래시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이 왔다며 반가워하는 상인들의 모습에서 지역 경제의 현실을 목격했다. 그들의 반가움 뒤에는 점점 줄어드는 젊은 고객들에 대한 아쉬움과 걱정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원주의 ‘온세까세로’에서는 시니어와 청년이 함께 반죽을 빚으며 세대 간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풍기의 ‘디에스푸즈’ 젊은 대표는 아버지의 안정적인 농장을 물려받는 대신,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더 큰 비전을 택했다. 영주 기반 ‘남산선비마을’의 20대 대표는 청년들이 떠나는 마을에서 오히려 청년들이 찾아오는 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봉화의 ‘봉화새댁수리단’ 경력보유여성들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들 모두는 지역의 제약을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