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아이의 미소, 우리가 몰랐던 나눔의 힘

4인4색, 굿네이버스 장기해외자원봉사 1년
현지서 프로젝트 기획, 심사 후 실행 기회까지
잠비아에서 손씻기 인형극으로 위생 개선
몽골 현지 주민들에 환경오염 관련 교육도
봉사자 전문분야 맞춤파견 효과 ‘톡톡’

“아프리카 아이들은 TV에서 보는 것처럼 항상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까?”

신형식(26·계명대 4년)씨는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잠비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불평등의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경제학도 윤혜인(24·인천대 4년)씨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남미의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떠났다. 앞서 해외 자원봉사를 다녀온 지인이 털어놓은 “그 뿌듯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한마디가 도혜미(24·인하대 졸)씨의 발길을 몽골로 이끌었다. 이복주(38·회사원)씨는 ’10년에 한 번 온전히 봉사활동에 시간을 쏟겠다’는 자신의 인생 계획에 따라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가 본 잠비아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보였어요. 이 아이들의 웃음을 계속해서 지키는 방법이 무엇일지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형식씨는 잠비아를 다녀온 뒤 비영리단체 펀드레이저라는 새 목표를 갖게됐다. 사진은 신씨의 잠비아 봉사활동 모습. /굿네이버스 제공
“제가 본 잠비아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보였어요. 이 아이들의 웃음을 계속해서 지키는 방법이 무엇일지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형식씨는 잠비아를 다녀온 뒤 비영리단체 펀드레이저라는 새 목표를 갖게됐다. 사진은 신씨의 잠비아 봉사활동 모습. /굿네이버스 제공

이들은 모두 지난해 ‘굿네이버스 장기해외자원봉사단(GN Vol)’으로 파견된 봉사자들이다. GN Vol은 굿네이버스가 1997년부터 시작한 봉사자 파견 사업으로 올해까지 37기, 총 470명의 자원봉사자들을 전 세계 35개국 굿네이버스 지부로 파견했다.

전기도 물도 없이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보낸 1년, 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고 느꼈을까.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도혜미·신형식·윤혜인·이복주(이상 ‘가나다’ 순)씨를 지난 3일,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굿네이버스 본사에서 만났다.

◇문제 파악하고 현장 발로 뛰는 ‘진짜 자원봉사’

“잠깐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는 것 외에는 아이들이 몸을 씻거나 이를 닦는 걸 본 적이 없었어요. 가축을 먹이고, 흙장난을 한 뒤에도 씻지 않은 손으로 물을 떠 마셨죠.”

지난해 9월 잠비아의 마페페 지역개발사업장으로 파견된 신형식씨는 아이들의 위생 문제에 주목했다. 오랜 기간 성학대 예방 인형극 봉사자로 활동했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손 씻기와 이 닦기’를 주제로 인형극을 기획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오후 시간이 되면 물가는 비누로 손을 닦고 양치질을 하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마페페 마을 아이들의 손 씻기 열풍은 부모님과 학교, 마을 어른들 사이로 빠르게 번졌다.

몽골로 파견된 도혜미 봉사자는 굿네이버스의 사회적기업 ‘굿셰어링’에서 적정기술 축열기(난로의 열이 식지 않도록 잡아두는 보온장치) ‘지세이버’의 마케팅을 담당했다. 본사 울란바토르에서 지사가 있는 자브항까지 1000㎞가 넘는 거리를 수차례 왕복하는 과정에서 도씨는 몽골의 매연 문제를 절감했고, 주민들에게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어린이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현지 굿네이버스 직원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이 프로그램은 올해 하반기부터 지역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확대 실시될 예정이다.

“자원봉사자 신분이지만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았어요. 그만큼 책임과 노력도 뒤따르죠. 제가 몽골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뭔지 아세요? 굿셰어링 기업 정보와 지세이버의 작동 원리 등 업무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현지 지역개발사업장의 사무장님이 낸 쪽지 시험을 통과하는 거였어요(웃음).”

이처럼 봉사자의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한 이유는 굿네이버스가 봉사단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공모 프로젝트 덕분이다. 봉사자들이 현지에 맞는 사업기획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심사를 통해 실행 기회를 제공한다.

봉사자가 직접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반영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참여는 출국 6개월 이후부터 가능하다.

자원봉사자의 열정적인 참여는 현지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데 톡톡히 한몫을 했다.

윤혜인씨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에 위치한 ‘카페카카오’의 운영과 홍보에 참여했다. 카페카카오는 현지 커피 농가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난해 9월 문을 연 카페다. 윤씨는 카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인 대신 관광객과 교환 학생들을 대상으로 홍보 활동을 펼쳤고, 지역 상권을 발로 뛰며 할인쿠폰 등 제휴를 맺었다. 경제학을 전공한 데다 스페인어에도 능통한 그에게 카페카카오는 자신의 역량을 쏟아 부을 최적의 현장이었다.

GN Vol로 1년간 장기해외자원봉사를 다녀온 윤혜인, 이복주, 도혜미, 신형식(사진 왼쪽부터)씨.
GN Vol로 1년간 장기해외자원봉사를 다녀온 윤혜인, 이복주, 도혜미, 신형식(사진 왼쪽부터)씨.

“산토도밍고에는 남미에서 활동하는 국제 NGO가 많이 모여 있어요. 카페카카오를 산토도밍고의 NGO 네트워크 허브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카페카카오 홍보 업무를 하면서 남미 전역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주거 문제 해결 NGO ‘테초(Techo)’ 대표와 굿네이버스 현지 사무국의 미팅을 주선하기도 했어요.”

금융사에서 근무했던 이복주씨는 자신의 경력을 십분 살려 인도네시아 굿네이버스 본부의 기부금 이체 시스템 개편에 앞장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송금자 정보를 표시하려면 추가 수수료를 내야 해요. 기부자가 돈을 더 내고 이름을 밝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매번 누가 기부를 했는지 ‘추적 조사’를 해야 했죠. 본부 이사님께 가상계좌 도입 등 여러 가지 조언을 드렸고, 현지 은행과의 업무협약 추진 작업에도 참여할 수 있었어요.”

굿네이버스는 효과적인 봉사활동을 위해 사전에 각 사업국의 요청을 수렴, 봉사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전문 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서태원 굿네이버스 국제경영실장은 “봉사단원을 선발, 파견할 때 사업국의 요청뿐만 아니라 봉사자의 전문성, 외국어 능력 등 다양한 기준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열린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진정성 없다면 떠날 수 없어… 해외 자원봉사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

해외 자원봉사가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 변질돼버린 요즘, GN Vol의 선발 과정은 지원자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데 주목한다. 특히 ‘고산지대로 이동해야 하는데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 한정돼 있을 때 어떤 것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할까’ ‘기간 내에 맡은 일을 끝낼 수 없다면 현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등 가상의 문제 상황을 놓고 벌이는 토론 면접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봉사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이력서만 보면 저는 결코 남들보다 뛰어난 지원자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전형을 겪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는 걸 깨달았죠. 해외 자원봉사에 이력서에 한 줄 넣으려고 지원한 것과 현지의 문제를 직접 보고 현장에 뛰어들고자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요.”(신형식 봉사자)

깐깐한 선발전형을 통과했지만 이들 앞에 펼쳐진 것은 ‘꽃길’이 아니었다. 네 사람 모두 물 한 바가지로 온몸을 씻는 데 달인이 됐다. 따뜻한 기후의 인도네시아에선 시커먼 개미 떼와 주먹만 한 바퀴벌레가 방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출몰했다. 옥수수 전분을 끓여 만든 잠비아인 주식 ‘시마’는 먹을 때마다 어김없이 돌이 씹혔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법도 한데, 이들은 ‘돈 주고도 못 살 소중한 경험’이라며 활짝 웃었다. 나누기 위해 떠난 해외 자원봉사지만 오히려 얻어온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굿셰어링을 통해 ‘사회적경제’의 개념을 처음 접한 도씨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경제적 대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이씨는 삶의 방식으로서 이슬람교를 존중하게 됐고, 신씨의 성격에는 잠비아 사람들의 친절함과 낙천성이 그대로 스며들었다. 윤씨는 국제 개발의 꿈을 다잡았다.

“출국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가서 도와줘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이번 자원봉사를 통해 현지에 맞는 개발, 현지 주민이 주인공이 되는 사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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