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위한 일회성 봉사요? 저희는 10년을 약속했어요”

경희대 학생 자원봉사단 ‘발론티어 KIC’
기업 봉사단에 수만 명 몰리지만 이력서에 넣으려 오는 사람도 많아
한남꽁 마을에 10년간 봉사 약속
“마을 사람들 처음엔 반신반의… 두 번째 방문에 비로소 마음 열어”

지난 2010년, 이대학(25·경희대 국제학과 3년)씨는 국내 유통기업 A사의 대학생 해외봉사단에 합격해 캄보디아로 떠났다. 현지 초등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실로폰을 챙겨 갔는데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졌다. 교실 옆 창고에는 작년에 사용하고 학교에 기부한 실로폰에 먼지가 쌓여 있었던 것이다. 이재원(26·경희대 국제학과 4년)씨는 “기업들이 해외에서 우물을 파거나 벽화를 그려주는 봉사 활동을 진행하곤 하는데 유지·보수 등 후속 조치가 따르지 않아 방치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보여주기식·일회성에 그치고 있는 자원봉사의 한계점을 느끼며 대안을 찾고 싶었다. 이 둘을 비롯해 경희대 학생 9명은 ‘대학생들이 주도하는 봉사 단체를 만들자’며 2011년 4월, ‘발론티어 KIC(이하 KIC)’를 설립했다. 지난 22일 저녁, 강남역 한 카페에서 KIC 단원 5명을 만났다.

2012년 1월, KIC 단원들은 라오스의 한남꽁 마을 한 초등학교를 찾아 우물 파기 등 학교 환경 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발론티어 KIC 제공
2012년 1월, KIC 단원들은 라오스의 한남꽁 마을 한 초등학교를 찾아 우물 파기 등 학교 환경 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발론티어 KIC 제공

◇지역사회 밀착형 프로그램으로 진짜 봉사 활동을 시작하다

현대차그룹·LG·포스코·G마켓 등 대학생 해외 봉사단의 평균 경쟁률은 50대1이 넘는다. 지난해, 현대차그룹 ‘해피무브 글로벌 청년봉사단’에는 봉사단을 500명 뽑는데 지원자가 1만3500여명 몰려 약 27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포스코 비욘드 대학생 봉사단’의 경우 100명 모집에 1만여명이 몰리기도 했다. 이대학씨는 “함께 봉사 활동을 한 학생 중에는 현지 아이들 사진을 찍으면서 ‘이력서에 쓰면 좋을 사진’이라고 기록하더라”며 “이런 사람들이 팀 안에 있으면 사실상 봉사 분위기가 흐트러진다”고 했다.

KIC 단원들은 스펙 쌓기가 아닌 진짜 봉사 활동을 하고 싶었다. 2011년 1학기,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인 용인 서천초등학교에서 첫 봉사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가까운 곳부터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방과 후에 ‘영어연극교실’을 열기로 기획했다. 학교 주변에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을 돌려 20명을 모았다. 프로그램이 소문을 타자 2학기 때는 참여자가 40명으로 2배가량 늘어났다. 올해에는 수준별로 3개 반을 나누면서 경희대 강의실을 빌려 매주 금요일마다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지역사회와는 별개로 술만 마시고 놀기만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팽배했는데 어머니들을 비롯해 지역 주민들이 저희를 다르게 보세요. 해외 봉사 활동을 갈 때 물품을 좀 모아달라고 하면 선뜻 나서서 도와주신답니다. 주위에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습니다.”(김범석·24·경희대 국제학과 4년)

◇일회성에 그치는 자원봉사 아닌 ’10년의 약속’을 맺다

해외 봉사에 대한 고민은 KIC 초대 단장인 이재원씨가 라오스로 유네스코 워크캠프를 다녀오면서 시작됐다.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통해 수도 비엔티안에서 버스로 3시간 정도 떨어진 한남꽁(Haddnangkome) 마을의 열악한 교육 환경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 이씨는 KIC 단원 3명과 함께 라오스 해외 봉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작년 초, 학교의 해외탐방프로그램에 기획서를 제출한 것이 선택되면서 라오스로 갈 기회를 얻었다. 김범석씨가 마을의 이장님과 만남을 떠올렸다.

“1980년대쯤 일본의 자이카(JICA)가 와서 마을에 학교 지을 재료를 반만 주고 갔대요. 나머지는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부담해 학교를 지었는데 외벽도 무너진 상태였어요. 수업을 듣다 우물이 없어 집에 간 아이, 용변을 보러 숲에 갔다가 뱀에 물린 아이도 있단 이야기를 들었고요. 외부 지원에 대해 반신반의하더라고요. 10년 동안 한남꽁 마을의 교육 환경 개선을 돕기로 약속했습니다. 저희가 두 번째로 마을을 방문하자 그제서야 신뢰를 표현하시더라고요.”

1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대학·김범석·신수민·김한결 KIC 단원. 2 1년 만에 다시 찾은 한남꽁 초등학교에서 KIC 단원이 희망나무 벽화를 그리는 모습. /발론티어 KIC 제공
1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대학·김범석·신수민·김한결 KIC 단원. 2 1년 만에 다시 찾은 한남꽁 초등학교에서 KIC 단원이 희망나무 벽화를 그리는 모습. /발론티어 KIC 제공

지난해 여름, 라오스에서의 첫 프로젝트는 우물 파기였다. 학교 행정실에서 사업비를 지원, 지역 주민들에게는 물품 기부를 받았다. 용인시 자원봉사센터 공모사업에 기획서를 내서 재료비, 교구비 등을 마련했다. 2주간 프로젝트 기간 동안 단원 15명의 자부담금은 50만원 정도다. 해외 파견 봉사단을 선정할 때도 새로 가는 봉사자와 다녀온 사람의 비율을 일정 수준 비슷하게 책정한다. 기수를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올해 초에는 지난해 우물파기에 이어 무너진 외벽을 보수하고 회색 콘크리트에 벽화를 그렸다.

◇현지인과 함께하며 봉사의 선순환까지

“해외 봉사는 어려워요. 지난 1월에 라오스에 갈 때 벽화 시안을 준비해 가긴 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달랐어요. 불교 국가다 보니 ‘사원’을 그려달라고 하더군요. 라오스식 사원 옆에 한국의 사원도 그려달라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남대문을 그렸었지요…. 라오스 친구들한테 문화, 역사에 대해 미리 좀 물어볼 걸 아쉬움이 남았습니다.”(손수민·21·경희대 국제학과 3년)

2주간의 라오스 봉사활동에는 KIC 단원 외에 라오스 국립대 학생들도 함께 참여한다. 이대학씨는 “한남꽁의 주민들은 라오어라는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며 “프로그램 세팅 초기에 라오스 국립대에서 포럼을 열고 지역 사회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KIC가 국내 자원봉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동일한 이유에서다. 올해는 라오스 친구들이 직접 봉사단을 만들고 싶다고 자문했다. KIC 활동이 점점 알려지면서, 내년 1월에는 경희대 국제교류처에서 라오스국립대학을 방문해 공식적인 MOU를 맺을 예정이다. 10년의 약속이 실현될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봉사 활동 일정 중 마지막날에는 바자회를 연다. 한국에서 기증받은 옷을 저렴한 값으로 지역 주민에게 판매한다. 수익금은 돈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필요한 공책·비누 등으로 구입해 전달한다. 공짜로 주지 않는 이유는 지역 주민들이 내는 돈이 지역 사회의 교육과 환경 개선에 쓰인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지속성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봐요. 대학생 봉사는 대부분 일회적이잖아요. 봉사 한 번 하고, 봉사 시간 받으면 끝…. 이게 수혜자한테 정말 도움이 되었을까요?”(김한결·20·경희대 국제학과 2년)

김경하 기자

문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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