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수)

런던디자인어워드에서 주목한 국내 디자인, 보행 보조기구에 ‘온기’를 더하다

[인터뷰] 조성환 유니체스트 대표

지난달, 국내 디자인 기업 유니체스트가 목발, 보행기 등에 설치하는 온열필름 손잡이 모듈로 ‘2024 런던디자인어워드(London Design Awards)’에서 골드상을 수상했다. 런던디자인어워드는 제품, 그래픽, 건축 등 약 10개 분야의 전 세계 디자이너와 기업이 참여하는 국제대회다. 분야별 올해의 디자인, 플래티넘 위너, 골드 위너, 실버 위너 등 4개 상을 수여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약 2000점이 출품되는데, 한국 기업이 이 중 제품 디자인 분야 2등을 차지한 것이다.

‘2024 런던디자인어워드’에서 골드상을 수상한 유니체스트의 온열필름 손잡이 모듈. /유니체스트

어떤 고민으로 이 제품을 개발한 것일까. 지난 4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유니체스트 사무실에서 “수익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디자인을 전하고 싶다”는 조성환(39) 대표를 만나 제품 개발 스토리를 물었다.

조 대표는 이날 디자인한 모듈을 직접 가져와 소개했다. 모듈은 텔레비전 리모컨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기자가 모듈을 잡아보니 한 손에 쏙 들어왔다. 흡사 바나나를 쥔 것처럼 오동통한 외형은 한 손에 편안하게 감겼다. 손잡이 전면부 위와 아래에 하나씩 설치된 둥그런 버튼이 눈에 띄었다. 조 대표는 “버튼이 모듈의 핵심으로 윗면은 온열 기능, 아랫면은 조명 기능이다”라며 “보행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 느낀 불편함을 해결하고, 야간 보행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조성환 유니체스트 대표는 “앞으로도 수익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디자인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유현 기자

유니체스트가 해당 모듈 개발을 시작한 건 지난해 초다. 애견용품 판매 업체인 한케어의 한정석 대표가 강아지 리드줄에 온열과 조명 기능을 장착한 제품을 개발하자고 한 것이 계기였다. 소아마비 장애가 있던 한 대표는 “비슷한 기능을 넣은 보행 보조기기 손잡이 모듈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다.

“한 대표님이 왼발이 약해서 몇차례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는데, 겨울에 목발을 사용하는 게 불편하다고 하셨어요. 손은 시리고, 두꺼운 장갑을 끼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고요. 밤에는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하셨어요.”

보행 돕는 ‘손잡이 모듈’, 약자동행에 적합하다 여겨

유니체스트가 기획을 막 시작했을 무렵, ‘2023 서울시 약자동행 디자인산업 활성화 사업’ 지원 공고를 보게 됐다. 이 사업은 지난해 6월부터 서울시가 ‘약자동행 디자인’에 관심 있는 기업을 선정·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약자동행 디자인이란,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회·경제적 위치에 있는 이들의 일상생활 편의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마침 ‘손잡이 모듈 개발’을 위한 기회 같았다. 순적하게 사업에도 선정됐다. 해당 프로젝트로 유니체스트를 포함한 23개의 디자인 기업이 선정됐으며, 각 기업은 4000만원의 개발비를 지원받았다.

유니체스트의 강점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내부 설계까지 가능하다는 것. 온열 기능을 위해 연성 발열필름을 삽입하고, 발열온도는 사용자 편의에 맞춰 조절할 수 있도록 40도, 50도, 60도까지 3단으로 적용했다. 조명은 밝기 100Lm/W로 하단에서 비출 수 있게 버튼을 설치했다. 디자인부터 제품 설계까지 약 4개월이 소요됐다.

무엇보다 조 대표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사용자들이 모듈을 쥐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그립감이다. 인체공학적 설계를 위해 박재희 한경대 사회안전시스템공학부 교수로부터 컨설팅도 받았다. 조 대표는“실제 남녀의 손 크기에 맞게 직경과 길이에 대한 정량적 사이즈를 적용하고, 사용자가 손목을 과도하게 구부리지 않도록 각도 등도 조절했다”고 설명했다.

목발과 보행기에 설치한 모듈. /유니체스트

유니체스트의 모듈은 목발이나 휠체어, 각종 보행기 등 파이프가 있는 제품이면 어디든 결합해 사용할 수 있다. 해당 모듈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았던 이유에 대해 조 대표는 “국내에 온열 기능이 있는 보행보조기구 손잡이 모듈이 없다”라며 “소외 계층을 위한 디자인을 고려했다는 스토리가 가산점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9월, 협력 업체 한케어를 통해 모듈 500여대를 우선 생산할 예정이다.

친환경 히터로 세계 3대 어워드 수상 이력도

사실 유니체스트는 이미 사회적 가치를 지닌 디자인 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지난 2022년, 유니체스트가 개발한 친환경 히터인 ‘플린트 바이오히터’는 세계 3대 어워드로 꼽히는 IDEA 디자인 어워드와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각각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 실버상과 본상을 받았다.

소셜벤처 플린트랩과 함께 개발한 친환경 히터 ‘플린트 바이오히터’. /유니체스트

이 제품은 여전히 목탄 또는 석탄으로 난방을 하는 라오스나 캄보디아 등에 환경 친화적인 난방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소셜벤처 ‘플린트랩’과 함께 개발했다. 조 대표는 “석탄 난방은 가정 및 실외 대기 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디자인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플린트랩의 기술을 기반으로, 화석 연료 대신 폐식용유를 연소시켜 열을 전달하는 히터를 출시했다.

기업명 ‘유니체스트’는 Unique(독특한)와 Chest(상자)를 합쳐 ‘독특한 상자’라는 의미다. 조 대표는 ‘상자’를 ‘사회적 가치’라고 표현했다. 고객들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디자인을 전하겠다는 뜻이다. 조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영향력 있는 디자인을 고민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수익성과 더불어 가치 있는 디자인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근 디자인 시장의 흐름도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누구를 위한 건지, 친환경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지 등을 모두 확인합니다. 앞으로도 의미 있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한국 디자인’하면 유니체스트가 떠오를 수 있도록 글로벌 디자인 회사가 되길 기대합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oil_l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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