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로 떠오른 기업 사회공헌 공모전
기업, 아이디어 수급·홍보 목적으로 공모전 개최
젊은층은 사회공헌에 관심 갖는 등 긍정적 효과
참여 많지만 새롭지 않고 구체화 어렵다는 지적도
“작년 봄쯤 봉사활동을 하다가 친해진 사회복지사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사회에 유익한 아이디어를 내는 공모전에 함께 참가하면 어떻겠냐고요.”
주수빈(22·전남대 생물학과 4년)씨는 작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사회공헌정보센터가 개최한 ‘사회공헌프로그램 공모전’에 참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교보생명,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K-water, GS SHOP, 사회공헌정보센터 등 9개 기관이 제시한 주제로 공모가 이뤄졌다. 주씨는 “처음에는 사회공헌이라는 개념이 낯설었지만 4개월 가까이 밤을 지새우며 국내외 기업 사회공헌 활동과 사회복지 분야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녀가 속한 ‘한톨’ 팀이 제안한 아이디어는 ‘모바일 게임, 사회공헌에 날개를 달다’. 시민들이 게임 개발 업체의 재능기부로 제작된 게임을 플레이하면 독거노인 등 소외 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기부금이 모인다. 게임 기부금의 재원(財源)은 여러 기업의 후원을 통해 마련된다. 주씨는 “직접 기부하기 어려운 10대와 20대가 나눔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했다”며 “총 4년에 걸쳐 프로그램이 구체화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작년 11월 한톨 팀은 최우수상(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았다.
주씨는 “노인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는 등 좋은 기회가 됐다”면서도 약간 아쉬워했다.
“시상식에서 다양한 공익 분야 종사자들을 만나는 시간은 있었지만 저희가 제안한 프로그램이 실제로 적용된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어요. 우리 팀의 아이디어가 시민들 앞에 선보일 그날이 언제가 될지 궁금하네요.”
◇참신한 아이디어 모집, 기업 사회공헌 홍보 수단… 사회공헌 프로그램 공모전이 뜬다
최근 ‘기업 사회공헌 공모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제한된 기간 내에 특정 주제에 맞춰 대학생·일반인 등 참가자들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프로그램 공모전 형식이 가장 많고, 참가자들이 자원봉사나 사회공헌 활동 기획안을 내면 기업이 심사를 거친 뒤 사업을 지원하는 유형의 공모전도 있다. 2008년 시작해 올해 7회째를 맞는 공모전을 포함해 올해 열렸거나 진행 중인 사회공헌 관련 공모전 개수만 해도 이미 10개에 달한다.
특히 방학 기간에 맞춰 대기업들의 공모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일 사회 혁신 공모전 ‘투모로우 솔루션(Tomorrow Solutions)’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작년 처음 시작해 올해 2회째를 맞이하는 투모로우 솔루션 공모전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공헌 활동 아이디어 응모 행사로 참가자들은 교육, 건강·의료, 환경, 지역사회 4개 주제 중 한 가지를 선택해 프로그램 제안서를 작성한다. 예선과 본선, 결선의 3차 경쟁을 통과한 팀들은 총 1억8700만원 규모의 상금 및 실현 지원금을 받으며, 본선 진출 팀들은 삼성전자 직원들의 멘토링을 받으며 직접 아이디어를 기획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국민으로부터 제안받고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행사를 확대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도 지난 1일부터 이달 말까지 국민 참여형 사회공헌 활동인 ‘인리칭(Enriching)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인리칭 홈페이지를 방문, ▲소상공인의 우수 제품을 롯데마트에서 3개월간 판매 및 홍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드림 스토어'(Dream Store)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인 ‘미래의 CEO’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다문화 콘서트’ 등 롯데그룹이 제시한 7가지 아이템 중 하나를 선택하면 롯데그룹이 가장 많은 득표를 받은 프로그램을 9월부터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롯데그룹은 웹툰, 블로그 등을 활용해 인리칭 캠페인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사회공헌 공모전 왜 늘고 있나
기업 관계자들은 공모전을 개최하는 이유로 ‘창의적인 아이디어 수급’을 꼽고 있다. 임의종 킨텍스 CS홍보팀 과장은 “지역 상생을 주제로 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대학생들의 창의적 관점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해 ‘킨텍스 영 크리에이터’ 공모전을 작년부터 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사회공헌 프로그램 공모전을 사회공헌 활동 홍보의 수단으로 병행하고 있다. 박규희 신협중앙회 홍보실 차장은 “신협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젊은 층이 많이 모르는데, 공모전을 통해 청년들이 신협의 활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서 “20일 정도의 단기 공모전을 진행했는데도 50편 가까이 응모작이 올라와 내부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답했다. 현대차정몽구재단과 KT&G는 자사의 사회공헌 활동을 광고로 표현하는 광고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실제로 공모전을 개최할 경우 참가자들의 뜨거운 관심이 곧바로 이어진다. NH농협생명이 작년 4월 한 달간 진행한 ‘착한 생각 뽑기!’ 사회공헌 아이디어 대학생 공모전에는 8개 수상작 모집에 무려 254개 팀이 참여해 31.75대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는 기업 간 사회공헌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공헌 활동이 기업 평가의 수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면서 기업들의 사회공헌 참여는 확대되는데, 타 기업과 차별화되면서 동시에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압박감이 사회공헌 현장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한 외국계 의류 회사의 사회공헌 담당자 C씨는 “사회공헌 관련 부서는 인력 배정도 적고 여타 부서 직원들과의 교류도 많지 않아 신규 아이디어 개발이 어렵다”며 “사회공헌 관련 모임이나 콘퍼런스에 참석해보기도 하지만 기존 사업 사례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회사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많다”고 말했다.
◇기업 이미지 개선 효과 있다 VS. 참신한 아이디어 부족하고 ‘공모전 헌터’만 는다
하지만 사회공헌 공모전이 꾸준히 열리고 있음에도 사회공헌 공모전에 제출된 아이디어가 실제 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은 편이다. 작년 프로그램 공모전을 진행한 기업 5곳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얼마나 구체화했는지 문의한 결과 “프로그램 개발을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밝힌 기업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아이디어 검토 중’ 상태에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아이디어는 많았는데, 실현 가능성 부분에서 기업 현장과 유리(遊離)됐어요. 실제로 수상작 중 상당수가 신협에서 이미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상품과 일정 부분 중복되거나 현 금융 시스템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죠.”(박규희 신협중앙회 차장)
기업 관계자들은 참가자들의 아이디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사업 구체화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기업은 각자의 비전과 강점, 한계 등을 고려해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경영을 하는데, 대학생들은 이 점을 고려하지 못한 채 아이디어만 내놓다 보니 적용이 쉽지 않는다는 것. 공모 내용이 기대만큼 창의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푸념도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지역 복지관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거나 회사 공간 무료 임대, 회사 물품 지원 등 ‘뻔하디뻔한’ 사회공헌 아이디어가 올라온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밝혔다.
사회공헌 공모전이 인기를 끌면서 취업 등 ‘스펙’을 목표로 공모전에 참여하는 대학생이 생기는 점은 또 다른 부작용이다.
작년 한 사회공헌 공모전에 참가한 황수영(가명·26)군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서 무언가 대외 활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이런저런 공모전을 알아보다 우연히 사회공헌 공모전에 참석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NH농협생명 사회공헌 아이디어 대학생 공모전 대상 수상자는 한 공모전 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7번의 공모전 참여 경력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부 기업 관계자들은 ‘공모전 헌터’들이 사회공헌 공모전을 단순한 기획·마케팅 공모전으로 생각하고 무분별하게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공모전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 금융 기업 관계자는 “심사 과정에서 수상을 목적으로 경쟁사의 사회공헌 활동 내용을 베껴온 금융상품 아이디어 제출안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미완의 사회공헌 공모전, 전문가 개입 등을 통한 아이디어 추가 개발 필요해
한편 공모전 결과를 기업 사회공헌에 도입하려는 기업도 있다. 경기도시공사는 제1회 경기도시공사 사회공헌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미듬팟’팀의 ‘지움(G-UM)하우징’ 시범 사업 운영을 준비 중이다. 지움 하우징은 경기도시공사가 지역 NGO와 함께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소외 계층을 조사·선정한 후 기업과 건축학 전공 대학생, NGO가 공동으로 참여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건물 개·보수 프로그램이다.
이민호 경기도시공사 홍보팀장은 “경기도시공사가 가진 건축 노하우를 잘 살릴 수 있는 사회공헌 아이템이라 판단해 도입을 결정했다”며 “공모전에 참여했던 대학생들과 한국해비타트와 함께 구체적인 진행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 10월경에 파일럿 프로그램이 가시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GS칼텍스도 2014 예술치료 프로그램 기획안 공모전 대상작인 ‘웰컴투마이텐트’ 프로그램을 보완해 다음 달 5일부터 1박2일간 예술치료 캠프를 개최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 중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캠프에 참여해 나만의 텐트 만들기 등 다양한 예술 체험 활동을 갖는 점이 특징이다.
김지혜 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러 아이디어를 제시받고 거기서 아이템을 선별하는 방식이 아닌, 교수나 사회공헌 담당자들이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함께 참여해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이 효과적인 공모전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