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세상이 무서운 은둔형 외톨이 위해 ‘안무서운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고립 당사자들의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두려움’이에요. 세상이 무서운 거죠. 방 밖에서 이들을 맞아 줄 ‘안 무서운 집단’이 필요해요. 그런 회사가 되자는 뜻에서 이름을 ‘안무서운회사’로 지었습니다.”

지난 10일 서울 강북구 주택가에 위치한 안무서운회사를 찾았다. 이름은 ‘회사’지만, 사무실은 여느 회사들과 다른 가정집 형태였다. 안무서운회사는 방 세 개가 딸린 주택 두 채를 셰어하우스로 운영한다. 고립 생활을 하던 청년들이 함께 지내며 다시 세상과 관계를 맺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다. 지난 2월부터 12월까지 10여 명의 고립청년이 생활하다가 퇴소했다. 이날 셰어하우스는 오는 3월 새 가족을 맞기 위해 재정비 중이었다. 유승규(30) 안무서운회사 대표와 고립 경험 청년 안윤승(22)씨가 취재진을 맞았다.

지난 10일 만난 유승규(왼쪽) 안무서운회사 대표와 고립 경험 당사자 안윤승씨. 안무서운회사는 고립청년들이 단계적으로 사회로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한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 10일 만난 유승규(왼쪽) 안무서운회사 대표와 고립 경험 당사자 안윤승씨. 안무서운회사는 고립청년들이 단계적으로 사회로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한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유승규 대표는 20대 절반을 집에서 은둔하면서 보냈다. 20살 때부터 3년, 군대 제대 후 2년을 방에만 있었다. 그러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지원하는 일본 비영리단체 ‘K2’ 자립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시 사회로 나왔다. 2021년 12월 K2가 한국에서 철수하고 두 달 후 K2에서 만난 친구 4명과 함께 안무서운회사를 만들었다. 안윤승씨는 20살 때 6개월 동안 고립 생활을 하다가 K2에서 유 대표를 만나 3년째 함께 지내고 있다.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는 나이 ‘스무살’

지난 1월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집에서 6개월 이상 은둔 생활을 한 만 19~39세 청년은 지난해 기준 전국에 6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 대표는 “국내에 고립청년이 점점 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사람들 앞에 잘 나서려고 하지 않는 고립청년 특성상 당사자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저희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이름도, 하는 일도 조금 특이하다.

유승규=일종의 ‘셰어하우스’다. 혼자 방에서 은둔하던 청년 10여 명이 모여 산다. 망가졌던 생활 루틴을 회복하고, 서로 공감과 지지를 해주면서 자존감을 회복해간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씻고, 밥을 해먹고. 회사에서 청년들에게 심리상담이나 연극 체험 같은 프로그램에 연결해주기도 한다. 모든 극복 과정을 은둔 경험이 있는 매니저들이 함께한다. 또 고립청년 문제가 사회적으로 조명받을 수 있도록 청년들을 언론 인터뷰, 연구 사업 등에도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안윤승=승규 형이 좋아서 계속 같이 살고 있다. 내 상황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게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이제 성격도 많이 달라졌다. 다른 친구들은 꼭 승규 형이 아니라도 서로한테 정서적 기반이 돼주기도 한다. 작년에 살던 친구들 몇 명은 계속 같이 살기로 하고 자취방을 얻어서 나갔다.

-청년들이 고립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는?

유승규=이유는 다양하다. 대부분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바쁘다보니 유대를 쌓을 시간이 없었다. 경제위기로 붕괴된 가정도 많다. 가정에서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불만과 갈등이 누적된다. 학교에서 상처받은 경우도 있다. 따돌림을 당했는데 도움을 청할 어른이 없던 거다. 부모님한테 ‘학교 가기 싫다’고 우회적으로 털어놨는데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같은 반응이 오면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꺾여버리기도 한다. 사회에서 삐끗했을 때 구해줄 안전망을 찾지 못하면 삶에 대해 괜한 배신감이 들고 병리적인 증상이 생긴다. 누적된 갈등은 주로 성인이 되고 나서, 스무살 때 터져 나온다. 고립 생활도 이때 가장 많이 시작한다.

안윤승=부모님과의 갈등이 곪아서 터지는 순간 고립 생활이 시작됐다. 대학교 입학 당시 코로나19 때문에 거의 비대면 수업을 했다. 그러다 딱 하루 대면수업하는 날이 있었는데 안 갔다. 부모님은 ‘대학 보내놓았더니 공부 안 한다’면서 혼내셨다. 사실 난 오래전부터 사회 공포증이 심했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남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했는데, 가족들한테는 털어놓지 않았다. 말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러다 결국 폭발해버린 거다. 그날부터 6개월 동안 거실에도 잘 안 나가고 방에만 있었다.

-유 대표님도 은둔 생활을 했었다고. 지금은 적극적인 성격 같다.

유승규=원래 고등학교 때까지 동아리 회장도 하고 친구도 많았다. 스무살에 부모님과 진로로 갈등을 겪으면서 갑자기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았나?’ ‘너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너무 따르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의욕이 생기기보다는 막막한 느낌이 더 커지면서 점점 뒤로 물러나게 됐다.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나중엔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게 부끄럽고, 사람들 앞에도 나서기 싫었다. 방은 점점 쓰레기장처럼 변하고, 이것마저 다 내가 게을러서 벌어진 일인 것 같아 자책하는 악순환이 계속 됐다.

유승규 대표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지면 실효성있는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면서 "안무서운회사 활동을 통해서 고립청년들의 경험이 의사결정과정에 반영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유승규 대표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지면 실효성있는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면서 “안무서운회사 활동을 통해서 고립청년들의 경험이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도와줄 한 사람만 있다면

-방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안윤승=누군가와 너무도 대화하고 싶은데 할 사람이 없었다. 내가 처한 현실을 직면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방에서 계속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됐다. 하루종일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보고, 책을 읽었다. 회피한 거다.

유승규=당사자들도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다. 하지만 이전의 삶을 내려놓고 수년을 보내고나면 밖이 무서워진다. 난 몇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세상은 많이 바뀌었으니까. 그 상태에서는 생활 리듬도 다 깨진 상태다. 루틴을 찾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취업해라, 뭐해라, 계속 몰아붙이기만 하니까 회복이 안 된다. 혼자 해결하려다 몇 번 실패하면 패배감과 수치심만 쌓인다.

-서울시에만 고립청년이 13만명이라고 한다. 고립을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볼 수는 없을 것 아닌가.

안윤승=당사자가 되면 다 개인 탓 같다. 다 내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 같고,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혼자 해결하려고 한다. ‘이번엔 꼭 헬스장에 가야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새롭게 시작해봐야지’. 결심은 무수히 하는데 막상 나가려면 무섭다.

유승규=방에 있다가 히키코모리가 주인공인 일본 영화를 몇 편 보게 됐다. 주인공이 당시 내 모습과 너무 비슷했다. 그때 처음 ‘내가 히키코모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일본 지원 단체 K2를 알게 돼 자립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중에는 매니저로 일하다가 일본 본사에 가서 ‘나 같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알게 됐다. 그제서야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걸 알리는 게 중요하겠다.

유승규=맞는다. 안무서운회사에서도 당사자들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다’ ‘힘들면 이런 도움을 청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당사자들 공통점이 먼저 ‘도와달라’고 말을 못한다. 하지만 딱 한 명이, 처음만 함께 해주면 그다음은 쉽다. 혼자 해나갈 수 있다.

안윤승=작은 일이라도 함께 해주는 게 중요하다. 학교에서, 가족 안에서 배재 당하다 보면 나를 드러낼 용기를 모두 잃게 된다. 그럼 사회적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구든 잘하고 좋아하는 게 있다. 이걸 응원해 사람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에 대해 들어주고, 함께 해줄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된다.

-가장 시급한 지원은.

유승규=고립청년이 늘어날수록 국가 차원의 손해도 막심하다. 생산가능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한창 일할 나이인 청년들은 방에만 있으니까. 게다가 그 가족들도 영향을 받지 않나. 고립청년에 대한 법적 기반부터 만들어야 한다. 현행법대로라면 고립청년은 취약계층 분류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회사처럼 고립청년을 돕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길게는 20년 동안 은둔한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을 돕는 데 정말 품이 많이 들어간다. 민간에서만 지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일하던 사람들도 지쳐서 결국 떠난다. 국내에는 아직 상담 영역이든 지원 체계든 고립청년 문제 접근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하다. 법령이 만들어져야 예산이 편성되고, 이 분야에서 일할 인력도 양성될 수 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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