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美 에너지 싱크탱크 IEEFA “한전 녹색채권 투자 경계해야”

한국전력공사 채권에 대한 투자를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다. 화석연료 중심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전의 현 상황에서는 막대한 규모의 적자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기후솔루션은 13일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가 이날 공개한 ‘한전의 청정에너지 전환이 위태롭다’ 보고서를 인용해 이 같이 밝혔다.

전남 나주 한국전력공사 본사 전경. /조선DB
전남 나주의 한국전력공사 본사 전경. /조선DB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국제 정세의 영향으로 유가와 석탄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전의 적자는 크게 불어났다. 올해 상반기 한전의 영업적자는 14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한전은 채권 발행을 늘리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연말에는 회사채 발행액이 법정 한도인 70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한전이 재무위기를 마주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지적했다. 헤이즐 제임스 일랑고 IEEFA 연구원은 “화력발전이 한전 발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연료비가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는 구조를 감안했을 때, 변동성이 크고 비싼 화석연료에 대한 과도한 노출이 지난 10년 동안 한전의 수익을 악화한 주범”이라고 했다.

이 같은 문제는 한전의 비정상적인 거버넌스로 인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능한 경영진과 이사회가 단기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을 위주로 투자를 결정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영업실적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청정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미뤄졌다. 보고서는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거버넌스였다면, 에너지믹스와 사업 전략을 바꾸면서 위기에 즉각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전은 채무를 이행할 수 있는 수준을 넘겼지만, 여전히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전의 부채상환충당비율은 -0.15%에 그쳤다. 총 부채 중 절반 이상은 채권으로 조달됐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보고서는 “한전이 정부의 구제금융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한전의 신용등급에는 이 같은 재무적 리스크가 과소평가 돼 있다. 한전의 자체 신용등급은 투자 부적격 수준으로 강등됐지만, 장기 신용등급은 한전에 대한 정부의 암묵적인 지급보증 가능성을 근거로 6~8단계 높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채권 투자자들은 여전히 한전의 채권을 매입 중이다. 보고서는 “투자자들이 화석연료로 인해 재무위기를 맞닥뜨린 한전에 자금을 제공하면서 한전의 막대한 탄소 배출과 에너지전환 실패에 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무위기가 악화하자 한전은 지난 5월 해외 석탄·가스 발전자산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매각 대금은 전기요금으로 회수하지 못한 전력 구매대금과 회사의 채무를 상환하는 용도로 사용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머지않아 좌초될 화력발전 자산을 적절한 수준의 비용을 투입해 인수하려는 주체가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한전의 녹색채권 발행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면서 “녹색채권 투자자들이 그린워싱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전이 화석연료의 일종인 액화 천연가스(LNG)를 중심으로 향후 발전 믹스를 구성하고 있으며, 블루수소 같은 검증되지 않은 저탄소 기술에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이유다. 보고서는 “한전의 경영진·이사회를 포함한 거버넌스의 전면적인 개편을 수반하는 대대적 개혁과 상당한 자금 유입 또는 정부 개입이 담보되지 않는 한, 투자자들은 한전의 채권을 인수하는 데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기후솔루션이 지난 8월 발간한 이슈브리프 ‘한전 적자 부추기는 전력시장제도’에 따르면 한전이 화력발전 자산에서 탈피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원인은 우리나라 전력시장 구조에 있다. 한전은 우리나라 전력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면서, 자회사를 통해 화력발전 중심의 발전사업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전의 경영진이나 이사회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으로 재무위기가 악화하고 있음을 인식했더라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기후솔루션은 “한전의 재무위기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선 한전의 망 사업과 발전사업을 분리하는 것 같은 조치를 시행해 이해 상충 요소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한가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한전은 정부 개입을 당연시하면서 화석연료에 대한 노출을 줄이려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며 “결국 이러한 도덕적 해이는 국가와 국민에게 전가되는 재정적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어 “한전의 자본 잠식 사태와 전력시장 마비를 막기 위해선 정부 지원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현재 같은 화석연료 중심 시스템을 유지한 채 정부가 한전을 구제하는 것은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격이며 관련 리스크를 더 키울 뿐”이라며 “정책결정자들은 사채발행한도 증액 같은 구제방안 도입에 앞서 한전에 2030년 석탄 퇴출 목표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조건을 밝히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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