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Cover Story] 각개전투서 사회공헌 동맹으로…’착한 성과’ 위해 머리 맞대고 공부합니다

[Cover Story] 기업 CSR 담당자들의 자조모임 ‘CSR포럼’ 

‘CSR포럼’은 기업 사회공헌의 전문성과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 매월 정기 포럼을 개최해 함께 공부하고 연구한다.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CSR포럼의 핵심 멤버 6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상두 한국암웨이 CSR스페셜리스트, 유순 한국조폐공사 공공혁신처 차장, 김도영 CSR포럼 대표, 권연주 스마일게이트재단 사회공헌실장, 유준규 러브FNC재단 센터장, 황애경 메트라이프코리아재단 사무국장.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한 달에 한 번 기업 사회공헌 분야를 담당하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팀장들이 서울 모처의 강의실로 모여든다. 삼성·SK·현대 등 대기업부터 이제 막 CSR에 뛰어든 중소기업 담당자들까지 모두 한공간에 둘러앉아 CSR을 공부한다. 열심히 듣고, 받아 적고, 토론한 뒤 해산한다. 흔한 뒤풀이도 없는 심심한 모임이지만 6년째 이어지고 있다. CSR 담당자들의 자조모임 ‘CSR포럼(Forum)’ 얘기다.

지난 2014년 1월 설립된 CSR포럼은 각지에 흩어져 있던 기업 CSR 담당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발적으로 꾸린 모임이다. ‘어떻게 하면 사회공헌을 전문성 있게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순수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회원들은 매월 넷째 주 금요일에 열리는 정기 포럼에 참여해 CSR 관련 주제로 발표하고 의견을 나눈다. 현재 350여 개 기업, 54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됐을 정도로 성장했다. 김도영 CSR포럼 대표는 “사회공헌에 대한 고민을 넘어 기업이 우리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대표 멤버 6인을 만났다.

◇기업 간 CSR 경쟁 무의미… 노하우 아낌없이 공유

―CSR 담당자들이 모여서 CSR을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다. 어떻게 시작된 모임인가?

김도영=원래 사회공헌팀은 기업 내부에서 주목받는 팀이 아니었다. 실무자들은 각개전투식으로 사회공헌이란 분야를 개척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서로의 경험이나 지식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담당자들에게 제안했다. ‘기업 안에서 외롭게 사회공헌하지 말고 밖에 모여서 같이 즐겁게 해보자’고. 첫 모임에 무려 60명이 모였다. 김상두 CSR스페셜리스트(한국암웨이) 등 초반 멤버들과 위원회를 만들었고, 그때부터 매달 포럼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김상두=흔히 CSR 부서라고 하면 ‘회삿돈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하는 부서’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오해받지 않으려면 실무자가 끊임없이 공부해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CSR포럼은 특강이나 사례 발표, 그룹 토의 등을 통해 실무자들의 전문성을 키워준다. 그러다 보니 관심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규모도 점점 커지게 됐다.

―이 자리에 모인 담당자 6명의 CSR 경력을 합치면 65년이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7년간 각자 CSR 업무를 해왔다. 알 만큼 아는 ‘베테랑’들인데, 각자 어떤 이유로 모임에 참여하고 있나.

황애경(메트라이프코리아재단 사무국장)=CSR 업무를 한 게 올해로 15년째인데 시간이 갈수록 네트워크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더 많은 사례를 알고 싶고, 다른 기업에서는 어떤 사업을 하는지 궁금하다. 늘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하고, 변화를 잘 따라가야 하는데 이런 중요한 정보들은 인터넷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CSR 담당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면서 돈 주고 살 수 없는 고급 정보들을 얻는다.

유순(한국조폐공사 공공혁신처 차장)=회사가 지방(대전)에 있다 보니 서울에 비해 정보가 부족한 게 늘 아쉬웠다. 포럼에 한 번 참석하려면 기차를 타고 먼 길을 오가야 하지만, 여기에서 얻은 정보나 지식들이 실제 업무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만족스럽다.

권연주(스마일게이트재단 사회공헌실장)=NGO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내게 기업은 늘 사회공헌의 ‘파트너’였다. 그런데 기업재단으로 옮기고 나니 기업 관점의 인사이트가 필요했고, 빨리 배우고 싶어서 2년 전부터 포럼에 나오기 시작했다.

유준규(러브FNC재단 센터장)=CSR 경력으로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내가 가장 막내인 것 같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15년 정도 일하다 2015년부터 회사의 CSR 업무를 맡았다. 전혀 모르는 분야였기 때문에 전쟁터에 내던져진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도움받을 곳을 찾다가 2016년부터 CSR포럼에 참여하게 됐는데, 선배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함께 고민을 나누고 의논할 수 있는 ‘가족’을 포럼에서 만난 덕에 이제 고아에서 벗어났다(웃음).

―월별 정기 포럼의 주제는 어떻게 정하나?

김도영=포럼 주제는 CSR 트렌드를 반영해 결정한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CSR/CSV와 사회 혁신 ▲지속 가능 경영과 기업 특성별 CSR ▲CSR의 새로운 트렌드 ‘임팩트 투자’ ▲기업 사회공헌을 위한 내실 있는 파트너 찾기 등을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다. 또 홀수 달은 기업 담당자끼리 포럼을 하고, 짝수 달은 비영리기관이나 정부기관 등을 함께 참여시키는 ‘오픈 포럼’으로 운영한다. 기업 혼자서는 절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해 성과를 만들자는 게 CSR 포럼의 철학이다.

―포럼 마지막 순서인 ‘네트워킹’ 시간에 알짜배기 정보가 많이 오간다고 들었다.

황애경=그때가 각자가 가진 정보, 경험이 가장 활발하게 공유되는 시간이다. 서로 필요한 것들, 궁금한 것들, 어려운 점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즉석에서 ‘미니 컨설팅’이 이뤄지기도 한다. 지난달 포럼에서 강원랜드 CSR 담당자를 만났는데, 우리가 1년 전에 고민했던 것을 똑같이 고민하고 있더라. 그래서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3000만원짜리 컨설팅을 무료로 해준 셈이다(웃음).

22일 진행된 인터뷰에 참여한 ‘CSR포럼’ 멤버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애써 터득한 노하우를 타사 담당자에게 그렇게 쉽게 가르쳐줘도 되나?

황애경=기업마다 경영 전략과 철학,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사업을 해도 결과물이 같을 순 없다. 다른 회사 담당자에게 접근 방식이나 방향성을 알려줘도 결국 세부 그림은 본인이 자기 조직의 비즈니스 전략에 맞게 다시 짜야 한다.

유준규=마치 하나의 원작을 여러 가지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떻게 각색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온다.

―CSR 영역에서는 기업 간 경쟁이 무의미하다는 뜻인가?

권연주=기업 사회공헌의 목표는 결국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아닌가. 기업마다 접근 방식이 다르고 과정이 다를 뿐 ‘사회 구성원에게 이득이 되는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궁극적인 목표가 같기 때문에 각자가 알고 있는 것을 서로 나누는 게 중요하다.

김도영=기업들끼리 누가 CSR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기업 사회공헌의 성과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국민에게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이 잘하는 것보다 전체 기업의 사회공헌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사회공헌팀은 ‘착한 일 하는 조직’이 아니라 ‘성과를 내는 조직’

김도영 대표는 “최근 몇 년 새 기업 사회공헌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우리 기업들의 사회공헌 방식은 소외된 이웃에 대한 기부나 자원봉사 등 일방적인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들이 ‘기업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이제 단순한 도너(기부자)를 넘어 직접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

김도영=소셜 임팩트(Social Impact)를 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즉,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돕느냐’보다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느냐’를 따지게 된 것이다. 기업 로고가 찍힌 조끼를 입고 봉사를 하는 것만으로는 그런 임팩트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새로운 전략,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기업 내에서도 사회공헌팀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김도영=기존에는 사회공헌 담당자들이 홍보팀이나 총무팀에 속해 있었는데 최근 들어 HR팀이나 최고경영자 직속 조직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업 내에서 사회공헌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사회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경영 활동을 해야 한다. 이른바 ‘지속 가능 경영’이다. 기업의 단기·중기·장기적 지지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바로 사회공헌 활동이다.

황애경=밖에 나가서 사회공헌 담당자라고 하면 ‘선량한 활동가’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데, 사회공헌팀은 ‘착한 일 하는 조직’이 아니다. ‘성과를 내는 조직’이다. CSR 담당자들은 누구보다 전략적이어야 한다. 기업의 전략과 사회공헌 활동을 연계해 성과를 내야 한다. 우리의 사회공헌 활동이 회사의 비즈니스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CSR 담당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뭔가?

유순=우리끼리 만나면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얼라이언스(Alliance·협업)’다. 여태까지는 주로 기업과 NGO가 협력해 사회공헌을 진행했는데, 앞으로는 기업 간의 얼라이언스가 확대될 것이다. 실제로 2016년 대전에 본사를 둔 공기업들이 모여 ‘퍼블리코 대전’이라는 얼라이언스를 만든 적이 있는데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

―기업들이 손을 잡고 사회공헌을 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것 같다.

권연주=사회문제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얼라이언스로 갈 수밖에 없다. 하나의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로 다른 시각과 능력을 가진 기업들이 뭉쳐야 한다.

김상두=시도들은 이미 나오고 있다. SK의 ‘행복얼라이언스’가 기업 간 얼라이언스의 대표적인 사례다. 개별 기업들이 가진 리소스를 조금씩 내놓아 전체 파이를 키우자는 게 얼라이언스의 핵심이다. 물론 이런 모델을 확산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시도들이 계속 쌓이면 어느 순간 임팩트가 생길 것이다.

―‘CSR포럼’ 안에서도 얼라이언스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유준규=지금 이 자리에 모인 기업들만 봐도 그림이 나온다. 엔터테인먼트, 금융, 게임, 건강 등 다양한 업종이 모여 있지 않나. 서로가 하는 사회공헌을 연계하기만 해도 시너지가 나올 것이다.

권연주=(유준규 센터장을 가리키며) 러브FNC재단에서 저개발국가에 학교를 지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실 우리도 처음에 저개발국가에 학교 지어주는 사업을 했었다. 하지만 비용 대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지금은 교육 콘텐츠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러브FNC재단이 짓는 학교에 우리 스마일게이트의 교육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식으로 힘을 합칠 수도 있겠다.

황애경=메트라이프의 금융 교육 콘텐츠를 스마일게이트가 게임으로 만들어 제공하면 어떨까.

유준규=당장 제안서를 써야겠다(웃음).

김도영=함께 힘을 합칠 때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그 믿음이 6년째 CSR포럼을 이끌어온 동력이다. 올해는 해외로 네트워크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우리 기업들의 CSR 경험과 노하우가 지구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 확신한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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