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영국 반부패 현장을 가다-②] 반부패를 경쟁력으로 삼는 영국 군수업체들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칼럼

영국 반부패 현장을 가다 –2편 영국 기업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 물에 뜨지 않는 구명조끼, 가라앉지 않는 잠수함… 군용품 납품비리에서부터 수조원이 넘는 계약 비리까지 그동안 우리가 수없이 목격해온 방산비리의 모습입니다. 많은 부패 사건 가운데서도 방산비리에 더욱 분노하는 이유는 이것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죠.

부패에 대한 국민의 민감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입니다. ‘방위산업은 부패의 관습을 끊고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의 기반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지난 4월 UNGC 한국협회와 BSI 코리아는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강력한 반부패 정책으로 유명한 영국으로부터 한 수 배우기 위한 발걸음이었습니다.

1편에서는 국방획득지원본부(DE&S) 및 감사원(NAO) 등 영국 정부기관의 반부패 정책을 소개하고 2편에서는 반부패에 앞장서는 영국 방산기업 사례를 다룰 예정입니다. 마지막 편에서는 방산업계의 자발적 참여와 감시 기능을 담당하는 시민사회를 이야기합니다. 

환골탈태’. 최근 약 10년간 영국 방위산업을 상징하는 키워드입니다.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가 만난 기업 중 일부는 과거 뇌물 및 부패 혐의로 연루됐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큰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 시스템과 문화를 개선해나가고 있죠. 이들은 개선된 반부패 이행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어떤 노력을 거쳤는지 한국 군수업체 관계자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롤스로이스 PLC의 군용 비행기. ⓒ롤스로이스 PLC

 UNGC 한국협회 연구팀(이하 UNGC 연구팀)은 지난 4 9일부터 13일까지 런던, 바질던, 브리스톨, 울버스턴(영국 북부) 지역을 거치며 방위산업의 반부패 시스템을 공부하고 왔습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롤스로이스 PLC(Rolls-Royce PLC)입니다. 이 기업은 미국의 GE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항공기 엔진을 제조했습니다. 1884년 설립돼 세계 1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항공기에 롤스로이스 PLC의 엔진이 탑재됐지요. 최근엔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사실, 롤스로이스 PLC도 부패사건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방위산업 반부패 우수 사례로 꼽은 이유는 지속성실행력때문입니다. 롤스로이스 PLC는 2012년 해외시장에서의 뇌물 및 부패 혐의로 지난해 미국의 법무부와 영국의 중대비리조사청으로부터 각각 5, 3년의 기소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강력한 반부패 이행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기업문화를 탈바꿈해야 했죠. 이에 롤스로이스 PLC는 준수 프로그램의 설계, 준수 및 모니터링을 위해 2013년 독립된 전문가인 로드 골드(Lord Gold)를 선임해 현재까지 이 시스템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롤스로이스 PLC 본사 회의실에 들어서자, 테이블에 놓인 어마어마한 자료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방대한 양의 자료들에 대한 설명을 일일이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아찔해졌지만, 철저하게 준비한 이들의 자세에서 걱정보다 기대가 커졌습니다. 롤스로이스 PLC 사내 준법책임자와 준법지원인은 롤스로이스 PLC의 행동규범은 이행 대상 범위가 넓을 뿐 아니라 이행 강도 또한 매우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우선 2012년 기소유예에 따른 준수 내용에는 ▲임직원, 이해관계자에게 명확한 행동기준 마련 및 제시 ▲반 뇌물, 부패, 오프셋, 선물, 접대 및 로비규정이 반영되도록 개정된 윤리·준수 방침 수행 ▲윤리·준수 전문가로 구성된 상위직급팀 운영 ▲전 세계적으로 24시간 접근 가능한 핫라인(Hot-line) 도입 ▲중개인수 제한 및 롤스로이스 PLC의 윤리·준수 기준에 대한 이행 촉구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사의 군용 헬기. ⓒ레오나르도

특히 롤스로이스 PLC의글로벌 행동규범(Global Code of Conduct)’은 사업을 영위하는 21개국의 언어와 애플리케이션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또한 임직원뿐 아니라 롤스로이스 PLC와 파트너십을 갖는 사람이라면 모두 자사의 행동규범을 준수하도록 요구합니다. 의사결정 방법론인 ‘TRUST Model’을 통해 각종 딜레마 상황에서의 판단을 돕는 가이드 및 사례를 제공하고 있어요. 예컨대 동료의 부정행위를 목격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고 누구에게 제보해야 하는지를 단계별로 세세히 안내하는 식입니다.

반부패 규범을 잘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내부고발입니다. 롤스로이스 PLC의 경영진은 내부고발을 위한윤리 핫라인이 얼마나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에 롤스로이스 PLC는 윤리 핫라인을 온라인(19개국 언어) 및 오프라인(49개국 언어)으로 24시간 제공하여 접근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채널의 보장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주기적으로 종업원 설문조사를 하는데요. 핫라인에 접수된 질문과 제보의 개수, 질문자 혹은 제보자에게 적절한 답변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 익명제보의 건수, 실제 시스템 개선에 도움이 되는 제보의 비율, 제보내용의 심각성과 종류 등을 모두 분석해 한 달에 한 번씩 롤스로이스 PLC의 경영진 회의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롤스로이스 PLC만의 특별한 이행 시스템은 또 있습니다. ‘지역별 윤리 자문위원(Local Ethics Advisor)’제도 입니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업무에 종사하면서 업무 시간의 약 5~10% 정도를 동료직원들의 상담, 교육 및 제보의 대면접수 업무에 할애한다고 해요. 2년 임기의 자문위원은 사업장의 문화 및 사업의 속성과 더불어 자문위원의 직급, 성별, 전문성, 과거의 경험 등을 모두 고려해 선정됩니다. 현재 90명의 자문위원이 전 세계 롤스로이스 PLC 사업장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 연구팀은 롤스로이스 PLC와의 미팅 중, 본사인 브리스톨 사무소에 근무하는 윤리 자문위원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관련 지식을 잘 아는 것은 물론 스스럼없이 질문할 수 있도록 열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레오나르도 사를 방문한 UNGC 한국협회 연구원과 레오나르도 관계자들. ⓒ레오나르도

연구팀이 두 번째로 방문한 레오나르도(Leonardo s.p.a.)는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군수업체로, 지난해 영국에서 활동 중인 여러 자회사를 통합하여 영국 법인을 세웠습니다. 현재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 구축 단계에 있어 아직 완성된 내용을 세부적으로 확인할 수 없어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영국법인 또한 영국 정부의 강력한 반부패 시스템에 완벽히 적응할 수 있도록 만만의 준비를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레오나르도 준법책임자는 반부패, 기업윤리 및 준법경영과 관련된 규제가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면서 “글로벌 반부패 경영 기준을 반영하고 특히 지배구조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레오나르도(당시 그룹명핀메카니카’)는 지난 2010년 인도 국방부의 자회사인 아구스타웨스트랜드(AgustaWestland)와의 계약 당시 민간 사용 목적의 헬리콥터 수주 과정에서 부패 혐의로 해당 계약이 취소된 전력이 있습니다. 이에 2013년 준법윤리경영 업무를 다루는 ‘Flick 위원회를 설립해 반부패·준법윤리경영 기준을 세웠습니다. Flick 위원회는▲핀메카니카 그룹 청렴성 및 반부패 조항 채택 ▲청렴성 및 반부패 위원회 구성 ▲회계감사 및 정보 흐름 재정의 ▲보고 관리 및 안정화 ▲교육훈련 시스템 적절성 평가 ▲반부패 선언 확대 및 반부패 협약 지원 ▲준법윤리 시스템 강화 등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한 준법경영 시스템이 구축돼 운영되고 있지요.

특히 레오나르도의 사례에서 주목했던 것은 ▲책임의 분리▲서명 권한의 책임성 ▲명확성 및 명료성 ▲공정성 및 이해 상충 방지 ▲추적성 및 기록 보관 등의 일반 원칙을 세우고 모든 사업과 운영 과정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혹시 모르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록을 통해 사건을 명확히 조명하고, 책임자를 분명히 하려는 거죠. 또한, 3자와의 거래 및 계약에 있어 약 3~6개월의 기간을 거친 철저한 내외부 실사 단계를 거치는 점도 눈에 띕니다. 만약 실사진행이 어렵거나 리스크가 발견된 경우 거래와 계약은 무산된다고 해요.

옥슬리 사의 직원들. ⓒ옥슬리

레오나르도의 준법 담당자는 “외국어로 된 자료를 제출하면 레오나르도에서 직접 번역하고 외부 실사 기관에 의뢰해 현지를 직접 방문해 확인하는 작업 등을 거친다고 이야기했어요. 또 “계약이 진행된 문서는 10년간 보관하고 계약 기간은 1~2년을 넘지 않으며, 갱신 시 동일한 과정의 절차를 진행한다고 설명하면서 우리에게 관련 자료들을 보여줬습니다. 철저한 제3자 관리의 노력이 돋보이는 사례였죠.

 UNGC 연구팀은 반부패에 앞장서는 중소규모의 방위산업체도 방문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국내 중소기업들 역시 참고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1948년 세워진 옥슬리(Oxley)35개국에 LED라이트와 전자 부품을 수출하고 SAAB, BAE Systems, 록히드마틴, 에어버스, 보잉 등과 같은 방산 및 항공 글로벌 기업들에 주요 부품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옥슬리의 반부패 정책의 특징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한다는 점입니다. 부족한 인적 자원과 정보를 극복하기 위함이지요. 특정 국가의 사업을 시작하기 전엔 관련 정보와 부정부패 위험성을 영국의 국제무역부와 현지 대사관을 자문을 받는다고 해요. 자원이 부족한 국내 중소기업뿐 아니라 한국 방위산업진흥회, KOTRA 등 국내 관련 기관들도 참고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지요.

영국은 영국투명성기구(TI-UK)에서 발표하는 국방 반부패 지수(DCI)’에서 A등급을 받았습니다. A등급 국가는 영국과 뉴질랜드 두 곳뿐입니다. 무엇이 영국을 방위산업 반부패 선진국으로 만든 걸까요?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법과 제도가 더욱 강력해지고, 변화하는 대중들의 인식과 기대에 발맞춰 기업의 정책과 문화도 바꿔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반부패에 대한 리더의 강력한 의지, 전사적인 반부패 문화 확산, 효과적인 내부 통제 시스템, 지속적인 교육, 철저한 제3자 관리, 투명한 정보 공개는 이번에 방문한 기업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던 점입니다. 롤스로이스 PLC, 레오나르도 등은 2015년에 발표된 DCI에서 모두 B등급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죠.

우리는 영국 기업들이 청렴성과 반부패 노력을 비용과 부담이 아닌회사의 브랜드 경쟁력이라고 여기는 문화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들이 반부패에 자신감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죠. 청렴성과 반부패가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되는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영국 반부패 현장을 가다-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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