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트럼프 재선과 ESG 향방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2024년. ESG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장에서는 “트럼프와 공화당은 기후위기 등 글로벌 의제가 아닌 미국 국익을 강조하기 때문에 ESG가 후퇴될 것”이라는 의견과 “이미 시장에서는 ESG가 시대적 흐름이 됐기에 확산 속도만 다소 늦춰질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이 바라본 ESG의 미래는 어떨까. 국내 대표적인 ESG 전문가 5인에게 ‘트럼프 이후의 ESG’를 물었다(이름 가나다순).
서진석 비랩코리아 이사
“트럼프 집권으로 인해 경제와 기후 간의 대립이 극심해질 수 있다. 고금리와 러-우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경제 측면에서 주주 자본주의를 극렬하게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등장한 것은 우려스럽다. 넷제로를 달성해야 하는 2050년까지 남은 시기가 얼마 없는데, 앞으로 나아가기 바쁜 중차대한 시기에 소모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당선은 기후보다는 경제가 더 힘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 공시가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ESG에 대한 여론이 깊게 형성되지 않은 상태인 국내에서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KSSB) 도입을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조치가 취해지면, 한편에서는 기후소송이 일어난다. 역사는 카드처럼 한 번에 뒤집을 수 없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지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파리협정 탈퇴 선언 등 기후위기를 역행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국제적인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ESG가 미국에 한해서는 후퇴할 수도 있지만, 세계 금융계와 유럽에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세계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 7월 ‘스코프 3 공시 의무화’ 등이 포함된 더 엄격한 기후투자 지침을 발표했다. 단계적인 어려움은 있을지라도 전 세계적 흐름에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국내의 경우 ESG 기반이 취약해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번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친 ESG 움직임이 둔화할까 염려되기는 한다. 미국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금융계와 기업이 전향적인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국제적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세계적 트렌드와 흐름을 타지 못하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반 ESG 흐름을 따라간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점점 소외되고 국내 주식 시장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내 자본시장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ESG 지지 세력을 확장하고 정책과 제도화를 통해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오승재 서스틴베스트 부대표
“제도적으로는 미국에서 ESG 정책이 후퇴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세계적으로는 ESG가 실질화되고 내재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의 탈탄소를 위해 관세를 매기는 탄소국경세(Clean Competition Act·CCA)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모두 지지하는 법안이다. 해당 법안을 통해 미국의 내수 산업을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조차도 저탄소 사회로 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미국 내 다국적 기업은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주주들의 움직임에 더 민감하다. 주주는 대다수인 글로벌 연기금이 모두 ESG로 향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연기금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업 비즈니스상에서 투자자와 기업 모두 ESG에 대한 내재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본다. 또한 트럼프의 이번 당선은 재선으로 남은 임기가 4년에 불과하다. 트럼프로 인해 미국이 ESG 리더십을 잃을 수는 있어도, 글로벌 질서가 움직인다고 보지는 않는다. 국내에서 이러한 상황이 부풀려져 당장은 영향이 있어 보일 수는 있으나, 전반적인 큰 흐름이 된 ESG를 4년 임기 동안 바꾸기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한다.”
유연철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예고한 것은 ▲파리협정 탈퇴 ▲화석연료 회귀 ▲IRA법(인플레이션 감축법) 폐기 등이다. 트럼프가 2017년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을 때 미국 주 정부 및 기업은 여전히 파리협정을 지지하겠다는 ‘위 아 스틸 인(We Are Still In)’ 이니셔티브를 결성했다. 미국은 과거 교토의정서를 거부한 뒤 자동차 산업이 몰락한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이제는 ‘친환경’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화석연료의 경우에도 미국에서 셰일가스가 발견됐기에 생길 수밖에 없었던 공약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산화탄소 포집⋅제거⋅전환(CCUS)에 대한 투자도 엄청나다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IRA법 폐기도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의회를 거쳐야 하는데, IRA법의 혜택를 받은 기업이 공화당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과의 경쟁 우위를 위해 마련된 IRA법의 배경을 생각하면, 폐기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기업에만 손해가 생긴다. 분명 염려되는 부분도 있으나 이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ESG의 미래는 지속가능하다고 본다.”
임대웅 BNZ파트너스 대표
“트럼프가 ‘안티 ESG’를 얘기해 왔기에 ESG가 어려워진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탄소배출권거래제를 비롯해 탄소세 등 ESG의 많은 부분이 제도화됐다. 앞으로도 더 많은 제도가 필요하겠지만, 중심이 되는 제도는 상당히 정비된 상태다. 20년 전 ‘ESG’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자발적 이니셔티브로 이야기하던 시대는 한 번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2010년에는 기관투자자가 의결권 행사 등으로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가 영국에서 최초로 도입됐다. 이후 2016년에 국내에도 갖춰진 만큼 제도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미국이 전 세계의 모든 법을 없앨 수는 없다. 트럼프의 복귀로 예상되는 건 글로벌 패권 경쟁의 심화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과 지속가능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도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비슷한 CCA(탄소국경세)가 발의된 만큼, 지속가능성 문제로 중국과 세계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지속될 것이기에 한국이 전화위복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잡아야 한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