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조달 ‘필수’인데…한국 기업 막는 건 결국 ‘망 요금’이었다

비용보다 ‘불확실성’이 더 두렵다…RE100 기업 585곳 “요금 산정 투명화가 최우선”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이 기업 탄소중립과 글로벌 공급망 대응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비용’보다 ‘불확실성’에 더 크게 발목이 잡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얼마를 내야 하는지’, ‘왜 부과되는지’조차 기업이 알 수 없는 ‘망 이용요금’이 제도 전반의 신뢰를 흔드는 최대 장애물로 지적됐다.

기후솔루션이 RE100 유관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들은 PPA 활성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망 이용요금 산정 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꼽았다. /Unsplah

기후솔루션이 한국RE100협의체 유관 기업 58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접PPA 망 이용요금 인식 조사’ 결과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드러났다. 기업들은 PPA 활성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요금 산정 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꼽았다. 단순 할인이나 면제가 아니라, 요금이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제도적 리스크’로 본 것이다.

이번 조사는 기후솔루션이 한국정책리서치에 의뢰해 8월 29일부터 9월 18일까지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은 RE100 이행을 검토하거나 이미 재생에너지 조달을 추진 중인 대·중소기업 실무자들이 참여했으며, 전력 사용량·기업 규모·담당 업무까지 포함해 실제 비용을 책임지는 담당자들의 인식을 반영했다.

◇ 재생에너지 조달은 생존의 ‘필수조건’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조달의 필요성을 ‘기후 대응’이 아니라 ‘산업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ESG·지속가능경영 목표(54.7%), RE100 이행 필요(35.9%), 글로벌 공급망 요구(33.5%)가 주요 이유로 꼽히며, 재생에너지 조달이 국제시장 접근의 새로운 ‘입장권’이 됐음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실제 조달 방식은 기업 선호와 달리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직접PPA’ 대신 다른 방식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았다.

재생에너지 조달이 필요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 기업들은 ▲ESG/지속가능경영 목표 달성(54.7%)이 1위로 꼽혔다. /기후솔루션

그 이유를 묻자, 기업들은 ‘높은 PPA 비용’(67.7%)뿐 아니라 ‘망 이용요금 산정의 불투명성’(45.2%), ‘요금 중복부과 우려’(41.9%)를 핵심 장애물로 지적했다. 즉 단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언제·어떻게 오를지 알 수 없는 구조” 자체가 기업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불만은 더 두드러졌다. 연간 500MWh 미만 기업의 34.8%가 ‘요금이 투명하다’고 답한 반면, 10,000MWh 이상 기업에서는 투명하다는 응답이 21.8%로 떨어졌다. 반대로 “투명하지 않다”는 응답은 대용량 기업에서 41.6%로 높아졌다. 실제로 현재 재생에너지를 조달 중인 기업들도 ‘높은 비용’(68.2%) 다음으로 ‘부가비용의 불투명성’(50.0%)을 불만족 요인으로 꼽았다. 응답 기업들은 전체 PPA 비용에서 망 이용요금 등 부가비용이 “10~15% 수준”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는 PPA 도입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기업들은 현재 재생에너지 조달 방식을 불만족하는 이유로 ‘높은 비용’(68.2%) 다음으로 ‘부가비용의 불투명성’(50.0%)을 꼽았다. /기후솔루션

◇ 언제 오를지 모르는 전력구조, 기업에 리스크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 불투명성이 구조적이라는 점이다. 기후솔루션이 2일 발간한 보고서 ‘깜깜이 망 이용요금’은 요금 산정 과정이 한전이라는 독점 사업자의 내부 판단에 사실상 좌우되고 있으며, 회의록·원가자료·산정기준 등이 모두 비공개 상태라고 지적했다. 송전망 확충 필요성과 한전 재무 악화로 인해 요금 인상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기업들은 “요금 인하”보다 “예측 가능성 회복”을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영국 등 주요국은 송전망 투자와 요금 산정 과정이 사회적으로 공개되는 구조. 미국은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송전망 사업자의 요율과 원가 자료를 승인하고 모든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한다. 영국도 투자계획을 규제기관이 심사·인가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송변전 설비 확충이 필요한 범위까지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올린다. 투자 계획, 비용산정, 수익 보장, 이용자 부담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구조다.

기업들은 PPA 활성화를 위한 망 이용요금 개선 영역으로 ‘요금 선정 과정의 투명성 제고'(33.3%)를 1위로 꼽았다. /기후솔루션

보고서는 한국의 PPA 제도 개선을 위해 ▲전력망 요금 감시를 전담하는 독립 규제기구 설립 ▲요금 산정 방식과 기저 비용 항목 전면 공개 ▲송배전망 투자 계획에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PPA 수요 반영 ▲요금 결정 과정에 국민·이해관계자 참여 보장 등을 제안했다. 특히 “망 소유자이자 요금 부과 주체가 동일한 구조”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이며, 이 구조가 계속되는 한 재생에너지 확대와 기업 주도의 PPA 활성화는 제도적으로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사보이 브룩(Savoy Brooke) 기후솔루션 전력시장계통팀 연구원은 “기업들은 ‘요금을 깎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요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다”며 “에너지고속도로 구축, 재생에너지 100GW 목표, 송배전망 민간참여 등 정부 과제가 성과로 이어지려면 가장 먼저 PPA의 최대 장애물인 망 이용요금 불투명성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 규제기구를 통해 전력망 투자계획과 요금 산정 근거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한국 기업의 재생에너지 조달과 탄소중립은 정책적으로 막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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