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을 위해 쓰일 수 있던 자원이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소비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법은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과학기술을 담아야 하는 만큼, 비영리법인 관련 법 개정은 시대적인 과제다.“ (서종희 연세대 교수)
9월 24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민법상 비영리법인 설립운영 규제·혁신 방안’ 세미나가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정부, 학계, 비영리단체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해 홀 1층을 가득 채웠다. 이번 세미나는 비영리법인을 활성화하려면 민법이 어떻게 개정돼야 하는지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이 주최했다.
비영리법인 관련 법은 벌칙(罰則)인 97조를 제외하면 1958년에 민법이 제정된 이후 66년간 개정된 적이 없다. 벌칙 마저 법인 이사 등의 일정한 행위에 대한 과태료를 ‘5만 환 이하’에서 ‘500만원 이하’로 2007년에 바꾼 게 전부다. 1962년 화폐개혁을 통해 화폐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꿨는데 민법은 2007년에야 수정된 것이다.
남형기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법은 국민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하는 역할이 있고, 법이 제대로 기능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규제혁신추단의 일”이라며 “오늘 비영리법인 법 개정에 대한 합의나 좋은 의견이 나오면 규제혁신추진단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날 기조발표를 맡은 정임균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 전문위원은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려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주의’가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민이 학술, 종교, 자선, 사교 등 비영리를 목적으로 만든 조직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법인을 만드는데, 이에 대해 국가의 허락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임균 위원은 “허가주의는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더불어 영리법인이 준칙주의인 것과 비교하면 비영리법인이 허가주의인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준칙주의는 법인이 정해진 요건을 갖추면, 행정처분 없이 바로 법인격을 인정한다.
송호영 한양대학교 교수는 한국 비영리법인의 ‘허가주의’가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공권력의 개입 정도가 매우 강한 편이라고 이야기했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준칙주의를, 스위스는 자유설립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송호영 교수는 “현행 제도 아래서는 주무관청의 재량에 따라 감독이 자의적으로 이뤄진다”며 “특히 정부의 경우 순환보직 때문에 담당자가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고 허가주의의 단점을 짚었다.
이어 비영리법인 활성화를 위해서는 합병과 분할에 대한 법안이 명확하게 민법에 규정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법에는 분할·합병 관련 규정이 없다. 의료법은 분할·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노동조합은 이를 인정하는 등 법인 성격에 따라 규정도 다르다. 송호영 교수는 “비영리법인이 수익 창출을 위해 존재하지 않을 뿐, 법인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자산 운용이나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며 “비영리법인 또한 규모의 경제나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경영논리에 따른 합병과 분할이 필요하므로 확실한 법안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진행된 패널토의에서는 발표자였던 송호영 교수와 정임균 전문위원을 비롯해 김순철 규제혁신추진단 자문위원, 김일석 한국공법인협회 상임이사, 박동순 한국YWCA연합회 국장, 서종희 연세대 교수, 송윤정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재형 서울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토론에서 참가자들은 “비영리법인 설립을 허가주의로 해선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장에서는 “비영리법인을 관리하는 주무관청이 따로 필요하다”는 견해도 반복적으로 나왔다. 더불어 온라인 총회 및 이사회 개최와 전자 의결권을 할 수 있게 법적 근거가 시급하다는 의견은 토론과 청중 사이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