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내일을 ‘내 일’로 하자.” 스타트업 ‘오후두시랩’의 슬로건이다. 설수경 오후두시랩 대표는 회사를 ‘기후테크’가 아닌 ‘지구테크’ 스타트업이라고 소개한다. ‘기후’라는 거대 담론을 ‘지구’라는 일상 속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서다. ‘오후두시랩’이라는 사명에 담긴 의미도 비슷하다. 오후 두시는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시간이자 계절의 변화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시간으로, 일상 속 지구를 살리는 기술을 접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표적인 서비스는 인공지능(AI) 기반으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그린플로’다. 오후두시랩이 특허 출원한 ‘비용 기반 탄소배출량 측정기술’ 기반으로 한국은행과 산자부의 업종별 지출구조와 환경계수를 연계해 탄소배출량을 산출한다. 클릭 몇 번으로 탄소배출량을 산출하며, 업종별 특성을 반영해 더 정밀한 값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린플로는 기업의 탄소관리 단계에 따라 ▲스타터 ▲베이직 ▲프로 총 3가지 멤버십으로 제공된다. 스타터는 차량 유형 및 대수, 전기요금, 난방비용 등 간단한 데이터를 입력하면 이에 따른 스코프(Scope·탄소 배출 성격 분류) 1, 2, 3 배출 비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베타 서비스 출시 후 중소기업, 대기업, 금융사 등 500여 곳이 그린플로를 사용했다.
베이직 버전은 비용뿐만 아니라 사용량 정보를 활용해 탄소배출량을 산출하고, 간단한 리포트도 도출된다. 그린플로가 기업에 자동차 연료, 난방, 원자재 비용이나 사용량을 질문하는 ‘문답형 계산 방식’으로 쉽고 직관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프로는 ESG 규제 대응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부 배출원별, 사업장별 데이터 기재가 가능해 더 정교하게 관리할 수 있으며, 국제 표준에 맞춘 리포트도 발간할 수 있다.
NHN, 다음(현 카카오) 등 IT 기술 분야에 종사했던 설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다름 아닌 코로나19 시기의 경험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일 때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먹다보니 플라스틱 사용량이 너무 늘어나더라고요. 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일지 고민하다보니, 결국 사람들의 소비 활동이 핵심이었어요. 소비자가 똑똑한 소비를 하면, 기업도 제품 생산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환경 영향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첫 아이디어는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표기해 ‘똑똑한 소비’를 돕자는 것이었다. 다만, 데이터 수집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피벗(pivot)한 모델이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현재 서비스다.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기후 공시 의무화 등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며 ‘기후’가 ‘기회’가 됐다. 오후두시랩의 올해 목표는 1000개 기업, 업종별 10개 이상의 탄소 데이터를 확보해 표준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측정하는 솔루션도 제공한다. 의상 시뮬레이션 기업 ‘클로버츄얼패션’과 협업해 의류 자재와 공정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계산하고, 공인전자문서의 탄소저감 효과를 측정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저탄소 알루미늄 제조 단계부터 생산까지 탄소배출량을 계산할 수 있는 LCA(전과정평가) 평가 도구도 만들고 있다.
설 대표는 “기업이 탄소 무역 장벽, 탄소세 도입 등에 선제 대응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를 바란다”면서 “한국은 특히 수출 공급망에 포함된 기업이 많기 때문에 정부도 좀 더 포괄적인 탄소 대응 정책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기용 더나은미래 기자 excusem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