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는 ‘과일 지도’를 바꿨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평균기온이 오르며 과일을 비롯한 주요 농작물의 재배 가능 지역이 북상했다. 기상청을 비롯한 관계 부처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평균기온은 평년기온보다 1.2℃ 높은 13.7℃로 1973년 이후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감귤은 더 이상 제주도만의 것이 아니게 됐다. 농촌진흥청의 지난해 자체 조사에 따르면, 국내 감귤 재배는 제주 외에도 전북 정읍, 전남 고흥·완도, 경남 거제·통영 등 내륙지역으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다. 2019년 220.2헥타르(ha)였던 내륙의 감귤 재배 면적은 2023년 311.1헥타르로 41.3% 증가했다.
내륙지역이 감귤 재배 가능 지역이 됐지만, 정작 재배 기술이 없었다. 고품질 생산 기술을 익히려면 영농 분야 경력이 긴 ‘명인 농민’을 알음알음 찾아가야 했다. 표준화되지 않은 ‘도제식’의 감귤 재배 농가 기술은 신규 농가의 발목을 잡았다.
농업(Agriculture)과 첨단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애그테크(AgTech) 스타트업 ‘엘아이엔티(L-int)’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스마트팜을 비롯한 기술에서 찾기 시작했다. 재배 노하우를 데이터화해 ‘지능형 감귤 재배 가이드’를 개발하는 것. 2021년 설립된 엘아이엔티의 농가 맞춤형 스마트팜 서비스 ‘팜코디’는 농사를 잘 짓는 ‘명인’의 재배 기술 기반의 가이드를 제공한다.
“과수 재배 기술이 없는 사람이 새로운 과수를 도입하기가 어려워요. 데이터 모델링을 활용해 초보 농민도 바로 따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이규백 엘아이엔티 대표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25년간 근무하다 2015년 제주 이주 열풍을 따라 제주로 갔다. 이 대표는 “2년간 감귤 농사를 배우고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진입 장벽은 여전했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토지 임대료가 높은 것도 한몫했다. 그는 “초보 농민이 시작하기에는 땅값도 비쌌고, 제각각 너무 다양한 재배 기술을 가르쳐 주니 어쩔 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엘아이엔티의 기술은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기술인 동시에 ‘친환경’ 기술이기도 하다. 재배 가이드를 통한 효율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센서로 토양을 측정해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절한 양의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에 따라 생산 비교 실증 과정에서 농업용수 사용량을 50%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약 살포횟수 또한 ‘팜코디’ 도입 후 15회에서 7회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 대표는 “기존에는 관행적으로 경험에 의존해 물을 주고 예측에 의한 사전 방제로 농약을 오남용해 왔다”며 “최적의 데이터가 있다면 과다 사용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엘아이엔티는 ‘과수용 저비용 스마트팜’ 개발에도 힘쓴다. 이 대표는 “과수 작물에는 스마트팜이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기료 등 높은 생산 비용의 문제로 국내 스마트팜 생산 작물이 일부 작물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것. 기후와 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과수 작물에도 스마트팜을 도입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과잉투자’의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에 채소를 재배하는 스마트팜의 설비는 자동 제어를 위한 것인데, 과수 농사에 그런 설비까지 들여오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무가 심어진 토지와 기상 환경 등을 표준화할 수 없어 현재 기술로는 과수 재배의 자동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어 “과수용 스마트팜은 데이터를 측정해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과수를 재배하기에 필요한 기능만 골라낸 저비용 스마트팜을 고안한 이유다.
엘아이엔티의 경쟁력이 ‘기술’에 있다보니 유관 업무 임직원은 모두 10년 이상 IT 경력의 전문가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농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CSO(Chief Strategy Officer·최고 전략 책임자)가 소셜 임팩트 측정 업무도 맡고 있다. 올해 4억 규모의 정부지원 R&D 실증 과제를 수행 중인 엘아이엔티는 김제와 익산에 ‘팜코디’를 적용한 감귤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실증을 마친 2025년부터 사업화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올해 3월 발간한 ‘우리나라 스마트팜 산업 활성화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팜 산업의 활성화가 어려운 주요 원인은 높은 초기 비용과 자금 유치의 어려움 등이었다. 이 대표는 “작물이 다양하면 신규 창업농이 자신의 예산을 고려해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을 통해 창업농의 진입장벽을 낮춰, 기후와 지역 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 해결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kyuriou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