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희망 허브]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다양한 광고·마케팅 아이디어 나누고 실행하기 위해 모였어요”

세계가 주목하는 광고인 플레이그라운드 김홍탁 CCO

11개 회원사 수평적 결합 SNS 기부문화 플랫폼 ‘쉐어앤케어’ 서비스 등…

3주 만에 1200명 참여 세계 광고계 트렌드…

소비자와 관계·사회변화 중시하는 콘셉트로 격변

이제 소비자에게 전달할 새로운 메시지 고민할 때

“미국에 골수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2만명이 넘는데, 실제로 이식받는 경우는 절반도 안 돼요. 혈액검사 등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거든요.” 김홍탁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 CCO(Chief Creative Officer·크리에이티브 총책임자·사진)가 말을 이었다. “2012년에 미국의 ‘헬프 레메디(Help Remedies)’라는 제약사가 일상생활 중 상처가 났을 때 간단히 혈액을 채취해 (골수이식센터에) 보낼 수 있는 응급키트를 제작했고, 쉽고 재밌는 광고로 세상에 알렸죠.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골수 기증자가 3배 이상 많아졌고, 이 회사 반창고 판매량은 1900% 늘었어요. 아이디어가 실제로 세상을 바꾼 거죠.”

이승재 작가 제공
이승재 작가 제공

김홍탁 CCO는 “좋은 아이디어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가치를 창출해 결국 솔루션이 된다”고 했다. 20년 이상 광고계에 종사하며 얻은 철학이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김홍탁 CCO는 세계가 주목하는 광고인이다. 1995년부터 글로벌 광고·마케팅 기업 ‘제일기획’에 근무하며 ‘마스터'(전문임원·Executive Creative Director)의 칭호까지 얻었고, 칸(Cannes)을 비롯한 국제 유수의 광고제에서 100회 넘게 수상했다. 심사위원으로서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2012년엔 ‘칸 키메라'(Cannes Chimera·빌앤멀린다재단이 공익 아이디어를 공모해 자금과 인력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전문 심사위원 14명 중에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올해 역시 지난 3월부터 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필리핀을 오가며 빡빡한 일정을 치르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2월 돌연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크리에이티브(Creative·창조적인 생각)’에 날개를 달기 위해 대기업 임원직을 뒤로 하고 나온 것이다. 그의 창작열을 불태울 새로운 터전은 바로 마케팅 솔루션 그룹 ‘플레이그라운드’. 광고·마케팅 전문가들과 자유로운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발휘하는 일종의 컨소시엄(consortium·공통의 목적을 위한 협회나 조합)이다. 이를 위해 통합 마케팅 광고대행업체 ‘펜타브리드’, 브랜드 전문 그룹 ‘메타브랜딩’, 문화 콘텐츠 개발기업 ‘코이안’, PR 전문 컨설팅 회사 ‘에델만 디지털’, 모바일 벤처기업 ‘소셜노트’ 등 뜻이 통한 11개 회원사가 ‘플레이그라운드’ 안에서 뭉쳤다.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다양한 광고·마케팅 아이디어들을 나누고, 각자 역량에 따라 협력해 직접 실행에 옮기는 것. 김 CCO는 “가장 큰 회사도 직원 50명을 넘지 않는 정도지만, 모두 각 분야에서 매력을 뽐내는 강자들”이라며 “수직적이기로 소문난 광고계에서 수평적 구조로 협동심을 강조하는 새로운 형태를 시험하고, 함께 사회 혁신을 꾀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가 플레이그라운드 대표란 직함 대신 ‘리더’나 ‘CCO’를 사용하는 이유다. 아직 설립 초기지만, 구체적인 프로젝트들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13일 서비스를 오픈한 기부 문화 플랫폼 ‘쉐어앤케어(Share& Care)’가 가장 대표적이다. 쉐어앤케어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14위)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기부 순위(60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쉽고 재미있는 기부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 이에 원터치로 쉽게 기부하고, 알림 기능 등을 이용해 기부금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와 기업 사회공헌을 연결시켰다는 점도 눈에 띈다. 앱을 통해 이뤄지는 기부 스토리를 SNS에 알려, 네티즌이 담벼락을 통해 공유하면 기업이 1000원씩 기부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 ‘공유가 기부다’라는 콘셉트에 매료돼 자발적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3주 만에 1200명에 이른다.

김민관 작가 제공
김민관 작가 제공

이 밖에도 전 세계 소상공인의 제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글로벌 모바일 플랫폼 ‘브릭앤(BRICK &)’ 구축 프로젝트나 플레이그라운드 포럼(가칭) 등도 기획 단계를 거쳐 가시화되고 있다. 플레이그라운드 파트너로 활약 중인 황성진 소셜노트 대표는 “경직된 광고계에서 플레이그라운드는 정말 새로운 문화”라며 “리더의 강력한 의지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이 의기투합하면, 전에 없던 가치가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통일과 크리에이티브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김 CCO는 “통일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인데 너무 준비가 미흡하다”며 “통일의 의미를 되새기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아이디어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위에선 우려가 컸다. 20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나온 것도, 실험적인 조직을 만든 것도 그렇다. “어떻게 돈을 벌 거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김 CCO는 “수익 생각은 당분간 접어뒀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그랬어요. 동아리가 수백 개나 되는데도 눈에 드는 게 없더라고요. ‘새로 하나 만들어보자’ 싶었죠. 책 읽고, 생각을 나누고, 그걸 또 다른 책으로 엮는 동아리를 결성해 3년간 이끌었죠.” 스스로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DNA가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광고대행사 재직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굵직한 광고를 도맡았었지만 늘 새로운 걸 꿈꿨다. “커다란 조직에서도 ‘나 자신은 스타트업’이라는 생각으로 일했다”고 한다. TV·인쇄 광고 일색이었던 국내 광고시장에서 기업의 글로벌 광고나 디지털 캠페인을 론칭했던 것도, 광고 캠페인에 해외 인디밴드나 IT 기술자들의 역량을 끌어들여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을 시도했던 것도 국내에선 그가 처음이었다. “생소한 것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가만히 있어도 인정받는데 왜 그러느냐’는 시선도 많았죠. 하지만 조금 더 앞을 보고 싶었어요.” 이런 시도는 값졌다. 덕분에 트렌드를 읽는 눈이 탁월해졌다. 전 세계의 크리에이티브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칸 국제광고제에서 매년 수상작을 정확히 맞혀 ‘점쟁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크리에이티브 역시 이 과정에서 얻은 방향성이다. 실제로 김 CCO는 제일기획 재직 당시부터 NGO들과의 협업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시도들을 이어왔다. 2014년 유엔난민기구(UNHCR)와 함께했던 전시 프로젝트 ‘보이지 않는 사람들’, 같은 해 기아대책과 공동 기획한 기부오픈마켓 ‘1.25마켓’ 등이 대표적이다.

2012년 칸 키메라 심사위원단에 포함된 김홍탁 CCO(아랫줄 맨 왼쪽). 칸 키메라 심사위원단은 칸 광고제 수상 경력을 가진 세계 최고의 광고인들로 구성된다. /플레이그라운드 제공
2012년 칸 키메라 심사위원단에 포함된 김홍탁 CCO(아랫줄 맨 왼쪽). 칸 키메라 심사위원단은 칸 광고제 수상 경력을 가진 세계 최고의 광고인들로 구성된다. /플레이그라운드 제공

“해외 세미나 같은 데 가면 깜짝깜짝 놀라요. 다 똑같은 말을 하고 있거든요. ‘진정성(authentici ty)’이나 ‘공유(sharing)’ 같은 단어들이죠. 이제 사람들은 매일 ‘라이크(like)’나 ‘팔로(follow)’를 누르며 살아요.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당신을 따르겠다’고 말하죠. 빌 게이츠나 클린턴은 기업가 혹은 전 대통령이 아니라 공익재단 대표로 더 유명해요. 사회는 착한 회사를 원하고, 기업은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죠. 기술과 뉴 미디어가 세상을 그렇게 바꾸고 있는 겁니다.” 김 CCO는 이런 변화가 광고인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고 했다. 수십 년간 소비자와의 소통 방법을 고민해온 노하우로, 이젠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멕스 카드(Amexcard· American Express card)를 광고하던 회사가 ‘스몰 비즈니스 새터데이(Small Business Saturday)’란 걸 만들었어요. 소상공인들을 위한 프로젝트죠. 미국에선 추수감사절 금요일에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란 특별 할인행사를 하는데, 대부분 대형마켓만 수혜를 보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 날 소상공인 물건을 (아멕스 카드로) 사주면 할인해주는 행사를 여는 거예요. 소상공인도 활성화되고, 카드사 매출도 오르죠. 이게 바로 참여를 이끌어 가치를 창출시키는 크리에이티브이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메시지입니다.” 그의 말대로다. 광고계의 현 트렌드가 실제로 그렇다. 국제 광고제를 휩쓰는 작품들은 모두 소비자와의 관계나 소통, 사회 변화와 혁신을 중시하는 콘셉트다.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뉴욕페스티벌에선 일찌감치 ‘UNDPI'(UN Department of Public Information)상을 만들어 인권·교육·환경·범죄 등의 사회문제 해결을 가장 잘 표현한 광고를 시상하고 있고, 칸 광고제 역시 2010년부터 공익분야(Grandprix for Good) 시상을 창설했다. 최근에는 특히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사회 변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이 가장 핫한 트렌드로 꼽힌다. 올해 칸 광고제 공익부문 수상작은 지난해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다. “난 이제 프리랜서의 신분일 뿐”이라고 말하는 김홍탁 CCO.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분주하다. 소문난 독서광이자, 작가이기도 한 그의 6번째 책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는 최근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여행을 위해 쓰는 시간도 상당하다. 아프리카나 몽골 등의 오지(奧地)를 주로 찾는다고 한다. 디지털 기술이 만드는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기 위해 SNS 소통에도 열심이다. 한 발 먼저 트렌드를 읽고, 문제를 파악해 세상을 바꿔보려는 그만의 행동 양식이다. “항상 미래학자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안테나를 꼿꼿이 세우고 ‘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거죠. 결국 좋은 아이디어는 계산이 아니라 ‘발견’으로부터 나오니까요.” 최태욱 기자 오민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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