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애란 한국컴패션 ‘상근 봉사자’
“기부 하라고 강요하기보다 인생에 어떤 영향 미치는지 얼마나 행복한지 어필합니다”
항상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팔기 어려운 상품이 ‘나눔’이라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상품’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게 할 것인지를. 그 고민 끝에 만난 사람이 광고회사 ‘웰컴’의 문애란(56) 전 대표다. 제일기획 공채 1기로 ‘최초’의 여성 카피라이터, 제작팀장, 독립 광고대행사 대표까지 ‘광고계 여성 1호’를 독차지했던 그녀가 이제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의 ‘상근 봉사자(Fulltime Volunteer)’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이 갖고 싶도록, 더 많이 사고 싶도록 만드는 광고업계에서 더 소박하게 살고 더 많이 나누도록 해야 하는 비영리 부문으로 옮긴 이유가 궁금했다.
―광고 쪽과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늘 새로운 일을 추구하십니까.
“새로운 일을 추구한다기보다는 그런 시대를 살아온 것 같습니다. 발명가였던 아버지가 늘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던 영향을 받기도 했겠지요. 운이 따라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었습니다.”
―컴패션에서도 ‘최초’의 상근 봉사자라고 들었습니다. 왜 ‘올인(all in)’을 선택하셨습니까.
“거역할 수 없었던 마음의 소리를 따랐던 것 같습니다. 서정인(48) 한국컴패션 대표와 인연이 되어 필리핀의 어려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비전 트립(vision trip)’을 갔습니다. 저는 평생 광고 일을 하며 좋은 호텔, 좋은 경치, 좋은 음식에 익숙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삶에 회의가 들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아이들은 엄청나게 열악한 환경에서 살면서도 행복해하고 있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죠. 굶주리고 병들어서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아이들을 안고 하루 종일 펑펑 울었습니다.”
―그 순간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왜 광고를 그만뒀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온 후 제가 이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했던 일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였습니다. 저는 제3세계 아이들을 돕기 위해 돈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읽고, 이 일 자체가 그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또 얼마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컴패션에 오면서 어떤 목표를 세우셨습니까.
“한국컴패션이 후원하는 아이들이 8만명 정도 됩니다. 미국,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많습니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제 목표는 100만명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겪고 이겨낸 나라입니다. ‘한국이 돕는다’라는 메시지는 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나라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있으실 텐데요.
“왜 외국 아이들을 돕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하지만 전쟁 직후 우리나라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미국, 유럽 사람들이 당시 우리나라의 존재를 알기나 했을까요? 만약 그 사람들이 외국 아이라고 돕기를 거부했다면 지금의 한국도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도와야 할 때입니다.”
―개인 기부는 점점 늘고 있는 반면, 기업 기부는 주춤합니다. CEO들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여야 합니까.
“예전의 기업들은 돈을 번 다음에 이익금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뀌어야 합니다. 제가 기업의 CEO라면 구성원들과 함께 참여하고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그래서 우리가 만드는 물건이 세상에 꼭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할 것 같습니다. 운동화 한 켤레를 사면 운동화 한 켤레를 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보내는 탐스슈즈는 종업원 모두가 회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이끌어내야 기업도 꾸준히 성장합니다.”
―많은 자원봉사처 중에 컴패션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컴패션의 창립자인 스완슨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아이들을 교육만 시키면 혁명가가 되고, 다리만 놓아주면 매춘업자가 먼저 들어가고, 돈만 주면 부모가 쓰고 만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그 자체가 존중받아 마땅한 소중한 존재로 키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컴패션은 사람을 키우는 것, 그래서 그 아이들이 인재가 되어 스스로 나라와 이웃을 살리는 데 집중합니다.”
―더나은미래를 만들면서 자본주의가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집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다른 사람 것을 뺏는 게 아니라 함께 잘 사는 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함께 가야 합니다. 이젠 나눔이 처참하고 불쌍한 현장을 보고 마음이 울컥해 한번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녹아나는 긴 여정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