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①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

62년 쌓은 월드비전 ‘나눔 노하우’다양한 NGO에 아낌없이 나눌 것 가진 것이 많을 때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잃을 것이 많아 두려워하는 사람과, 나눌 것이 많아 행복해하는 사람으로. 후자가 많아지면 사회는 건강해진다. ‘더나은미래’는 2020년 우리 사회의 건강 지수를 높여줄 나눔 리더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첫 번째 인물은 올 1월 취임한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이다. “앞으로 비즈니스석은 못 탈 테니 각오하세요.” 양호승(64) 회장이 월드비전 회장에 취임하기 전, 이사장인 이철신 영락교회 담임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야간에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도, 30시간 걸리는 아프리카를 갈 때도, 월드비전의 모든 임직원은 이코노미석만 탈 수 있다. 양 회장의 이력을 보면 이런 충고를 이해할만 하다. 서울대 농과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와 MIT를 거쳐 일리노이주립대에서 MBA 석사를 한 이후 SK그룹을 거쳐 CJ제일제당 글로벌 신규사업개발 부사장을 역임했다. 억대 연봉의 영리조직(PO·Profit Organization) 부사장에서 세상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비영리조직(NPO·Non Profit Organization)의 리더가 된 소감을 들어봤다. ―’NGO에 비즈니스를 입히다’ 등 취임 당시 회장님의 이력이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공개채용이라는 특별한 형태로 월드비전 회장직에 선임되었는데, 비영리조직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아내와 함께 은퇴 후의 삶을 봉사하고 나누는 것으로 준비해왔습니다. 교회에서 12주 동안 선교사 파송교육을 받았는데, 그 도중에 월드비전 회장에 선임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 회장직을 맡기로 했습니다.” ―월드비전은 40만명에 달하는 후원자가 있는 국내 최대의 국제개발 NGO입니다. 40만명이 넘는 해외아동뿐 아니라

[Cover Story] 인도 빈곤 현장 르포

하루 한끼 급식과 길거리 학교가 꿈을 꿀 수 있게 해줘 시집갈 때 지참금 필요해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저주라고 생각… 성감별·낙태 성행하고 태어나자마자 죽이기도 해 쓰레기 마을 앞 공터… 길거리 학교에서의 공부가 가난 탈출의 유일한 수단 기자(記者)의 숙명은 모르고 살 수도 있는, 보지 않아도 될 현장을 간접적이나마 겪어 내고 기록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을 두 달여 취재하며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화두(話頭)가 바로 이것이었다. 신이 있다면, 내게 이런 현장들을 보게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긴 취재의 마지막 일정인 인도를 향하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인도의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달려온 길. 델리 공항의 출입구를 벗어나자, 훅 하는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퀴퀴한 냄새와 쉴 새 없이 들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 사람들의 싸우듯 시끄러운 목소리가 인도를 실감나게 했다. 10년 전 인도의 한 성냥 공장에서 만났던 라나가 떠올랐다. 12살의 라나는 갓 태어난 동생을 등에 업고 흙바닥에 앉아 성냥을 만들고 있었다. 황 냄새로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운 곳에서 아이는 하루 12시간씩 일한다고 했다. 또 얼마나 많은 라나를 만나게 될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마중을 나온 기아대책 김바울 기아봉사단원을 따라, 무슬림 빈민들이 모여 사는 니잠무딘 지역의 모하바트 학교를 찾았다.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50명 가까운 아이들이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고 있었다. 40도가 넘는 기온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함께

2006년 태풍이 할퀸 필리핀 라구나 주민 “6년째 굶주림과 싸워요”

재해 사라져도 고통 여전 – 복구 몇 년씩 걸리지만 도움 손길 턱없이 부족 난민들 대부분이 극빈층 – 전 세계 기후 난민 작년에만 2000만명 비가 후드득 떨어졌다. 10분도 안 돼, 필리핀의 라구나주(州) 로옥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금세 진흙탕으로 바뀌었다. 찢어진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비를 피해 맨발로 뛰기 시작했다. 열다섯 살 제시는 용케도 물웅덩이를 피해 달리며, 우리를 천장 낮은 집으로 안내했다. 길과 바로 마주한 문 앞에 신발을 벗어놓고 집 안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축축한 흙 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난 방 안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시 엄마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손으로 낡은 의자를 가리켰다. 두 평 남짓한 공간이 전부인 집에는 제시와 엄마, 그리고 갓 아이를 낳은 스무 살 큰딸이 함께 살고 있다. 제시의 아버지는 4년 전 골수암으로 사망했다. 뼈와 거죽만 남은 듯한 제시는 수학을 좋아해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좁은 방 안에는 책상도 책도 학용품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멋쩍은 듯 “태풍 때문에 가진 것을 모두 잃고 이곳에 임시로 정착해서 변변한 살림이 없다”고 했다. 아이 다섯을 둔 이웃집의 미찌(26)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진흙 바닥 위에 나무로 사방을 둘러 집 모양만 갖춘 곳에서 일곱 식구가 산다. 기아대책에서 나눠 준 장판이 바닥의 찬 습기를 막아주는 유일한 물건이다. 집 곳곳은 쥐들이 파먹어 구멍이 나 있고,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기침을 했다. 여섯 살 나다니엘은 백내장에 걸렸지만,

나눔·아동권리·부모되기… ‘진짜 공부’ 배우다

세계시민교육 시리즈 돌아보며… 지난주 혜민 스님의 ‘젊은 날의 깨달음’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미국 버클리·하버드·프린스턴대 등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 최초의 한국인 스님 교수가 된 그분의 삶이 담담하게 실려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눈길을 끈 대목은 “사실 중요한 것은 하버드대에서 공부했고 안 했고가 아니라 졸업 후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하버드에만 들어가면 성공하는 줄 알고 그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와 함께 ‘세계시민교육’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이 한 문장에 담겨 있었습니다. 1970년대 초등학교에 들어간 저는, 초·중·고는 물론이고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아 보거나 토론을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어떻게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 하는 건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어떤 힘으로 극복해야 하는지도 배워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세계시민교육’ 시리즈가 더욱 의미 깊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워야 했던 ‘진짜 공부’는 바로 이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권리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이해하고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지구촌의 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배우고,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자녀들을 어떻게 잘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동권리교육’ ‘나눔교육’ ‘부모교육’의 3종 세트로 이뤄진 ‘세계시민교육’은 격변하는 미래를 살아갈 우리 모두가 꼭 배워야 할

모기장만으로 수많은 생명 지킬 수 있어요

아프리카와 말라리아 에이즈와 함께 경제성장 저해 요인 가난에 병원·약품 부족 치료도 어려워 모기장 배포 지역 발병 확률 확 떨어져 아프리카를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이었다. 종족 분쟁과 내전으로 폐허가 된 ‘라이베리아’를 취재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처음 보는 아프리카는 끔찍했다. 폭격과 총탄에 의해 파괴된 도시는 UN평화유지군에 의해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년병으로 끌려갔던 아이들은 만신창이가 된 채 마을로 돌아왔고, 먹을 것이 없는 소녀들은 한 끼 식사에도 몸을 팔았다. 반군의 세력이 아직 남아 있는 지역을 취재할 때는 신변의 위협도 느껴졌다. 이 모든 괴로움에 더해 날 괴롭혔던 것은 말라리아에 대한 공포였다.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1주일에 한 알씩 약을 먹었는데, 먹을 때마다 구토가 심해졌다. 게다가 말라리아의 종류도 다양해, 복용하는 약으로 예방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불과 몇 주 만에 시력이 0.3 정도 떨어졌다.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위로했지만, 그 후 정상을 되찾기까지는 거의 6개월이 걸렸다. 이 때문에 이번 한 달여의 아프리카 취재를 준비하며 제일 고민스러웠던 부분도 말라리아였다. 방문하는 아프리카 6개국 모두가 ‘위험 지역’이었다. 아프리카에 도착해 처음 만난 우간다의 박범준 기아대책 자원봉사단원은 웃으며 “이곳에 오면 1년에 최소 2~3번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잠비크에서 만난 이상범 기아봉사단원도 “매년 한 번씩은 말라리아로 크게 앓는데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말라리아모기는 아프리카 현지인은 물론이고, 외국인 투자자, NGO 봉사단원을 가리지 않는다. 아프리카

가난한 아이들에게 축구란… ‘목숨 살리는 운동’

남아프리카공화국 대부분 부모에게 에이즈 물려받아 가벼운 감기에도 쉽게 목숨 잃어 마약에 찌든 청소년들 거리 곳곳에서 배회… 꿈을 가질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해 기아대책 후원으로 축구를 통해 정신·육체적 건강지켜 아프리카의 겨울은 추웠다. 얇은 바람막이 점퍼 하나를 믿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공항에 내리자마자 칼바람이 몰아쳤다. 영상 1도. 여름 샌들을 신은 발이 꽁꽁 얼기 시작했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과 찌는 듯한 더위를 생각했던 선입견이 또 깨지는 순간이다. 마중을 나온 기아대책 임흥세 기아봉사단원이 “아프리카의 겨울은 난방시설 없이 견뎌내야 해서 한국보다 더 지내기가 어렵다”고 웃었다. “아프리카를 가난하고 못사는 무더운 곳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덥고, 춥고, 언어도 다양하고, 이곳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공존하는 땅이지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아프리카를 한 달여 돌아보며 방대한 자원과 개발 기회, 중국과 인도의 공격적인 투자로 신흥 부자가 된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런 한편에서는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치료할 약이 없어 죽어가는 생명도 많았다. 미래를 이끌어 갈 역동적인 힘과 암울한 현실이 공존하는 땅이다. 임흥세 봉사단원은 홍명보, 김주성, 하석주 선수 등을 키워 낸 축구 감독 출신이다. 이곳에서도 미래의 축구 꿈나무들을 키워내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축구가 어떤 의미냐”고 묻자 그는 “생명을 살리는 축구”라고 답했다. “축구를 잘하면 프로 선수가 되고 돈 잘 벌게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곳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한테서 에이즈를 물려받았어요. 잘 먹지도 못하는데 몸까지 허약해지면 가벼운 감기에도 쉽게 목숨을 잃습니다. 기아대책의 후원으로 아이들이

아동권리교육 포럼_”아동권리교육, 학대 대처 능력 키워줘”

올해는 UN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아동권리 증진을 위해 정부와 민간단체,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아직도 아동 학대, 성폭력, 유괴, 집단 따돌림 등 각종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가 많다.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 역시 낮은 수준이다. 이에 굿네이버스는 지난 4일 창립 20주년을 맞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아동권리교육의 제도화 방안 모색을 위한 포럼’을 가졌다. 강당은 200명을 넘는 참석자로 성황을 이뤘다. 굿네이버스 이일하 회장은 “아동은 성인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당연히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아동의 권리가 침해되는 사례가 많다”며 “아동 학대, 성폭력, 유괴 등의 아동권리 침해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아동 권리교육의 제도화가 모색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기조 강연에 나선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UN아동권리위원회 부위원장)는 “우리나라의 아동 관련 예산은 26개 OECD 국가 중 하위권인 데다 아동 관련 데이터 역시 미흡하다”며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999년 시작된 굿네이버스의 아동 권리 교육은 현재까지 총 3만 5229개 교육기관에서 302만명의 아동, 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지난 한 해에만 아동, 부모, 교사 등 총 76만3054명이 교육을 받았다. 프로그램도 다양해져, ‘성학대 예방 인형극’, ‘아동힘키우기 서비스(CES, Child Empowering Service)’, ‘참여활동을 통한 아동학대 예방교육(PAPCM, Participatory Activity for the Prevention of Child Maltreatment)’, ‘놀면서 배우는 권리(CRA, Child Rights Awareness)’ 등을 개발해 왔다. 이날 포럼에서는 이런 굿네이버스의 아동권리교육에 대한 효과성 검증 연구가 발표됐다. 이번 연구에는 김경희 학회장(목포대

나일강 발원지 우간다 가보니_검게 변해 악취 심한 나일강물을 마시는 아이들 “그래도 강물이 있어 행복해요”

年220만명 오염된 물로 사망 위생시설 없이 사는 인구 39% 그중 대부분이 아프리카 주민 우물 파도 물 안 나와 발만 동동 아프리카를 떠나 오며 잊어지지 않는 풍경 중 하나가 나일강이었다. 비가 6개월 이상 오지 않아 쩍쩍 갈라지는 마른 땅과 숨죽이며 살아가는 사람들 뒤로, 아프리카 대륙은 거대한 수원(水源) 나일강을 품고 있었다. 길이 6671㎞의 거대한 강. 고대부터 사하라사막을 넘어 북부 아프리카와 적도 이남의 내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로. 그리고 가난한 ‘백성’들이 배 곯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풍부한 농업용수를 제공해 온 강이다. 하지만 5000년 넘게 가난한 이들을 품어 온 나일강도, 21세기 아프리카 사람들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각종 산업 지구가 쏟아내는 폐기물과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 폐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누구나 마실 수 있고, 물을 대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나일강은 이제 옛날 얘기다. 강물은 검게 변했고, 악취까지 났다. 나일강의 발원지가 있는 우간다 진자에서 만난 열 살 로널드는, “그래도 강물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몇 개월간 비가 오지 않는 사막지대에서 낙타의 피와 오줌으로 굶주림과 극한 갈증을 견디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다. 로널드는 커다란 노란 통 2개에 강물을 가득 담았다. 가족 모두가 하루 동안 마시고 씻을 물이다. 어른인 내가 들어도 휘청할 만큼의 물통을 들고, 아이는 1시간 거리의 집으로 떠났다. 로널드가 떠난 후 6~8세 정도 된 꼬마 3명도 노란 통 한 개씩을

[Cover story] 아프리카 모잠비크 교육 현장

“배우고 싶어요!” “배우고 싶어요!”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모잠비크의 수도 마푸토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은 중국인이었다. 작업복을 걸친 비슷한 생김새의 남자가 걸어오더니 “니하오”라고 말을 건넸다. 아프리카 취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가자, 중국 사람을 곳곳에서 만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이들 역시 중국이 모잠비크를 위해 지어주는 경기장 공사를 위해 온 사람들이다. 중국의 공격적인 자원 외교를 생각하며 복잡한 마음들이 오갔다. 모잠비크는 탄자니아,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와 인접한 국가다. 500여 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다가 1975년 독립했다. 끝없는 내전과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며 전체 인구의 38%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산다. ‘숫자로 보는’ 모잠비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수도 마푸토의 모습은 달랐다. 우리가 막 경제성장을 하기 시작했던 1970~1980년대처럼 도시 곳곳에서 건설 붐이 일고 있었다. 2800km의 긴 해안선을 지니고 있는 모잠비크의 가능성을 보고 달려온 서구 기업들과 외국 공관들로 러시를 이뤘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고급 주택이 들어서고, 쇼핑몰과 호텔 등의 공사도 줄을 잇고 있었다. 최근 정치적 안정이 이어지며 자원과 시장을 보고 투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도 주변에는 위성 도시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었다. 농촌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던 많은 인구가 도시의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려드는 인구 대비, 아이들을 가르칠 학교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잠비크는 7~14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의무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학교가 없으니 정부 정책은 무용지물이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Cover story] 물 한 모금 때문에 그들은 목숨 걸고 사막 건넜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케냐 최악의 가뭄으로 3만명은 목숨 잃고 40만명 영양실조 이미 정원 꽉 찬 케냐 다답 캠프로 매일 1500명 와 캠프에 닿기도 전 길에서 목숨 잃어 이렇게 도울 수 있어요_기근에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단 1만원으로 1년치 비타민을 케냐 북부의 ‘코어’지역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나이로비 공항. 다시 군용 트럭을 타고 7시간을 달렸다. 온 사방이 캄캄해졌다. 가로등도 없는 도로는 밤이면 산적들로 위험하다고 했다. 도시가 끝나고, 사막이 시작하는 낯선 도시 ‘이시올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커튼이 내려진 창 밖에는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어슬렁거렸다. 케냐 북부, 소말리아 등으로 마약을 실어 나르는 차들이 집결한다고 했다.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깨다 동틀 무렵 다시 트럭에 올랐다. 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비포장도로는 몸을 공처럼 튕겨냈다. 태양이 너무 강해 눈이 시렸다. 전날에 이어 다시 6시간을 달려 목적지인 코어에 도착했다. 섭씨 45도가 넘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이곳은 사막이다. 멀리서 사막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힘도 없어 보였다. 기아대책 최인호 봉사단원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며칠째 한 끼도 못 먹은 사람들이 많다”며 “여기 사람들은 60년 만에 겪는 최악의 재난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1년에 3~4차례 오는 비는 이곳 사람들의 ‘생명수’다.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비는 단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고 불리는 동아프리카 지역에

[나눔 교육 시리즈] ① 지구촌 한 가족, 나눔으로 한마음

아픔을 나누는 공감, 나눔 교육의 시작입니다 ①지구촌 한 가족, 나눔으로 한마음 ②가정에서 나눔 교육, 아이들이 달라져요 ③찾아가는 나눔 교육, 학교에서 배워요 ④배우는 ‘나눔 전문가’ 세계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공생(共生) 발전’을 얘기했습니다. 어느 누구의 희생을 발판으로 하지 않고, 함께 잘 사는 사회에 대한 강조였습니다. 지금 세계 리더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한국을 넘어 세계 속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국어, 영어, 수학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학교와 가정에서 나눔 교육이 절실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세계시민으로 잘 자라도록, 지구촌 이웃들이 겪고 있는 가난과 질병의 원인을 살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합니다. 이에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굿네이버스는 4회 연속 나눔 교육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배려하고 공감하며 세계 속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지지 부탁드립니다. 일상이 무료해지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저는 잠시 눈을 감고 숫자를 셉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 짧은 동안 한 명의 어린이가 또 목숨을 잃었겠구나. 굶주림에 지쳐서, 먹을 물이 없어서, 혹은 1000원짜리 예방접종 주사를 맞지 못해서 숨졌겠구나.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곤 합니다.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시간에 대해 감사하고, 그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합니다. 아이들과 나눔 교육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공감하는 작업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더

“사회적 기업의 인프라 지원 중요 자립 돕는 펀드도 만들고 싶어”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 정선희 상임이사 “장기적으로 ‘나’를 (사회에) 투자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단법인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의 정선희(51) 상임이사가 기자가 질문할 새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 이사는 우리나라에 사회적 기업의 개념을 처음 소개하고 지금의 형태가 되기까지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이다.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81학번이었던 그녀는 노동운동에 열심이었다.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고 노동조합 설립 자체도 원천 봉쇄됐던 그 때,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구로공단, 인천공단, 울산까지 내려가 노동운동을 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몰락은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서울로 다시 돌아와 대기업에 입사했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36세가 되던 1996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유학 준비에 몰두했다. “남편의 반대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평생 든든한 후원자”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이듬해 아이를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본인의 인생을 통틀어 봤을 때 너무나도 잘한 일이라 자부한다. 아이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개념조차 생겨나지 않았던 때 사회적 기업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 이사는 “사회적 기업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페이션트 비즈니스(Patient Business)”라고 말했다. 정부나 시장의 실패로 생기는 영역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창의성으로 사업을 꾸리고, 노동시장에서 통합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포용하기 때문에 일반 기업에 비해 손익분기도 늦게 오고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비즈니스라는 얘기다. 정 이사는 미국 유학 중 인내하는 투자로 사회적 기업을 키워내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의 활동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