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연합하고 공유하라” 은행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법

[인터뷰] 우펜드라 포우디알 GABV 아시아태평양 챕터 대표

글로벌 은행연합 GABV, 세계 45국 70개 회원사
은행은 공공 비즈니스, 사회 지속가능성에 무한책임
“전세계 은행 정보 교류, 한국 은행도 동참했으면”

“은행이 보유한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사회와 지구를 지킬 수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가치기반 금융을 위한 글로벌 연맹(GABV·Global Alliance for Banking on Values) 간담회’에서 우펜드라 포우디알 GABV 아시아태평양 챕터 대표가 말했다. GABV는 지속가능한 가치를 추구하는 은행들의 연합체로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0개 은행이 모여 창립했다.

이후 GABV는 돈이 지속가능한 가치를 중심으로 흐르도록 다양한 전략을 펼쳤다. 탄소중립을 위한 은행권 이니셔티브를 이끄는가 하면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나 사업에 투자하도록 촉구했다. 현재 미국, 독일, 방글라데시 등 전 세계 45국에서 70개 은행이 가입했다. 지난 2일 국내 은행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포우디알 대표는 “은행들이 지속가능성을 위해 각자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변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2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만난 우펜드라 포우디알 GABV 아시아태평양 챕터 대표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발전한 한국의 은행들이 더 많이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2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만난 우펜드라 포우디알 GABV 아시아태평양 챕터 대표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발전한 한국의 은행들이 더 많이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포우디알 대표는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NMB 은행 등에서 근무한 37년 경력의 뱅커다. 2000년부터 17년간 NMB 은행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은퇴 3년 전 네덜란드에서 열린 GABV 컨퍼런스에 참여하고서 금융에 대한 철학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30여 년의 커리어를 돌아본 그는 자신이 오직 주주 이익만을 중심에 두고 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은행장으로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할지, 개인으로서 지구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지난 2018년 부터 포우디알 대표는 GABV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로 취임해 은행권의 변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다음은 포우디알 대표와의 일문일답.

차별을 부수는 은행의 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은행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은행은 공공 비즈니스다. 은행 자금의 90%는 예금주가 따로 있다. 내가 존경하는 한 은행가는 ‘은행이 주주에게 주는 수익은 전체의 6%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 이상 추구하는 건 은행의 본질과 멀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은행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은행이 비즈니스에서 무엇을 고려하느냐에 따라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 환경·사회적 임팩트를 고려하면 은행 자금을 사용하는 기업도 그에 따른 상품을 만들게 된다. 은행은 금융기관으로서 국가와 산업을 옳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예를 든다면.

“성소수자, 여성, 원주민, 이주민 등 금융 접근권이 제한됐던 사람들에게 은행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면 이들은 이 서비스를 발판으로 경제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삶이 개선되고, 주류 사회로 들어와 실물 경제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이처럼 은행이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시스템을 조금만 변화시키면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요소를 부술 수 있다.”

-GABV는 어떤 단체인가.

“1998년 아시아금융위기와 2007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은행이 파산했다. 은행이 실물경제를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2009년 몇몇 은행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이대로 은행을 운영하면 소수의 사람만 부유해지고, 대다수 사람은 배제될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은행들이었다. 자원을 이대로 소비하다가는 후세에 남겨줄 자원이 모두 고갈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있었다. 네덜란드 ‘트리오도스 은행(Triodos Bank)’, 방글라데시 ‘브락 은행(BRAC Bank)’, 독일 ‘GLS 은행(GLS Bank)’, 미국 ‘뉴리소스 은행(New Resource Bank)’ 등 10개 은행이 뜻을 모았다. GABV를 창설하고 금융이 사람과 지구를 위해 봉사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현재 가입한 기관은 총 70곳이다. 이들이 가진 자산은 총 2000억 달러(약 265조6000억원)이며 총 고객은 6000만명, 직원은 8만명에 달한다. 회원사는 모두 은행을 책임 있게 운영하기 위한 여섯 가지 원칙을 따른다.”

-어떤 원칙인가.

“핵심 원칙은 은행업은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고 실물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 비즈니스 모델 중심에 사회·환경적 임팩트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고객들이 금융상품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깊이 이해할 것 ▲외부 충격에도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을 가질 것 ▲투명하고 포용적인 거버넌스를 확립할 것 등이 있다. 마지막 원칙은 이 다섯 원칙이 은행 조직 전체에 문화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진만 지속가능한 가치를 이해해서는 안 되고 CEO부터 말단 직원, 이사회, 고객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DNA에 들어 있어야 한다.”

포우디알 대표는 "지금 인류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은행도 모든 시스템을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포우디알 대표는 “지금 인류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은행도 모든 시스템을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은행의 임팩트를 측정하려면

-이미 ESG 경영을 선언한 은행이 많다.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는 질문해봐야 한다. 우선 거버넌스 구조 전체에 이런 책임감이 포함돼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지금은 사실상 지속가능 부서를 만든 것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모든 활동에서 숨 쉬듯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문화까지 도달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나도 고백하자면, 17년 동안 네팔 NMB은행장으로 일하면서 지속가능한 문화를 수직적으로 확산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말단 직원까지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 CEO 등 리더들은 수익을 기준으로 운영되던 은행 상품과 서비스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투자자나 주주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누린 것과 같은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와 규제 당국도 이 같은 변화를 전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이렇게 할 일이 많다.은행들이 행동을 시작한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을 포함해 진정으로 변화가 생기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은행의 임팩트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나.

“은행은 그동안 성과를 수익으로 측정했다. 그동안 나온 ESG 측정 도구는 많지만, 은행업은 다른 산업과 다른 특수성이 있다. 금융산업 특성을 반영한 성과 가치 측정 도구가 필요하다. GABV에서는 모든 은행에서 활용할 수 있는 ‘스코어카드(Score card)’를 개발했다. 은행이 경제·사회·환경에 미친 임팩트를 측정하는 트리플 바텀 라인(Tripple Bottom Line), 실물 경제에서 만든 변화가 주요 기준이다. 스코어카드를 활용하면 은행이 가진 지속가능한 가치를 이해관계자들에게 보여주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은행들이 GABV처럼 연합해야 하는 이유는.

“모여서 교류하면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다. GABV는 회원사 간의 만남을 늘리기 위한 자리를 정기적으로 마련한다. 각자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공유하고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리더들은 매년 열리는 연례 총회에서 교류하는 시간을 갖는다. 직원들이 지속가능한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차세대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한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중간 관리자들이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배우고 새로운 소식과 기술 정보를 업데이트 할 수 있도록 한다. 리더십 아카데미나 트리플 바텀 라인을 공부하는 소모임도 있다. 기후를 위한 공동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2019년 회원사끼리 탄소회계금융파트너십(PCAF)을 만들었다. 금융기관들이 탄소배출량을 공개해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 지금까지 400개 넘는 기관이 서명했다. 이들 자산 총 규모는 92조 달러(약 12경2130조원)가 넘는다. 지속가능경영과 관련된 국제 표준을 만드는 데도 관여한다. EU 택소노미, ISO 표준을 만드는 논의 등에 GABV 이름으로 참여했다.”

-한국에도 회원사가 있나.

“아직 없다. 오늘 간담회에 참여한 신협처럼 관심을 보이는 기관도 있다. 가입 조건은 간단하다. 금융당국에 등록하고 규제를 받는 은행일 것, 최소 운용 자산이 5000만 달러(약 664억원) 이상일 것, 대중의 예금을 받는 기관일 것 등이다. 기관이 얼마나 공동체 안에 뿌리박고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위급 의지도 중요하다. 은행장이나 이사장급이 1년에 한 번은 지역 미팅과 전체 총회에 참석했으면 한다. 한국 금융기관은 GABV에 꼭 초대하고 싶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가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한국이 간 길을 따라가고 싶어하는 국가가 많다. 한국의 은행이 지속가능성을 위한 발걸음을 함께 해주면 좋겠다. 그 길에 동참하려는 기관이 더 많아질 것이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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