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돌고래 잔혹사
수족관 도입 이후로 돌고래 70% 목숨 잃어
울산 고래생태체험관 ‘폐사율 1위’… 은폐까지
울산 남구청장 재선 맞물려 방류 촉구 거세져
“제가 만약 돌고래라면 죽음을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돌고래가 갇혀서 죽는 일이 없도록 제발 자연으로 방류해주세요.”
지난달 25일 울산 울주군의 한 초등학생이 남구청장 재선거 후보들에게 보낸 손편지 내용이다. 돌고래 방류는 지난 2013년 서울대공원에서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이후 동물·환경단체에서 꾸준히 제기해온 문제다.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해 지지부진하던 수족관 돌고래 이슈가 최근 4·7 울산 남구청장 재선거와 맞물려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내 수족관에 갇힌 고래류는 모두 27마리로, 전국 7곳의 수족관에 나뉘어 있다. 이 가운데 운영 주체가 공공기관인 것은 울산 남구청 산하 남구도시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이 유일하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를 비롯한 10개 동물·환경단체는 “남구청장 당선자는 고래생태체험관에 감금된 큰돌고래 4마리를 즉각 방류하라”고 촉구하는 상황이다.
돌고래 죽자 화단에 묻기도
국내 수족관에 돌고래가 처음 도입된 해는 1984년이다. 당시 서울대공원은 일본에서 돌고래 세 마리를 들여오면서 한 마리당 약 4만달러 비용을 냈다. 그해 어린이날 국내 첫 돌고래 쇼가 열렸고, 이후 매일 3~4회씩 조련받은 돌고래가 재롱을 부렸다. 돌고래를 보기 위해 회당 관람객이 2000여 명씩 몰릴 정도로 인기였다. 돌고래 쇼가 인기를 끌면서 제주, 여수, 거제 등 전국적으로 돌고래 사육장이 들어섰다. 일본·러시아에서 수입한 개체와 번식을 통해 태어난 개체를 합하면 100마리가 넘는다. 현재 남은 돌고래는 27마리. 30여 년간 70마리 가까운 개체가 폐사한 셈이다.
돌고래 도입·폐사 시기에 관한 전수 통계는 없다. 지난해 해양수산부가 내놓은 ‘수족관 돌고래 폐사 현황’ 자료에도 최근 10년간 폐사한 돌고래 현황만 나와있다. 해양수산부 자료와 환경단체 자료를 취합한 결과, 2009년 이후 폐사한 돌고래는 총 34마리로 확인됐다. 한 해 가장 많은 돌고래가 목숨을 잃은 해는 2015년으로 6마리가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인 2016년에도 5마리, 지난 2019년, 2020년에도 각각 5마리씩 폐사했다. 돌고래 폐사 없이 무사히 넘긴 해는 2013년이 유일했다.
돌고래의 평균 수명은 약 40년에 달하지만 대부분 조기 폐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폐사 시기가 확인된 돌고래 34마리 중 20마리가 10년을 채 살지 못했다. 생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죽은 무명(無名)의 돌고래도 5마리나 됐다.
전국 돌고래 수족관 가운데 폐사율이 가장 높은 곳은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이다. 2009년 개관 이래 돌고래 12마리 중 8마리가 폐사했다. 개관 당시 들여온 암컷 큰돌고래는 두 달 만에 전신성패혈증으로 죽었고, 2012년에 추가 수입한 암컷도 6개월 만에 폐사했다. 체험관 측은 두 번째 폐사 사실을 두 달간 숨겨오다 구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뒤늦게 들통났다. 돌고래 사체는 체험관 인근 화단에 묻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체험관 측에서 “살이 썩어 없어지면 뼈만 발라내 고래박물관에 전시하려고 했다”는 해명을 내놓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폐사 은폐 논란은 반복됐다. 2014년에는 생후 4일 된 새끼 돌고래가 폐렴으로 죽자, 이듬해에는 어미 고래의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겼다. 새로 태어난 새끼도 6일 만에 폐사했다. 같은 해 8월에는 11살로 추정되는 수컷 돌고래가 패혈증 쇼크사로 폐사했다.
2014년 개장한 거제씨월드의 경우, 매년 돌고래가 죽어나가면서 지금까지 10마리가 폐사된 것으로 확인됐다. 개장 당시 수입한 고래류는 큰돌고래 16마리, 흰고래(벨루가) 4마리 등 20마리였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는 벨루가 3마리 가운데 2마리가 폐사해 마지막 한 마리만 남았다.
“벨루가 사육하려면 최소 직경 20㎞ 수족관 필요”
수족관 돌고래들이 일찍 폐사하는 원인은 분명치 않다. 사인 분석을 위한 부검 결과에는 패혈증·폐렴·신부전증·심장마비 등으로 기록돼 있지만, 좁은 사육 환경과 강도 높은 조련에 따른 스트레스가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하루 100㎞ 이상을 유영하는 돌고래를 사육하려면 최소 직경 20~30㎞의 공간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벨루가의 경우 철새처럼 수천㎞를 이동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좁은 콘크리트 수조에서 생활하기 어렵다”고 했다.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자는 여론이 강하지만 방류 절차를 곧바로 밟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지난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류가 세계적 주목을 받았을 만큼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돌고래 자연 방류는 아시아에서 처음 시도되는 일이었고, 남방큰돌고래의 경우 세계 최초였다. 제돌이의 경우 서식지가 제주 해역으로 결정 난 이후에도 2년에 걸친 야생 적응 훈련을 받았고, 비용도 약 17억원이 들었다. 제돌이방류 시민위원장을 맡았던 최재천 교수는 “돌고래 방류에 관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프로토콜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연구를 분석해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돌고래가 사유 재산으로 취급된다는 점도 과제다. 지금까지 야생으로 돌아간 수족관 돌고래는 모두 7마리. 제돌이를 포함한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3마리는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직권으로 방류 결정이 났고, 제주 퍼시픽랜드에 있던 4마리는 불법 포획 혐의로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의 몰수 결정이 내려지면서 방류할 수 있었다. 현재 수족관 돌고래는 ▲거제 씨월드(10마리) ▲울산 고래생태체험관(4) ▲제주 퍼시픽랜드(4) ▲제주 한화아쿠아플라넷(4) ▲제주 마린파크(2) ▲여수 한화아쿠아플라넷(2) ▲서울 롯데월드 아쿠아리움(1) 등으로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다.
방류 가능성이 가장 크게 점쳐지는 곳은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이다. 울산 남구청장 재선거에 출마한 세 후보가 돌고래 방류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나머지 6곳의 운영 주체는 민간이라 사업자 의지에 따라 돌고래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이다. 민간사업자 가운데 돌고래 방류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곳은 롯데월드다. 롯데월드는 지난 2019년 벨루가 방류를 결정하고 올해까지 방류 적응장으로 이송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부터는 민관 협력으로 구축한 방류기술위원회 차원의 자문 회의를 진행 중이다. 자문 회의에 참여하는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벨루가는 북극해나 그린란드 해역처럼 낮은 수온을 유지하는 곳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제돌이처럼 국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갈 만한 서식지가 아이슬란드밖에 없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했다. 조 대표는 “원서식지로 보내면 가장 좋겠지만 다시 포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안전한 서식지 확보만 된다면 본격적인 방류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 방류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더 이상의 수족관 폐사를 막기 위한 동물권 확보도 필요한 상황이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월 ‘제1차 수족관 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고래류 신규 사육·전시를 전면 금지하고 일부 수족관에서 운영하는 올라타기·만지기 등 동물 학대 행위를 금지하기로 했다. 해외에서도 돌고래 사육을 금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캐나다는 지난 2019년부터 치료·구조·학술 연구 목적을 제외한 고래류의 사육·전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와 인도네시아에서는 돌고래 야생 적응을 위한 바다 쉼터를 조성해 방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