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인재양성 종합계획’ 현장 반응
정부가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달 초 정부는 ‘사회적경제 인재양성 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을 공개하며 “사회적경제 전문인력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청년창업 기반을 마련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경제 조직에 청년이 취업할 경우 연 2400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하고, 소셜벤처 창업 지원 대상도 연간 500팀에서 1000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사회적경제 선도대학을 선정한 뒤, 관련 학부나 연구소를 개설할 때 지원금을 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회적경제 현장에서는 환영과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범부처 차원의 종합계획을 통해 정부의 실행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현장 목소리가 잘 담기지 않았고, 실효성 면에서도 의문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사회적경제 일자리 만들기 전에 노동 환경부터 개선하자
정부가 발표한 인재양성 종합계획에는 ‘청년’과 ‘일자리’가 유독 강조돼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사회적경제 전문가들은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권하기 전에 사회적경제 조직 자체가 청년들에게 건강하고 좋은 일터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적경제 대표 연구기관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의 김연아 연구위원은 “현재 사회적경제 조직은 낮은 임금, 높은 노동 강도 때문에 사시사철 구인광고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대학에서 인재를 양성해도 이들이 성장할 토양이 빈약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오히려 창업 및 취업 지원보다 노동환경 개선,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경제조직 역량 지원 등 정부 지원망에서 빗겨간 영역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은 조만간 2000곳을 넘어설 전망이다. 2007년 55개에 불과했던 인증 사회적기업은 2018년 현재 1937개로 11년 만에 35배 이상 증가했다. 협동조합은 2016년 말 기준 1만615개로 2년 전(6235개)에 비해 1.7배 늘었다. 양적 성장은 있었지만 사회적경제 조직원들의 삶은 질적으로는 나아진 게 없다. 국세청에 따르면 근로소득자 1618만명의 평균 월급이 264만원인 반면, 사회적기업 근로자의 평균 월급은 약 1.8배 낮은 145만원이었다(2015년 연말정산 대상 기준). 협동조합 조합원 및 비조합원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도 각각 147만원, 92만원에 그쳤다.
조직원이 성장하기 어려운 노동환경도 문제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공익 목적의 사업을 수행하다 보니, 정부 용역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김태인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정부 사업에 경쟁적으로 입찰하게 되면서 사업 결산, 회계 등 행정 업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면서 “혁신과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미션을 가지고 조직에 들어온 사람들이 지쳐 떠나는 걸 자주 본다”고 했다.
주수원 전국학교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정책위원은 “그동안의 사회적경제 지원은 주로 신규 고용 및 창업에 집중됐는데 이번 계획에서도 마찬가지”라면서 “학교 협동조합 등 고용창출로 직결되지 않는 사회적경제 조직이 지원 받기는 힘들다”고 목소리를 냈다.
◇종합계획 구체화한 후속 로드맵이 나와야
정부는 인건비와 창업 지원, 종사자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적경제 조직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인건비 지원 대상이 ‘청년’으로 한정된 데다, 그나마도 2년간만 지원돼 비용 대비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또 대부분의 종사자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교육 프로그램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목소리도 있다.
긍정적인 시선도 있다. 정부가 종합계획을 발표함으로써 현재 국회에 1년 넘게 계류 중인 ‘사회적경제 기본법’ 통과에 다시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부처 간 합의와 협력 지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사회적경제 조직 관계자는 “그동안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분야별로 부처가 달라 관리와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12개 부처가 협력해 한목소리를 낸 점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현장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큰 틀 안에서 발표된 종합계획인 만큼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반영한 후속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초·중·고 교육과정에 사회적경제 내용을 반영하겠다는 교육부의 계획을 실행할 방안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김혜원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교과과정 개편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강한데 교육 개편의 키를 쥔 전문가집단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전문가, 학교현장, 정책 결정자 등이 자주 모여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 연구자 네트워크인 ‘미래가치와 리질리언스 포럼’의 김홍길 대표는 “사회적경제 선도대학을 2022년까지 20개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현장에서는 사회적경제를 가르칠 적합한 교육자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김 대표는 “사회적경제는 실용적 학문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현장 전문가를 교육자로 양성하는 등 현장과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