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소셜벤처에게 묻다(남해의봄날·1만5000원)’ 책 속엔 초기, 중기, 성숙기에 맞는 단계별 전략과 노하우가 담겨있다. 책 속엔 중기 단계로 꼽힌 오파테크, 머시주스 스토리와 성숙기 단계에 접어든 위누와 히즈빈스 사례가 소개됐다.
◇소셜 이노베이터 6人6色 이야기-②오파테크·머시주스·위누·히즈빈스
저자들은 “초기 미션 수립 후엔 관련 영역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보통의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창업가들의 경우 현장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 특히 회사 운영에 필수적인 마케팅, 브랜딩, 홍보 등에 대한 역량은 부족한 상황. 그러나 중기 단계의 소셜벤처로 꼽힌 오파테크와 머시주스는 전문성과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무장했다. 이 박사는 “오파테크는 ‘완전 기술 기반 사업’으로 국내 뿐 아니라 북미, 호주 등의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해 있는데 이는 이경황 대표와 김항석 이사의 기술 전문성 덕분”이라고 했다. 이 대표와 김 이사는 카이스트 사회적기업가 MBA 동문이다. 시각장애인 점자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액츄에이터 기술을 개발, 특허를 가지고 있다. ☞점자 교육보조기 ‘탭틸로’ 만든 이경황 대표 “누구나 쉽게 점자 배울 수 있어요” 인터뷰 보기
* 엑츄에이터 기술: 기존 점자의 경우 평면 위로 튀어나온 부분을 유지하려면 전기가 지속적으로 흘러야하기 때문에 제작 비용이 비싸고 물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엑츄에이터 기술을 활용한 점자 기기는 전기 대신 물리적 기술을 활용해 점자가 튀어오를 때만 전기를 사용하게 한다. 이에 전기가 기존 모델 대비 비용이 1/6 적게 들고 물에도 강하며 반도체가 필요 없어 제작 비용이 대폭 절감된다.
문정한 머시주스 대표는 브랜딩과 마케팅에 능수능란하다. 보통 사회적기업, 소셜벤처가 범하는 실수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선한의지를 강조하면 물건이 팔리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감이다. 이 박사는 “문정한 대표는 머시주스의 제품이 일반 기업의 상품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는 콜드프레스 공법 도입 등 품질 관리는 물론 젊은 여성과 직장인을 타켓팅한 세련된 마케팅 전략까지 짰다”면서 “오파테크나 머시주스처럼 고객들이 제품을 구매했다가 사회적가치를 발견하고 ‘코어 팬(Core Fan)’이 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직접 구입으로 영세 농가 돕는 사람들
마지막 성숙기에 접어든 위누와 히즈빈스는 일찍이 사회적경제에 뛰어든 케이스로 창업 아이템을 선점, 다수의 실패 경험을 통해 수십번의 변화를 거친 베테랑들이다. 각각 올해 11년, 10년차된 두 회사는 백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넣듯,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허미호 대표는 야후 코리아에서 글로벌 플랫폼을 국내에 적용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하다 2007년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위누를 설립했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선보이고 대중이 소비할 플랫폼이 없다는 것에 착안해 이를 연결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위누의 활약상이 궁금하다면?
히즈빈스는 소외계층의 직업 교육에서 나아가 조현병, 우울증 환자 등 세부 영역에 집중한 사례다. 이미 저소득층 청소년, 발달장애인 등을 교육·고용하는 사회적기업들은 다수 존재했다. 이에 임정택 대표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복지 사각지대가 분명 있을 것이라 판단,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 및 고용을 시작했다. 따가운 사회적 시선과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이들을 음지에서 나오게 하는 방법이야말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한 자립이라 본 것이다. ☞더나은미래가 주목한 히즈빈스
이렇게 각자 창업 동기, 성장 과정 및 단계도 다른 이들이지만 저자들은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반 벤처기업은 미션을 잡았다가도 실패하면 빨리 접는 게 덕목이라 여기는데 소셜 이노베이터들은 달라요. 실패를 하더라도 처음 세웠던 사회문제와 미션을 계속 붙잡고 있죠. 무조건적인 효율성의 논리가 여기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6명의 리더처럼 소셜벤처, 사회적기업들은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지고 시작해야 해요. 일반 기업은 사업을 통해 고객을 기쁘게 하지만, 만약 히즈빈스가 없어진다면 정신장애 환자들이 더 이상 도움을 못 받게 됩니다. 소셜벤처가 사업을 하지 않으면 고객들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이새롬 박사)
◇성공보다 성장과 실패가 중요한 이유
책은 6개 조직의 성공담이 주가 되지 않는다. 창업 동기와 실패담이 이야기의 절반을 구성한다. 저자들은 “사회적경제를 진정 이해하려면 창업 계기와 성장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미션을 가진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는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매달리지 않는다. ‘돈이 되면 사업을 하고 아니면 포기한다’는 식의 자본주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영역이다. 이에 명확한 미션과 독자적 스토리가 없다면 버텨내기 힘들다. 특정 조직의 성공담이 자신에게 딱 맞는 조언이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들이 성장의 진폭과 속도보다 과정과 미션에 집중하는 이유다.
이 책은 “단순 자금 지원을 통해 조직의 몸집을 키우는 일보다 자생력을 강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자성과 스토리가 없는 조직은 사회혁신 분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강화하는 서포트를 각 단계별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 반면 정부의 지원책은 사회적기업 인증과 같은 정책을 만들어 사업을 규격화시키고 자금 지원이 이뤄지는 방식이라, 사회적 경제의 판을 키울 순 있어도 질적 성장은 도모하긴 힘들다.
도 대표는 “임팩트스퀘어는 모델 재수정, 투자 조성, 대기업 사회자본 활용, 해외 파트너와의 협업 등 5단계 성장 전략을 통해 조직의 혁신 시스템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준다”면서 “정부의 지원책 역시 단순 지원을 넘어서 임팩트 투자를 활성화하는 등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방법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도 “현재 사회적경제 관련 창업을 시작하기 좋은 때인건 사실이지만, 기업의 유일한 고객은 정부나 대기업이 아닌 일반 대중이기 때문에 고객 설정을 잘해야 한다”면서 “의존성을 버리고 사회적 미션과 제품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두 저자는 인터뷰 내내 ‘성장’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리더 6인의 화려한 프로필 뒤에 숨겨진 ‘실패’와 ‘극복’이라는 진면목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2007년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을 읽고 임팩트스퀘어를 창업했던 저처럼, 이 책을 통해 소셜벤처 기업가들이 치열하게 담금질해 자신의 삶을 뒤흔든 순간을 독자들도 경험하길 바랍니다.”(도현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