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기 싫어요”…장애인 바리스타가 만난 ‘실수해도 괜찮은’ 일터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는 직접고용, 히즈빈스는 현장 지원 맡은 사내카페
장애인 바리스타·매니저·기업이 함께 만드는 장애인 일자리 현장

“퇴근 별로 안 좋아해요. 여기서 함께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해요.”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사내카페 ‘따숨(TTA:SOOM)’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바리스타 이태훈(22) 씨의 말이다. 지난 1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TTA 사옥에서 만난 이 씨의 얼굴에는 인터뷰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TTA 사옥 1층에 문을 연 따숨은 TTA가 장애인 바리스타를 직접 고용하고, 장애인 고용 전문기업 히즈빈스가 채용·교육과 매장 운영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TTA가 직접 고용한 장애인 바리스타 4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히즈빈스 소속 매니저 2명이 업무 배치와 근무 일정, 컨디션 관리 등 현장 운영을 돕는다.

(왼쪽부터)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와 히즈빈스가 함께 운영하는 사내카페 ‘따숨’에서 바리스타 이태훈 씨와 김주희 매니저를 만났다. / 채예빈 기자

오후 3시, 매장에는 임직원들이 테이블을 이어 붙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해 카페 문을 열 때부터 함께해온 바리스타와 매니저, TTA 담당자를 만나 이곳의 일하는 방식을 들어봤다.

◇ ‘실수하면 안 된다’던 직장에서 ‘직접 해보는’ 일터로

이 씨는 따숨에 오기 전에도 약 2년간 다른 기업의 사내카페에서 일했다. 같은 바리스타 업무지만 일하는 경험은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그는 “예전 직장은 분위기가 엄격해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항상 긴장했다”며 “여기서는 실수해도 유쾌하게 받아주시고 ‘앞으로 조심하면 된다’고 말해줘 마음이 많이 놓였다”고 말했다.

실수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크다. 한 번은 조급한 마음에 믹서기 작동을 완전히 멈추지 않은 채 용기를 다시 끼우려다 기계가 망가질 뻔했다.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씨는 지금도 실수한 날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다는 생각에 악몽을 꾸기도 한다. 스스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거듭 말했지만 김주희 매니저가 보기에는 달랐다.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약 8년간 일한 김 매니저는 이 씨를 매장 상황에 따라 필요한 역할을 두루 맡는 ‘만능’ 바리스타로 평가한다.

실제 따숨에 온 뒤 이 씨의 업무 범위는 넓어졌다. 이전 직장에서는 주로 음료 제조와 설거지를 맡았지만 지금은 주문을 받고 직접 샷을 추출하는 일까지 한다. 따숨에서는 원두 세 종류를 음료에 따라 구분해 사용해야 한다. 이제는 한꺼번에 4~8잔의 주문이 들어와도 스스로 처리한다. 이 씨는 “쓸모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직원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매장 전반을 살피는 김 매니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리스타들이 실수 때문에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책임감이 강한 만큼 작은 실수에도 자책하곤 한다”며 “한 명 한 명을 기다려줄 수 있고 각자의 속도가 있으니 속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계속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업무 역시 대신해주기보다 직접 해볼 기회를 준다. “처음에는 1부터 9까지 도와줘야 했다면 지금은 1, 2만 알려줘도 나머지는 직접 해낸다”며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혼자 해본 경험이 부족했던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동료들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메운다. 누군가 음료를 쏟으면 한 사람은 새 음료를 만들고 다른 사람은 바닥을 닦는다. 당황한 직원 곁에서는 또 다른 동료가 “괜찮다”고 다독인다. 김 매니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로 돕는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따숨은 이 씨에게 “직장인지 가족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편한 곳이 됐다. 동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고, 바리스타로 성장한 자신의 실력도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받은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는 히즈빈스와 함께 기존 시험·인증 공간을 장애인 고용과 임직원 복지를 위한 사내카페 ‘따숨’으로 조성했다. /채예빈 기자

◇ 장애인 직접고용 돕는 ‘기업 연계형 카페’…전국 29곳 운영

따숨은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면서 임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휴게·소통 공간을 함께 조성하기 위해 시작됐다. TTA는 시험·인증 등 전문성이 필요한 직무 비중이 높은 기관이다.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를 고민하던 중 사옥 1층의 기존 시험·인증 공간을 임직원 휴게 공간으로 바꾸는 방안이 맞물렸다. 약 1년에 걸쳐 카페와 회의·휴게 기능을 갖춘 공간을 만들었다.

TTA가 장애인 직접고용을 결정하는 과정에는 히즈빈스의 현장 지원 체계도 역할을 했다. 채용 전 약 3주간 바리스타 실무와 직장생활 기본교육을 진행한 뒤 근무자를 선발한다. 채용 이후에는 히즈빈스 매니저가 현장에서 업무 수행과 컨디션을 살피고, 필요한 사항을 TTA와 조율한다. 강지운 TTA 경영지원실 수석은 “채용 전 교육 과정부터 볼 수 있었고, 채용 이후에도 현장에서 매니저가 함께 근무하기 때문에 직접고용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우려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카페 운영을 히즈빈스에만 맡겨놓은 것은 아니다. 따숨 구성원들은 강 수석을 ‘숨은 매니저’라고 부른다. 현장에서 불편하거나 필요한 부분을 전달하면 TTA와 히즈빈스가 함께 해결책을 찾기 때문이다.

다음 달 시범운영을 앞둔 모바일 주문 시스템도 현장 의견에서 출발했다. 주문 접수에 투입되는 인력을 줄여 바리스타들이 음료 제조 등 다른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근무 중 어려움이 생겼을 때도 히즈빈스 매니저와 TTA 담당자가 함께 휴식과 근무 일정을 조정한다.

강 수석은 “단순히 카페를 이용하는 입장이 아니라 같이 운영을 꾸려나간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며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는 분들도 많은데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는 만큼 일하는 사람들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히즈빈스는 국내에서 36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기업 연계형 매장은 29개다. 국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장애인 직원은 150여 명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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