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은 오랫동안 인간의 권리와 이익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한때는 성인 남성만이 참정권을 가지던 시대도 있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여성, 외국인, 아동·청소년의 권리도 당연히 인정되는 사회가 되었다. 권리의 주체는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고, 공익 변호사들은 그 변화의 최전선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의 권리를 함께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인간이 아닌 존재의 권리는 누가 대변할 수 있을까. 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은 오직 ‘인간’뿐일까.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 함께 숨 쉬는 나무와 숲, 하늘을 나는 새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에게는 권리가 없는 것일까. 사단법인 선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곳이다.
사단법인 선은 법무법인 원이 설립한 공익법인이다. 법무법인 원은 2009년 창립 때부터 공익인권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다양한 공익활동을 해왔다. 2013년에는 보다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국내 두 번째 로펌 산하 공익법인인 ‘사단법인 선’을 설립했다. 사단법인 선은 아동, 난민, 이주민 등 전통적인 인권 분야의 법률 지원은 물론, 기후변화와 생태계 보전 등 환경법 영역에서도 선도적인 프로보노 활동을 펼쳐왔다.
사단법인 선은 2013년부터 ‘지구법 강좌’를 운영하며 ‘자연의 권리’와 지구법학(Earth Jurisprudence)을 알리고 있다. 기존 환경법이 인간이 환경을 안전하게 이용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구법은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지구법은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지구 공동체(Earth Community)의 한 구성원일 뿐이며, 자연은 그 자체로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지닌다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인간중심적 법체계에서 벗어나 생태중심적 법체계로 전환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사단법인 선의 기후·생태 분야 활동은 이러한 지구법적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필자가 사단법인 선에서 처음 맡은 사건은 국내 한 중공업 회사의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며, 그린워싱을 비판하기 위해 집회와 시위를 한 청년 기후 활동가들을 대리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법정에서 단순히 재물손괴의 구성요건이나 청년들의 표현의 자유만을 다투지 않았다. 이 소송은 기업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기후위기를 얼마나 가속하는지, 생태계 파괴로 사라질 자연과 동물의 이야기, 그리고 기후정의라는 거대한 가치를 법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었다.
자연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도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2023년에는 기업의 사업활동이 기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기후공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소원과 함께 기후공시 의무화를 위한 입법 운동에도 함께했다. 최근 부암동 은행나무 손괴 사건의 고발대리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20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해 온 나무를 훼손한 행위를 고발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나무는 스스로 법정에 설 수 없기에, 누군가는 그 목소리를 대신해야 한다.
나무를 보호하고 동물과 자연을 대리하는 일은 기존 법체계 안에서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다. 현행법은 자연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물건’이나 ‘객체’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끊임없이 자연의 목소리를 대신해 법정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래야 법이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도 바뀐다.
새로운 권리의 역사는 늘 누군가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되었다. 여성의 권리도, 장애인의 권리도, 난민의 권리도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들도 권리의 주체”라고 주장했고, 법은 느리지만 그 요구를 조금씩 받아들이며 변해 왔다.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서 있다. 그 위기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인간만으로는 지켜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건강한 생태계, 안정된 기후, 풍부한 생물다양성이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도 지속될 수 있다.
강은 권리를 가지는가. 나무는 권리를 가지는가. 아직은 낯설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강과 숲, 자연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입법 사례가 등장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그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변화를 앞당기는 일은 결국 누군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말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연의 곁에 서서 그 목소리를 대변하는 변호사, 한 그루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 법정에 서는 변호사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보미 사단법인 선 변호사
로펌공익네트워크는 로펌의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해 2016년에 결성되어 현재 국내 12개 주요 로펌(법무법인 광장,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대륙아주, 법무법인 동인, 법무법인 로고스, 법무법인 바른, 법무법인 세종, 법무법인 원, 법무법인 율촌, 법무법인 지평, 법무법인 태평양, 법무법인 화우)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본 네트워크는 로펌이 서로 힘을 합쳐 로펌 및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활성화하고 로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시리즈를 통해 변호사들의 프로보노 활동을 생생히 알리고, 법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함으로써 공익활동의 가치가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