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고용 성과도 거래한다면…“벌금보다 보상으로”

부담금만으로는 의무 고용 한계…탄소배출권처럼 시장 활용 아이디어
“양보다 질 담는 설계가 관건”

“장애인을 채용해 시설을 갖추고 4대 보험료를 내느니 차라리 부담금을 내는 게 낫다.”

1991년부터 시행된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대하는 많은 한국 기업의 현실적인 판단이다. 2026년 기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민간 기업은 전체 직원의 3.1%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하며, 100인 이상 기업이 이를 어길 시 미달 인원에 비례해 부담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2024년 기준 의무고용률을 충족한 기업은 42.4%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편의시설 설치나 안전관리 비용이 정부 장려금보다 크다고 토로한다. 더 큰 문제는 고용의 질이다. 일부 기업은 부담금을 피하고자 단기·저임금 일자리 위주로 장애인을 채용하며, 그 결과 장애인 근로자의 44.5%가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이 2026년 5월 발간한 아티클 ‘패널티를 인센티브로 바꾸는 사회적 가치 거래제: 장애인 고용 정책의 새로운 접근’ 표지. /편집=채예빈 기자

단순한 규제와 부담금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벤치마킹하자는 대안이 나왔다. 올해 5월 SK그룹 산하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은 아티클 ‘패널티를 인센티브로 바꾸는 사회적 가치 거래제: 장애인 고용 정책의 새로운 접근’을 통해 ‘장애인 고용 성과 거래제’를 제안했다. 기준보다 장애인을 많이 고용한 기업은 남는 ‘크레딧’을 팔아 이익을 얻고, 기준을 채우지 못한 기업은 이를 구매해 의무를 다하는 방식이다.

◇ 수요·공급·유인·거래비용…거래제의 조건 따져보니

미국이 1990년대 산성비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한 이산화황 배출권 거래제는 대기오염물질 감축에 성과를 거뒀으며, 이후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모델이 됐다. /Unsplash

과거 환경 규제 역시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감축 비용이 많이 드는 기업은 규제 준수보다 부담금 납부를 택했고, 비용이 적게 드는 기업은 추가 감축에 따른 보상이 없어 허용 기준치에만 맞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에 시장 메커니즘을 결합한 것이 배출권 거래제다. 배출량을 기준보다 더 줄인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판매해 수익을 얻고, 기준을 맞추지 못한 기업은 이를 구매해 규제를 이행할 수 있다. 탄소가격제를 도입한 독일·영국·미국 등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5~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고용 성과도 탄소배출권처럼 거래 가능한 크레딧이 될 수 있을까. 아티클은 거래제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수요와 공급 ▲참여자 수 ▲참여 유인 ▲거래 비용을 꼽았다. 미국은 1990년대에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산성비를 해결하기 위해 이산화황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면서 기준 초과 시 배출권 가격의 4~10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해 자발적인 감축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이산화황 배출량은 1980년대 대비 90% 이상 감소했다.

반면 한국은 이를 본떠 수도권 대기오염물질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지만, 부담금이 배출권 가격의 3배 수준으로 낮고 배출 총량도 여유롭게 설정돼 거래 활성화에 실패했다. 또한 미국의 수질 거래제나 영국의 포장폐기물 재활용 인증서 제도처럼 성과를 측정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복잡해 행정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할 경우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이 1997년 도입한 포장폐기물 재활용 인증서(PRN·Packaging Recovery Note) 제도는 재활용 실적을 인증서 형태로 거래하는 방식으로, 포장재 생산 기업은 이를 구매해 재활용 의무를 이행한다. /Unsplash

장애인 고용 성과 거래제는 의무고용률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50인 이상 사업장이 대상이라 수요와 공급, 참여자 수가 충분하게 형성될 수 있다. 미고용 시 내야 하는 부담금은 거래 참여를 유인하며, 고용 여부는 인원수로 명확히 측정할 수 있어 기본적인 거래 요건을 상당 부분 갖췄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의 양뿐만 아니라 질까지 함께 반영할 수 있는 제도 설계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 “고용의 양을 넘어 삶의 질까지 높여야”

장애인 고용 성과 거래제가 성공하려면 고용 규모 확대를 넘어 고용의 질과 직접고용 원칙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Magnific

전문가들은 성과 거래가 장애인 고용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은 제도 설계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지점이라고 짚는다. 장애인 고용 인원만 성과로 인정하면 기존 의무고용제에서 나타난 단기·저임금 일자리 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크레딧을 단순 고용 인원 기준으로 부여하는 대신 고용 형태, 장애 정도, 근속 기간 등을 반영해 차등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조희진 사회적가치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성과를 측정해 보상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사례를 들며, 크레딧을 부여할 때 임금이나 근속 기간, 고용 형태 등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가중치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만 그는 “변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거래 비용이 커질 수 있어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제도 도입에 있어 기업의 최소 직접고용 기준을 어디까지 둘 것인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탄소 감축 분야에서 직접 감축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으로 평가받듯, 장애인 고용 역시 직접고용이 우선돼야 한다는 시각 때문이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장애인 고용을 법으로 정한 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모든 장애인 고용 성과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대체한다면 법의 취지와 어긋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의 직접고용 기준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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