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장애 당사자와 대화를 나눠본 것은 2018년 홈리스 법률상담 현장에서였다. 당시 의뢰인은 ‘나를 단톡방에 계속 초대해 욕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청소년들의 사이버 따돌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시기였던 터라, 유사한 피해를 입은 것이라 짐작하고 상담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휴대폰 어디에도 욕설이 담긴 대화창은 존재하지 않았다.
홈리스 상담에서는 명의도용, 파산 등 경제 관련 문제가 많았고, 이혼이나 가정폭력 사건도 적지 않았다. 그런 사건들도 해결이 쉽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앞선 사례와 같이 현실과 망상의 경계에 서 있는 분과 대화를 이어 나가기에는 당시 필자의 정신장애에 대한 이해도, 상담 경험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 당혹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홈리스 인권을 주제로 강의할 기회가 생기면, 홈리스는 고정된 지위가 아니라 ‘일시적 상태’이며 개인의 실패나 의지 부족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라고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정신장애에 대해서는 달랐다. 소송과 상담 현장에서 종종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의뢰인들을 마주해 왔음에도, 이를 개인의 불행이거나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던 중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 문제를 다룬 화우공익세미나에서 당사자와 가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를 가졌고, 더 결정적으로는 정신장애인 옹호기관 설립을 위한 자문변호사단 활동 중 맡은 한 형사 사건이 필자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정신장애 역시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 나가야 할 인권 문제임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공무집행방해죄 변호를 위해 만난 의뢰인은 차분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해 왔고, 성인이 된 후에는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퇴근길, 갑작스럽게 조울 증상이 발현한 의뢰인은 길 한복판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외투를 입고 벗기를 반복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다.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급기야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되었다.
형사공판에서 필자는 범행 당시 피고인이 양극성 정동장애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음을 주장하는 한편, 경미한 정신질환 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엄벌보다 범죄 예방이라는 형사 정책 본래의 목적과 피고인의 원만한 사회 복귀를 위해 치료 중심의 접근이 선행되어야 함을 피력하였다.
다행히 1심 재판부는 양형조사위원회를 열어 피고인의 정신 병력과 투약 현황, 회복 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엄벌보다는 정신과적 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호관찰부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집행유예 기간 동안 국가가 직접 피고인의 정신과 상담과 투약 여부를 감독하겠다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심지어 피고인의 정신 질환이 심각해 재범 방지를 위한 격리 치료가 필요하다며 항소심 재판부에 치료감호를 청구하였다.
치료감호는 병과된 징역형의 형기가 만료된 이후에도 치료 및 개선의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최장 15년까지 치료감호시설에 수용될 수 있어, 인신구속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재범의 위험성과 치료 필요성 등 요건을 비례원칙에 따라 엄격히 심사한 후 선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신 상태에 대한 조사나 감정이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설령 치료감호가 선고된다 하더라도, 국내 유일의 국립법무병원인 공주치료감호소는 고질적인 전문의 부족과 부실 진료 문제로 실질적인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에 필자는 경미한 정신 질환이 적절한 치료 없이 방치되어 더 큰 사회적 위험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이 사건을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결단해 줄 것을 재판부에 간곡히 요청하였다.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하면서 피고인에게 “투약을 중단하면 언제든 증상이 재발할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당부와 함께, 집행유예 기간 동안 치료를 성실히 받아 사회로 복귀하기를 믿고 응원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신장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판결이었다. 법이 차가운 심판자가 아니라 따뜻한 조력자의 얼굴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최근 정신 질환을 호소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무한 경쟁, 가정·학교 폭력, 각종 범죄 등 그 원인도 다양하다. 정신장애는 특정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홈리스나 위기 청소년 등 다른 인권 문제와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이어온 배제와 격리의 관행 탓에 정신장애인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시선, 그리고 병을 숨기기 급급한 당사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정신장애는 장애의 범주에 속하지만, 신체장애와 달리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상태가 가변적이라는 특성 탓에 폭넓은 사회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복지보다는 치료나 격리의 관점에서 다루어지며 장애 담론에서도 오랫동안 사각지대에 머물러 왔다. 다행히 최근에는 정신장애를 단순한 질병으로 보지 않고 ‘신경다양성’이나 ‘생존자’의 시각으로 재정의하려는 당사자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를 인간의 다양한 존재 방식으로 포용하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이제라도 정신장애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안고,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알면 두렵지 않고, 일상의 영역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곧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홍유진 화우공익재단 상임변호사
로펌공익네트워크는 로펌의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해 2016년에 결성되어 현재 국내 12개 주요 로펌(법무법인 광장,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대륙아주, 법무법인 동인, 법무법인 로고스, 법무법인 바른, 법무법인 세종, 법무법인 원, 법무법인 율촌, 법무법인 지평, 법무법인 태평양, 법무법인 화우)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본 네트워크는 로펌이 서로 힘을 합쳐 로펌 및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활성화하고 로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시리즈를 통해 변호사들의 프로보노 활동을 생생히 알리고, 법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함으로써 공익활동의 가치가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