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수형자와 함께 심는 희망… 사고는 줄이고 용기는 키우죠”

교도소 아버지학교
토의·나눔·편지 쓰기‐ 머리가 아닌 삶으로 깨우쳐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성큼 다가왔지만 교도소는 여전히 겨울이다. 마음의 상처와 절망, 회한이 뒤섞인 수형자들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때문에, 반기는 이도 관심을 갖는 이도 없는 사회 때문에 한 번 더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두꺼운 철문 너머 교도소는 여전히 겨울이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수형자들과 함께 지내며 다양한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통해 수형자들에게 회복과 희망을 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국 1만5000여 교도관들이다.

지난 금요일, 그중 ‘교도소 아버지학교’를 통해 수형자들의 마음에 봄을 선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교도소 아버지학교’의 김동수(50) 사역팀장과 양훈석(49·진주교도소), 이남형(48·군산교도소), 김병용(44·소망교도소) 교도관들이다. ‘교도소 아버지학교’는 수형자들의 올바른 아버지상 정립을 통해 출소 후 재범 방지 및 범죄와 수형생활로 인해 깨진 수형자 가족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와 각 교정시설이 함께 운영한다. 교정본부에 따르면 2003년 여주교도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4개 교정시설에서 시행 중이다. 미혼자를 위한 예비아버지학교, 여성을 위한 어머니학교도 열리고 있다.

이남형 교도관, 김동수 사역팀장, 양훈석 교도관, 김병용 교도관(왼쪽부터)은“아버지학교를 통해 많이 배우고 깨닫는다”며 오히려 고마움을 표했다.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kodk77@chosun.com
이남형 교도관, 김동수 사역팀장, 양훈석 교도관, 김병용 교도관(왼쪽부터)은“아버지학교를 통해 많이 배우고 깨닫는다”며 오히려 고마움을 표했다.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kodk77@chosun.com

처음 시작할 당시를 묻자 “참 눈물이 많았다”며 김 교도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봉사자 분들이 강당을 마치 레스토랑처럼 꾸며 주셨어요. 깨끗한 테이블보도 깔고 테이블마다 장미꽃으로 장식도 했죠. 자리마다 한 명 한 명 수형자의 이름표도 마련했고요. 시간이 되어 강당으로 들어서는 수형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시절엔 수형자는 무조건 번호로 불렀거든요.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울고, 예쁜 장미꽃에 울고, 교도관이나 봉사자들이 손잡아주고 안아주는 것에 울고…. 눈물바다였습니다.”

그러한 정성과 섬김 때문일까? 수형자들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김 교도관은 “교도소 아버지학교를 진행하는 기간에는 교도소 내 사건·사고 발생이 확연히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아버지학교 수료 후 인생의 꿈이 생기고, 타인을 섬기고 배려하는 등 수형자들의 태도가 바뀐다는 것이다. 수형생활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비롯해 수형자 간 분쟁과 갈등도 확연히 줄었다. 프로그램 중 편지쓰기, 고백하기 등의 시간에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참회하는 경우도 많았다.

봉사자가 수형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있다.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제공
봉사자가 수형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있다.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제공

옆에서 김 팀장도 거든다. “15년 형의 절반 남짓을 보낸 청년 하나가 있어요. 저를 ‘아버지’라 부르며 참 많이 따르는데, 아버지학교 후 꿈이 생기더니 달라지더라고요. 방송통신대를 통해 공부를 시작하더니 요즘은 장학금도 받아요. 수석 졸업도 하고 직업훈련을 통해 조리사 자격증도 딸 거래요.”

가정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5년 전에 출소한 분인데, 지금껏 매주 제게 좋은 글귀를 담은 문자메시지를 보내세요. 그분은 경마에 빠져 교도소에 들어왔습니다. 가정은 산산조각이 났죠. 이혼수속이 진행되고 아이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죠. ‘아버지학교’ 진행 중에 그분의 영상편지를 들고 제가 직접 찾아갔었어요. 딸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아들은 문을 차고 저희 짐을 내던지며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사실 아이들이 입은 상처도 얼마나 컸겠어요. 지금은 아내와 재결합해 잘살고 있습니다. 아직 아들·딸과 완전히 가까워지진 못 했지만 그래도 대화는 나누고 있다고 합니다. 성실하게 직장도 다니고 지역에서 ‘아버지학교’ 봉사자로도 활동하세요. 가족과 사회에 진 빚을 그렇게 갚고 계세요.”(이남형 교도관)

봉사자와 수형자가 서로 안아줄 때마다 강의장은 눈물 바다가 된다.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제공
봉사자와 수형자가 서로 안아줄 때마다 강의장은 눈물 바다가 된다.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제공

그뿐만이 아니다. 교도관에게도 오히려 감동과 보람을 선물했다. “저도 아버지학교 때문에 변했다”며 이 교도관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각양각색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며 근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1987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는데 저도 처음엔 좌절도, 방황도 많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미울 때도 많았죠. 그러다 이 아버지학교를 시작하면서 바뀌기 시작했어요. 이들이 안쓰러워지고, 이들의 가족이 걱정되고, 이들의 출소 후 삶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다른 사람들은 다 포기하더라도 저희까지 수형자들을 포기하면 안 되거든요. 어찌 보면 아버지학교를 하면서 오히려 교도관인 저희들이 희망을 발견하고 힘과 용기를 얻는 것 같아요.” 아버지학교 진행 중에 아이들만 사회에 남겨진 가정 등 불우한 가정을 발견하면 한 푼 두 푼 모아 생활비나 학비도 댔다. ‘교도소 아버지학교’를 함께한 모든 이들이 대가족이 되어버린 셈이다.

‘교도소 아버지학교’는 수많은 수형자와 가정, 교도소에 회복과 희망을 선물한 덕분에 2005년 9월, 법무부가 주최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교정국장 회의에서 혁신적인 교정프로그램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기본 프로그램은 4주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아버지의 정체성, 영향력, 사명, 사랑 등을 배우는 것이다. 단순한 강의가 아니라 토의와 나눔, 발표, 편지 쓰기, 세족식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머리가 아닌 삶으로 배운다. 이를 위해 수형자 수보다 많은 봉사자가 참여한다. 특히 세족식 때는 봉사자들이 일대일로 수형자의 발을 정성스레 씻어준다.

“봉사자들의 섬기는 모습에서 많이 배운다”며 양훈석 교도관은 봉사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사실 교도소가 봉사하기 좋은 곳은 아니에요. 드나들기도 쉽지 않고, 까다로운 보안 규정 때문에 불편한 것도 많고요. 교도소라는 것 때문에 두렵기고 하고 경직되기도 하죠. 평일에 열리는 경우도 많으니 회사를 다니면서 봉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들 열정과 헌신이 넘치세요.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참 묵묵히 봉사하는 분들을 뵈면 제가 오히려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게 되죠.” 정작 진주교도소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다른 교도소까지 가서 아버지학교를 거드느라 토요일에 쉬지 못할 때도 많은 양 교도관의 고백이다.

현재 전국의 아버지학교 봉사자는 약 8000여명. 이들이 교도소를 비롯해 군부대, 공공기관, 기업, 학교, 교회 등 다양한 곳에서 봉사한다. 작년부터 교도소 아버지학교 사역팀장을 맡고 있는 김동수 팀장도 그러한 봉사자 중 하나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시간을 내어 교도소에서 봉사한다. 새로운 곳에서 교도소 아버지학교에 대한 문의나 신청이 들어오면, 전국 어느 곳이든 한걸음에 달려간다. 작년부터는 아예 출소자들이 사회에 잘 정착하고 성실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사회적 기업도 시작했다.

“작년 공주교도소에서 어르신을 만났죠. 60대인데, 지금 19년째 형을 살고 있어요.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이분 접견을 갑니다. 서로 편지도 꾸준히 주고받고요. 오늘 60번째 편지를 받았는데, 매번 편지를 읽을 때마다 이분의 마음이 변하고 다듬어지는 걸 느낍니다. 오늘은 ‘연로한 어머니께 내년 봄에는 회초리를 가득 들고 찾아뵙겠다’는 시를 적어 보냈네요. 작년에 이분이 “고향에도 못 가고 자녀에게도 폐 끼치기 싫다”고 하기에, 그럼 제가 모시겠다고 했어요. 원래 10년째 청소대행업을 해왔는데, 작년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습니다. 다른 취약계층 근로자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어요. 내년 봄에 출소하실 날을….”

“더 고생하는 분들, 더 섬기는 분들이 많은데, 더 힘들고 고생스러운 교도소가 많은데, 우리가 인터뷰를 해서 어떡하느냐”며 목소리를 모으는 네 명은 “사회에서도 교정시설과 수형자 및 출소자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아무리 심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일정 형기를 마치면 사회로 돌아가거든요. 즉 우리의 이웃이 됩니다. 보다 아름다운 사회를 위해 교정, 교화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커지고, 수형자·출소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입견보다는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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