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여성이사, 기업에 정말 도움 될까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 소장

ESG 경영이 기업의 장기적 가치 창출과 리스크 관리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사회 다양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가 됐다. 글로벌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다양성을 주주가치 창출의 핵심 동력으로 보고, 다양성이 부족한 기업에는 과감히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논의는 여전히 ‘법적 의무 충족’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성 이사 수를 늘리면 ESG 성과가 개선될 것이라는 단순한 기대는 ‘평균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사회 다양성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데 있다.

◇ 숫자보다 중요한 건 ‘균형’…커피 블렌드의 법칙

최고의 ESG 성과는 단순히 여성 이사 수를 늘린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균형’이다. 이사회의 성별 구성을 이해하려면, 이를 마치 ‘커피 블렌드’에 비유해볼 수 있다.

좋은 커피 한 잔은 콜롬비아·브라질·에티오피아 등 서로 다른 원두의 개성과 향미가 정교하게 어우러질 때 완성된다. 콜롬비아 원두만 100% 사용하거나, 혹은 단순히 모든 원두를 1:1 비율로 섞는다고 해서 반드시 최고의 맛(최고 ESG 성과)이 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핵심은 각기 다른 특성이 만들어내는 조화, 즉 ‘황금 비율’을 찾는 데 있다.

유럽 25개국 1878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게데스(Geddes)와 그뤼블러(Gruebler)의 2025년 연구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여성 이사 비율이 높을수록 ESG 성과가 꾸준히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을 지나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지는 ‘역(逆) U자형 관계’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이사회의 남녀 성별 구성이 어느 정도일 때 가장 좋은 성과를 나타낼까.

연구진은 기업의 ESG 성과가 여성 이사 비율이 약 60%일 때 가장 높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전통적인 ‘임계치(Critical Mass)’ 이론이 제시한 20~40%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여성 이사들이 보이는 높은 위험 회피 성향, 윤리적 책임감, 환경과 기후 문제에 대한 관심, 이해관계자 신뢰 구축 역량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관점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성장의 속도를 높였다면, 여성의 관점은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세밀하게 조율하는 ‘안정의 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율이 60%를 넘어 100%에 가까워질 경우, 오히려 ESG 점수가 다시 떨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어느 한 성별이 과도하게 지배할 때 협의와 조정의 균형이 무너지고, 의사결정의 다양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연구는 젠더 다양성이 단순한 ‘사회적 요구’가 아니라, 기업의 ESG 성과와 장기 가치 창출을 극대화하는 핵심 동력임을 확인시켜준다. 이 결과는 우리가 이사회 다양성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함을 시사한다.

◇ 여성이사 15%에 멈춘 한국, ‘균형의 60%’로 가려면

이 연구가 제시한 60%의 ‘최적 균형’은 한국 기업의 현실과 큰 간극을 보인다. 한국은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의 이사회에 특정 성별 이사 1인 이상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2023년 기준 여성 등기이사 비율은 고작 15.36%에 머문다. 법적 요건은 충족했을지 몰라도,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출발선’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곧 한국 기업이 놓치고 있는 ESG 성과의 잠재력을 뜻한다. 15%에서 60%로 나아가는 그 45%포인트의 차이는, 단순한 비율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의 격차이기도 하다. 다양성이 미흡한 이사회는 리스크 관리, 이해관계자 신뢰, 지속가능성 전략에서 글로벌 기업보다 한 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여성이사 의무화’가 아니라, ‘전략적 균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법이 정한 최소 기준이 아니라 최적 비율(약 60%)을 전략 목표로 삼아야 한다. 숫자 자체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이 시너지를 내는 조합이 중요하다.

둘째, 여성 이사를 형식적으로 채우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핵심 위원회나 의사결정 라인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름만 올린 자리로는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셋째,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고 토론이 장려되는 포용적 기업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성 이사들이 고유한 강점을 발휘하고, 이사회가 복잡한 ESG 시대의 난제를 풀어낼 수 있다.

이제 이사회 다양성 부족은 단순한 공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의 문제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이를 ‘전략적 자산 손실’로 본다. 규정 맞추기에 급급한 ‘최소 인원’의 사고에서 벗어나, ‘최적의 균형’을 경영 전략으로 삼을 때 비로소 ESG 성과와 지속가능한 가치 창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논문: Guedes, M. J., & Grübler, A. S. (2025). BALANCED GENDER BOARDS AND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PERFORMANCE. Risk Governance & Control: Financial Markets & Institutions, 15.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 소장

필자 소개

지속가능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하며 지속가능경영과 지속가능경제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위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 연구, 자문, 컨설팅, 국제표준 심사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환경공학과 경영학, 국제학을 공부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공급망관리와 CSR, 지속가능경영 관련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에는 한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ESG, 지속가능경영, CSR, 창업과 같은 과목을 가르쳤고, 공공기관인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초대 사업본부장으로 재직시에는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사업을 총괄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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