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 x 아름다운재단 공동기획]
보이지 않는 아이들, 사라지지 않는 권리<4> 미등록 이주아동, 꿈 가로막는 현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꼬리표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교육을 받고, 미래를 꿈꾸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적 신분이 없다는 이유로 원하는 진로를 포기해야 하거나, 대학을 가지 않으면 강제 출국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오는 3월 31일은 법무부가 시행한 미등록 이주아동의 한시적 체류 대책이 종료되는 날이다. 이에 따라 체류 연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아동들은 원칙적으로 한국을 떠나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7일 법무부 장관에게 “국내 장기체류 아동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방안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 대학이 곧 체류 자격, 갈 수도 없고 남을 수도 없는 현실
필리핀 국적의 B씨에게 고등학교 졸업은 곧 한국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현행 제도상 미등록 이주아동은 만 20세까지 한시적으로 체류할 수 있지만, 이후에는 유학 비자(D-4)를 받아야만 한국에 머물 수 있다. 즉, 대학에 진학해야만 체류 자격이 연장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선택지가 없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해요. 그런데 대학을 안 가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니,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요?”
B씨는 필리핀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만 자란 그에게 필리핀은 낯선 나라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갑자기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가야 한다는 게 너무 막막해요.”
현재 미등록 이주아동이 성인이 된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체류 비자는 유학 비자(D-2)뿐이다. 즉, 대학에 진학해야만 한국에 머물 수 있다는 뜻이다. 강다영 성공회용산나눔의집 활동가는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벅찬 상황에서, 이 아이들은 대학 학비와 월세 부담까지 떠안아야 한다”며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원해도 비자 문제로 가로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 꿈과는 별개…취업비자 가능한 학과로 진학해야
대학에 진학해도 체류를 위한 선택일 뿐,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몽골 국적의 부모님 아래 한국에서 태어난 C씨는 학창 시절 사회복지사를 꿈꿨다. 미등록 신분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학교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뒤 그는 한국에서 사회복지사로 취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취업하려면 E-7(전문직) 비자나 E-9(비전문직) 비자를 취득해야 한다. 문제는 사회복지사는 이 두 비자 모두에서 제외된 직군이라는 점이다. E-7 비자는 법무부가 지정한 87개 전문 직종에서만 취업이 가능하며, 주로 대졸 이상의 학력을 요구한다. 해당 직군에는 IT 엔지니어, 연구개발직, 호텔 조리사, 데이터 전문가 등이 포함되지만, 사회복지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E-9 비자는 제조업, 농축산업, 어업, 건설업 등 단순노동직 취업자를 위한 비자로, 주로 고졸 이하 학력을 가진 이주노동자에게 발급된다. 미등록 이주아동이 이 비자를 취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C씨는 “사회복지사는 E-7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직종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소비자학과로 전과해야 했다”며 “정작 한국에서 자라며 꿈꿔왔던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 “체류 먼저, 꿈은 나중”…미등록 이주아동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
이처럼 미등록 이주아동이 성인이 되면 체류 연장과 취업을 위해 자신의 적성과 무관한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에 놓인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강제 출국 대상이 되며, 사회복지사 등 일부 직종은 E-7(전문직) 비자 취득이 불가능하다. 설령 대졸자라 해도 연봉 4500만 원 이상을 충족해야 취업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단순노동직인 E-9 비자는 농업, 축산업 등 대상 직군이 제한적이며, 고용허가제로 운영돼 현실적으로 취득이 어렵다. 결국 미등록 이주아동이 교육을 받고 안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없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부모의 본국으로 돌아가 취업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김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이에 대해 “구제 대책을 통해 체류 자격을 얻은 아동들은 한국에서 6~7년간 거주하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며 “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들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난민 등 여러 사유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귀국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주아동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비자가 보장되지 않는 한, 진로를 강제당하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며 “한시적 체류 연장이 아닌, 이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체계적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