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6일(일)

미등록 이주아동, 20년간의 임시 대책…여전히 불안한 ‘기본권’

[더나은미래 x 아름다운재단 공동기획]
보이지 않는 아이들, 사라지지 않는 권리<2> 미등록 이주아동 정책 변천사

미등록 이주아동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6년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법적 신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현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부분 ‘한시적 구제책’에 그쳤다. 교육과 체류권을 놓고 반복되는 임시 조치는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미등록 이주아동이 언제까지 ‘조건부 체류’라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하느냐고 지적한다. 언론이 보도한 미등록 이주아동 이슈 속, 한국 정부가 내놓은 미등록 이주아동 정책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그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도 함께 짚어본다.

◇ 이슈 생겨야 대책 나오는 현실, 미등록 이주아동의 불안한 교육권

2006년 4월, 스리랑카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야무나 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학교에서 데리러 가던 길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체포됐다. 당시 경기도 안산 원일초등학교는 전국 최초로 외국인 노동자 자녀를 위한 특별학급을 운영하고 있었다. 3km나 되는 아들 등하굣길을 함께하던 길이 곧바로 구금으로 이어졌다. 야무나 씨는 6일 후 풀려났고, 인대가 파열된 손목 치료를 위해 3개월 간의 출국 유예를 받았다. 그 사이, 아들은 어머니와 헤어질까 봐 두려워하며 학교에 가지 못했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표적단속’ 논란이 불거졌다. 비판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법무부와 협의해 미등록 이주아동의 등하굣길을 이용한 단속을 중단하는 ‘다문화가정 자녀교육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이 단속에 대한 두려움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 대책이었다.

같은 해 8월,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초등학교에 다닐 경우, ‘자진 신고’ 조건부로 2008년 2월까지 체류를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조건은 까다로웠다. 2007년 2월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동은 졸업 후 30일까지만 체류가 가능했다. 정부는 이 정책이 아동의 학습 단절을 막고, 본국 귀국 후 부적응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정부가 미등록 이주아동을 8000여 명으로 추산했지만, 실제 특별 체류 허가를 받은 아동은 100여 명에 불과했다.

교육부는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압박 속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의 의무교육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해왔다.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은 국적이나 체류 상태와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교육받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2월, 정부는 한국이 1991년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취지를 반영하여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출입국 기록이 없어도, 임대계약서·인우보증서 등을 통해 거주 사실을 증명하면 초등학교 입학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의무교육이 초등학교에만 한정된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2010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중학교까지 확대 적용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등록 이주아동의 법적 지위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2012년 10월, 몽골 출신 미등록 이주아동 김민우(당시 고1, 몽골명 빌궁) 군은 친구의 송별회 자리에서 싸움을 말리려다 경찰에 연행됐다. 조사 과정에서 그가 미등록 이주아동임이 밝혀졌다. 한국에 10년을 살았던 김 군이 외국인보호소로 옮겨져 혼자 몽골로 쫓겨나기까지는 단 5일이 걸렸다.

김 군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아동 강제추방’이 국제 인권 기준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일었다. 시민사회와 인권단체들은 정부의 조치가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는 김 군이 국내 대학에 입학할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재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학습권 보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3년 11월, 정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학습권을 고등학교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아동이 적발되더라도 강제퇴거 집행을 유예해 중학교 졸업 후에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 한시적 구제, 3월 말이면 끝…이 아이들은 어디로 가나

그러나 학습권 보장이 체류권 보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2021년, 15년 이상 한국에서 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한시적 구제책을 부여했다. 당초 법무부는 국내에서 출생하고 15년 이상 체류하며 중·고교를 이수했거나 졸업한 아동만 체류를 허용했다. 이러한 구제책이 과도하게 엄격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인권위는 이 기준대로라면 2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아동 중 500명 이하의 아동만 구제될 것이라며 사실상 권고가 이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같은 가정에서도 출생지나 체류 기간에 따라 형제자매 간 체류 자격이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시민사회에서도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는 2022년 1월, 기준을 일부 완화했다.

법무부 청사
법무부는 2021년 장기 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한시적 구제책을 부여했으며 그 조건을 2022년에 한 차례 완화했다. /조선일보DB

이 기준에 따라 현재 미등록 이주아동은 ▲6세 미만으로 입국 후 6년 이상 공교육을 이수하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우 ▲6세 이상 입국 후 7년 이상 공교육을 이수하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우 한국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2025년 3월 31일’까지만 유효한 임시 조치다.

조영관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현재 시행 중인 구제책이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조 변호사는 “일시적인 구제가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체류 자격을 상실한 이주민들이 법과 사회적 안전망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상시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2021년 발표된 구제책은 한시적 조치에 불과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보기 어렵다”며 비판했다.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는 인구 감소와 노동력 확보를 위해 매년 이주 노동자와 유학생 유치를 확대하고 있다”며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 성장한 이주 아동에게는 안정적인 체류 자격조차 보장하지 않는 것은 모순적이다”고 꼬집었다.

지난 20년간 법무부의 ‘임시 연장’ 대책이 반복되는 동안, 아이들은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이제, 한국 정부가 내놓을 3월의 대책은 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남길 것인가.

김경하·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 다음 기사에서는 ‘한시적 체류’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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