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돌봄부터 진로까지 막혀있다

희망친구 기아대책 ‘이주배경아동, 사회적 연결을 위한 6가지 시선’ 포럼
전문가들 “생애주기 맞춤 지원과 사회적 포용성 확대 시급”

“한국은 이주배경 아동의 정착을 돕겠다 말하지만, 그 뒤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란 이주배경 아동은 보통 청년과 다르지 않습니다.”

권오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일 서울 종로구 페럼타워에서 국제구호개발 NGO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주최한 ‘2025 이주배경아동, 사회적 연결을 위한 6가지 시선’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이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을 인구 문제의 해법으로 주목하지만, 포용의 폭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2일 주최한 제5회 아동청소년복지포럼 ‘이주배경아동, 사회적 연결을 위한 6가지 시선’에서 최창남 기아대책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형탁 기자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은 270만 명, 전체 인구의 5.2%다. 이 가운데 아동·청소년은 30만8000여 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관련 보도도 연평균 11% 증가했지만, 이들이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기에는 제도적 장벽이 높다는 게 이날 논의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최창남 기아대책 회장은 “앞으로 함께 살아갈 사회에서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을 품지 못한다면 우리가 부담해야 할 위험이 크다”고 했다.

◇ ‘돌봄·교육·진로’ 세 단계의 장

신소연 기아대책 이주배경사업팀장은 “이주배경 아동은 성장 과정에서 돌봄·교육·진로라는 3중 장벽을 마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적 문제로 지역아동센터 입소가 거절되거나, 언어 적응에 실패해 학습 격차가 벌어지고, 대학 이후에는 높은 중도 탈락률과 제한된 진로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아대책이 이슈·임팩트 측정 전문기업 트리플라잇과 함께 올해 7월 이주배경 아동 및 청년 370명(유효응답 225명)을 대상으로 진행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0%가 “학창시절 또래와 같은 수준으로 학교생활이나 공부를 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대학 진학 뒤에도 적응 문제로 중도 탈락률이 높고, 언어 장벽 때문에 생계형 진로를 택하는 사례가 많았다.

신 팀장은 “미취학기에는 돌봄과 언어, 청소년기에는 학습과 또래 관계, 청년기에는 진로 기회가 부족하다”며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장벽을 넘는 데 가족·교사·기관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던 만큼 사회적 관계망을 강화해야 한다”며 “성장 단계마다 편견과 차별이 반복되는 만큼 인식 개선과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와 더나은미래에서 인턴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주배경청년 당사자 김지영 활동가가 ‘이주배경아동, 사회적 연결을 위한 6가지 시선’에서 발표하고 있다. /김형탁 기자

현장에는 이주배경 청년 당사자가 직접 기자로 마이크를 잡아 눈길을 끌었다. 김지영 기아대책 이주배경 청년활동가는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취재 후기를 바탕으로, 이주배경 청년들이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겪는 현실을 전했다. 그는 “한국어를 잘해도 ‘외국인은 외국인’이라는 시선 때문에 신분을 숨기기도 하고, 같은 스펙을 갖고 있어도 직무 선택은 서비스직이나 통역 등으로 제한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자리를 구한 뒤에도 비자 규정이 수시로 바뀌고, 관련 정보를 제때 얻지 못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새로운 지원책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 부모 신분 따라 불안정해지는 체류자격…한국은 국제 기준 미달도

불안정한 체류 자격이 아동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논의됐다. 안지영 사단법인 피난처 매니저는 “부모의 비자 종류에 따라 아동의 체류 자격이 결정된다”며 “이들을 단순히 ‘이주배경’이라는 범주로 묶기보다 상황별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혼이민자와 북한이탈주민 자녀는 국적 취득 기회가 있지만, 그 외 아동들은 대회 출전·장학금·인턴십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2일 열린 ‘이주배경아동, 사회적 연결을 위한 6가지 시선’에서 안지영 사단법인 피난처 매니저가 토론 중 발언하고 있다. /김형탁 기자

이재호 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 정책담당관은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과 글로벌콤팩트(GCM)에 서명했지만, 미등록 아동 체류권 보장이나 아동 구금 금지에서 국제 기준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신상록 함께하는다문화네트워크 이사장은 “현재 3만 명에 달하는 미등록 아동이 제도권 밖에 방치돼 있다”며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확대해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이주 아동의 권리 증진은 한국 사회의 포용성을 넓히는 길”이라며 “언제든 우리가 이주민이 될 수 있는 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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