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책상을 붙여 굳이 서로 마주 보고 일하는 이유가 뭐에요?”
조직에 새롭게 합류해 일한 지 3개월을 넘긴 구성원이 나에게 물었다. 아차, 우리가 왜 이렇게 일하는지를 한 번도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 “아… 그게요. 홈페이지에 있는데요.”라는 말로 입을 뗐다. 생각해 보니 조금 우스운 말이다. 홈페이지에 조직문화가 문장으로 정리된 것과 지금 내 옆에 있는 동료가 그 문화를 아는 것의 격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만큼이나 크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조직의 문화를 충분히 공유하지 않은 것이 문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명문화된 조직문화와 실제 우리가 보내는 일상 사이의 격차가 보였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우리를 다 담아내지 못하는 단어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누구라도 빠지기 쉬운 협곡이 있다. 바로 ‘존재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의 협곡이다. 그 협곡은 습관적 관행이라는 안개로 뒤덮여 있기에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책 ‘어댑티브 리더십’에서는 조직의 현재 상태는 나름의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일상이 된 것이라고 말한다. 조직의 구조, 문화, 관행은 조직을 규정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끈질기게 느껴질 정도로 잘 변하지 않는 이유는 장시간에 걸쳐 서서히 쌓여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각 조직이 보내는 오늘의 질서는 과거의 위기를 넘게 하고 필요했던 변화가 일어나게 했던 일종의 성공 방식으로서, 현재도 매끄럽고 우아하게 작동되며 과거의 수많은 결정의 패턴을 통해 완고하게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책상을 붙이고 칸막이도 없이 일하는 ‘보이게 일한다’라는 오늘의 문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초창기 시절 재택근무와 유연 근무가 기본 값일 때 서로의 업무 흐름을 효율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투명함을 합의한 소통 방식이었고, 오픈 된 공간의 코워킹 스페이스의 책상을 나눠 쓰다 보니 발현된 자연스런 구조였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기 위해선 서로의 뇌가 연결되는 대화가 중요하다는 우리만의 집단 규범은 이 형태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일하는 형태가 완전히 바뀌었다. 오픈되지 않은 우리만의 사무실을 쓰고 있으며, 유연 근무도 가능하지만 새로 입사한 사회 초년생 구성원들과의 협업을 위해 사무실에 모이기를 힘쓰고 있다. 일의 특성상 집중해서 보고서나 글을 써야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마주 보고 있기에 언제든 질문이 날아오거나, 끼고 싶은 재밌는 대화가 수시로 펼쳐져 집중이 필요한 업무는 고요하고 거룩한 밤으로 미뤄지기 일쑤였다.
환경이 바뀌었으니 이제는 등을 돌려 앉으면 될까? 책 ‘어댑티브 리더십’에서는 필요했던 변화를 만들기 위해선 과거를 버리는 것이 아닌 과거의 토대 위에서 변화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급하게 시도하기 전에 과거 관행으로부터 ▲무엇을 보존할지 가려내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파악하며 ▲가장 훌륭하게 작용했던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은 일종의 해결책으로 새로운 규범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일명 ‘집중빡빡타임’이다. 몇 시간만큼은 분리된 공간에서 집중해서 업무하겠다는 것을 공유하고 긴급하지 않은 소통은 그 이후에 회신할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보이게 일한다’라는 기존 질서의 핵심 가치인 ‘서로가 보이는 투명한 소통’은 보존하되,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본 것이다. 절실함과 압박감을 알기에 동료의 집중을 염원하며 응원을 주고받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재미였다. 또한 보이지 않아도 성실히 일하고 있을 것을 믿는다는 일종의 신뢰의 표현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조직의 질서는 반복적이고 익숙한 습관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은 무엇인가? 입사 첫날로 돌아가 그때의 나에게 가장 낯설게 느껴졌던 조직의 문화를 떠올려 보고 현재와 비교해 보며 여전히 효과적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 볼 수도 있다. 아니면 모든 것이 다 낯설게 보이는 신규 구성원의 신선한 관점을 빌릴 수 있도록, 질문과 대화를 통해 조직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것도 방법이다.
질서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바뀌며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화한다는 ‘엔트로피 원칙’은 조직문화에도 적용된다. 치우지 않고 내버려두면 무참히 어지럽혀지는 방처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조직의 문화도 무질서라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청소하기에 알맞은 연말이라는 시즌이다.
안지혜 진저티프로젝트 디렉터
필자 소개 건강한 변화가 시작되는 곳 (주)진저티프로젝트에서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성수동의 사회혁신가부터 군산, 밀양의 청년까지 섹터와 지역을 넘나들며 교육, 연구, 출판의 형태로 변화를 촉진해 왔습니다. 사회혁신가, 문화기획자는 어떤 조건과 환경 속에서 성장하는지, Z세대와 함께 일하기 위한 조직문화는 무엇인지 연구했습니다. 진저티프로젝트에서 매니저, 팀장에 이어 현재는 디렉터로서, 나의 성장을 넘어, 조직의 성장, 동료의 성장이 일어나는 건강한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과 분투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