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pH 6.5] 생존의 갈림길, ‘턴 어라운드’를 만드는 한 끗

안지혜 진저티프로젝트 디렉터

필자가 일하고 있는 진저티프로젝트는 올해 4월이면 11살이 된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것처럼 보였던 대표님들도 사실 창업 4년 차의 길을 걷고 있었고, 완벽해 보이던 선배들 역시 성장과 불안 속에서 버텨내고 있던 프로젝트 매니저들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 변화의 흐름 속에서…생존과 지속 사이

달리는 열차의 창밖 풍경처럼, 조직을 둘러싼 생태계도 끊임없이 변해왔다. 소셜벤처, 임팩트, 변화와 같은 단어들이 마치 봄날 새순처럼 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눈앞의 성과는 보이지 않았지만, 저마다의 열정으로 만든 풍성한 잎사귀들이 가득했던 때였다. 우리는 곧 더 나은 세상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새로운 사람들이 올라타는 일도 반복됐다. 떠나는 이들을 보내며 가끔은 메마른 작별 인사를 나누었고, 새로 합류한 이들을 맞이하며 벅찬 환영을 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열차가 멈추지 않도록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치 영화 ‘설국열차’의 배경처럼 경제 한파 속에서 조직을 유지하는 일은 점점 더 힘겨운 싸움이 되었다. 때로는 생존조차 위협받는 순간들도 있었다.

10년을 넘긴 조직은 그 자체로 우리를 설명하는 든든한 간판이었다. 시간 속에 축적된 성과와 평판은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처럼, 그 자산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도 커졌다. 우리가 쌓아온 유산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야 한다는 강박은 결정의 순간마다 불안을 키웠다.

최근 비영리 조직의 생애주기 모델을 접하게 됐다. 10년 차가 된 우리 조직은 치열한 여름 같은 성장, 성과가 무르익던 성숙의 단계도 모두 지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제는 ‘쇠퇴(Decline)’ 단계로 접어든 것일까. 조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요즘 말로 ‘긁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가려웠던 곳을 긁어내는 것 같은 묘한 시원함도 있었다.

비영리 조직 생애주기 모델(Nonprofit Lifecycle Model). /소셜임팩트아키텍츠

그동안 하루하루 나아가는 것이 힘들었기에, 우리는 이 과정을 성장이라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씨름했다고 해서, 조직과 구성원의 성장을 만드는 성장통은 아닐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는 눈앞의 생존을 위해 더 중요한 것, 즉 미래의 비전을 만드는 상상력, 기대감, 창조성은 잃어버린 채 순순히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은 아닐까.

◇ 우리에겐 ‘창조적 긴장’이 필요하다

피터 센게는 책 ‘학습하는 조직’ 에서 감정적 긴장(Emotional tension)에 대해 말한다. 그는 조직이 감정적 긴장을 견디는 내성이 낮아질수록 목표가 잠식된다고 지적한다. 결국 불안과 압박이 커질수록 조직은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현재를 유지하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런 긴장 상태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두렵고, 수익으로 즉각 연결되지 않는 구성원의 성장에 투자하는 것이 불안하며, 달성하기 어려운 비전을 바라보는 것이 절망스럽게 느껴진다. 이 같은 방어적인 태도는 결국 조직의 정체를 초래하고, 쇠퇴를 가속화하는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 미묘한 내리막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쉽게 답할 수는 없지만 변화의 출구를 찾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비영리 조직의 생애주기 모델에서 쇠퇴(Decline) 단계에 있는 조직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소멸(Terminal)로 사라지거나, 방향을 바꿔 성장 곡선으로 되돌아가는 ‘턴 어라운드(Turn around)’를 시도하는 것.

피터 센게는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실과 비전 사이의 차이를 직시하고,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창조적 긴장이 작동한다.

그는 또한, ‘진실에 대한 헌신(Commitment to the truth)’이 창조적 긴장을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이란, 현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조직을 이 지점으로 이끌어온 크고 작은 실수들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헌신’은 진실을 찾기 위한 대가다. 진실에 ‘헌신’이 붙는 이유는 그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찾기 위해 헌신이라고 부를 정도의 희생과 노력, 시간과 에너지와 전념이 필요하다. 결국 지속을 꿈꾸는 조직이라면, 다시 성장의 길로 돌이키고 싶다면 이 질문에 삶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지금 우리 조직의 현실을 정확히 보고 있는가?
  •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을 찾기 위해 끝까지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안지혜 진저티프로젝트 디렉터

필자 소개

건강한 변화가 시작되는 곳 (주)진저티프로젝트에서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성수동의 사회혁신가부터 군산, 밀양의 청년까지 섹터와 지역을 넘나들며 교육, 연구, 출판의 형태로 변화를 촉진해 왔습니다. 사회혁신가, 문화기획자는 어떤 조건과 환경 속에서 성장하는지, Z세대와 함께 일하기 위한 조직문화는 무엇인지 연구했습니다. 진저티프로젝트에서 매니저, 팀장에 이어 현재는 디렉터로서, 나의 성장을 넘어, 조직의 성장, 동료의 성장이 일어나는 건강한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과 분투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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