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4>
[인터뷰] 로이스턴 브라간자(Royston Braganza) 인도 그라민 캐피탈 대표
우리의 임팩트 투자는 지향점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가. 지난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아시아를 이끄는 임팩트 투자자들이 한 곳에 모여 토론하고 성찰하게 한 핵심 질문입니다.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가 2016년부터 개최한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는 임팩트 투자 기관, 자산가, 패밀리 오피스, 재단, 금융기관 등 투자자뿐만 아니라 기업가도 함께 모여 임팩트 투자의 글로벌 트렌드를 짚고, 향후 전망을 토론하는 대표적인 임팩트 투자 포럼입니다. 미디어 파트너로 협력한 ‘더나은미래’는 이번 포럼에 참여한 주요 연사 인터뷰를 비롯해 현장의 핵심 장면을 기사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18년 전 노벨 평화상의 주인공은 방글라데시의 한 ‘은행’이었다. 경제적 취약계층에 소규모 사업 자금을 무담보로 빌려줘 ‘빈민의 은행’이라고 불리었던 ‘그라민 은행’이다. 이와 같은 빈곤층을 위한 소액 금융을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finance)’라 부른다.
마이크로파이낸스의 문을 연 사람이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인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라면, 소액금융을 대중화한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2007년 인도에서 ‘그라민 캐피탈’을 만들고, CEO로 조직을 이끈 로이스턴 브라간자(Royston Braganza)다. 그라민 캐피탈은 그라민 은행 모델을 인도로 가져온 금융 자문사다.
로이스턴은 인도 씨티은행에서 8년 넘게 근무하며 소비자 및 기업 금융 업무를 담당하고, 유럽 최대 금융기업인 HSBC에서 수석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중소기업(SME) 사업을 총괄하는 등 글로벌 금융사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는 이러한 경력을 토대로 ‘그라민 캐피탈’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를 ‘대중화’하는 방법을 고심했다. 2007년 인도에는 하루 2달러 이하로 생계를 유지하는 인구가 4억 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당시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을 진행하는 NGO는 120개에 달했으나 대다수가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로이스턴이 택한 방법은 NGO를 영리회사로 전환하고 중앙은행과 협력해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위한 비은행 금융회사 ‘NBFC(Non-Banking Fincancial Company)’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비은행 금융회사란 한국의 ‘제2금융권’처럼 은행법의 규제는 받지 않지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 기관을 의미한다. 인도에서는 은행권과 함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도 중앙은행 준비은행(RBI)에 따르면, 지난해 대출의 약 13.9%가 비은행 금융회사를 통해 이뤄졌다.
그렇게 2017년, 로이스턴은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위한 비은행 금융회사 ‘그라민 임팩트’를 설립했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촉진하고 임팩트 투자를 확산하는 것’이 그라민 임팩트의 미션이라는 로이스턴 브라간자를 지난 18일,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만났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기업은행에서 일하며 은행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특히 대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러다 보니 소규모의 기업이나 빈곤층에도 같은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는 없을지 궁금해졌다.”
―왜 소규모 펀딩에 관심을 가졌나.
“대다수가 1억 달러, 5억 달러 같은 큰 규모의 투자에 관심이 있다. 물론 대규모 풍력 발전소나 태양광 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는 그런 자금이 중요하다. 그러나 농민과 협력하는 소규모 기업이나 소규모 가정용 태양광 설치도 필요하다. 기후위기는 매우 급박하기에,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뿐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도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마이크로파이낸스를 통해 빈곤층과도 협력하고 싶었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어떻게 이뤄지나.
“단어 자체로 설명이 된다. 마이크로(Micro)는 ‘작은’, 파이낸스(Finance)는 ‘금융’을 의미한다. 소규모 농민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이는 그들이 나쁘거나 위험해서가 아니라, 단지 부유하지 않아 담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소액의 대출’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해결책은 사람들을 모아 작은 대출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이크로파이낸스다.”
―사람들을 모은다고.
“다섯 명을 모아 만든 그룹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룹 내에서 상환 문제가 생기면 다른 네 명이 책임을 진다. 하지만, 구성원끼리 신뢰가 두터워 서로를 가족이나 오래된 이웃처럼 여긴다. 그룹 여덟 개가 모이면 하나의 센터가 된다. 이런 식으로 상환 부담을 나눠 서로 돕는 구조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재까지 7000만 명의 고객에게 마이크로파이낸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7년에는 그라민 캐피탈의 자회사 ‘그라민 임팩트’를 창립했다고 들었다.
“그라민 임팩트는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위한 비은행 금융회사 ‘NBFC(Non-Banking Fincancial Company)’의 하나다. SDGs(지속가능한개발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설립했다. 주류 투자자를 끌어들여 임팩트 투자 확산과 SDGs 달성을 위한 자금 조달을 가속화하고 싶다. 그라민 임팩트는 마이크로파이낸스 모델에서 배운 교훈을 적용해 SDGs 채권 10개를 발행해 시범 운영했으며 확장을 앞두고 있다. 기후변화와 식량 안보가 빈곤 문제와도 연결되듯, SDGs는 개별 목표가 아닌 하나의 연결된 목표다. 내 목표는 SDGs와 일치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채권을 발행했나.
“그라민 임팩트가 발행한 채권은 SDG5 여성 권익, SDG8 청년 직업 훈련, SDG2 식량 안보 등과 관련된 분야에 자금을 유입한다. 대표적으로는 1억 루피(한화 16억원) 규모의 ‘LIFE SDG#8 일자리 임팩트 채권’이 있다. 일자리 채권으로 직업 훈련을 제공해 23만8373명의 청년을 교육하고 6만7926개의 고용을 창출했다. 또 1억4000만 루피(한화 23억원) 규모의 ‘SDG#2 농업 임팩트 채권’으로 95만명의 소규모 농부에게 지속가능한 농업 실천을 지원해 36만4800톤의 탄소를 감축할 수 있었다.”
―임팩트 투자 확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먼저 ‘임팩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립해야 한다. 지금은 임팩트의 정의가 사람마다 달라 투자자들이 혼란을 겪는다. 그래서 독립적인 임팩트 측정과 감사가 중요하다. 또 임팩트 투자를 위한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다. 인도는 모든 기업 이익의 2%를 사회적 책임(CSR) 활동에 사용하도록 규정하는 법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해당 금액을 NGO에만 쓰길 원한다. 향후에는 사회적 기업에도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로이스턴에게 ‘당신이 정의하는 임팩트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다름 아닌 행사를 주최한 임팩트 투자사의 이름 “디쓰리 쥬빌리”라고 답했다. 그는 “디쓰리(D3·디딤돌 3음절의 초성 모음)는 한국어의 ‘디딤돌’을 말하며 쥬빌리(Jubilee·희년)는 고대 히브리어로 ‘해방과 안식’을 뜻한다”면서 “디딤돌(Stepping Stones)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고, 성경의 희년에는 이웃, 자연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성공을 축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한 나의 즐거움만이 아닌 환경과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바로 임팩트”라 했다.
제주=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