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5>
[현장] 아시아 패밀리오피스가 말하는 임팩트 투자
우리의 임팩트 투자는 지향점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가. 지난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아시아를 이끄는 임팩트 투자자들이 한 곳에 모여 토론하고 성찰하게 한 핵심 질문입니다.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가 2016년부터 개최한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는 임팩트 투자 기관, 자산가, 패밀리 오피스, 재단, 금융기관 등 투자자뿐만 아니라 기업가도 함께 모여 임팩트 투자의 글로벌 트렌드를 짚고, 향후 전망을 토론하는 대표적인 임팩트 투자 포럼입니다. 미디어 파트너로 협력한 ‘더나은미래’는 이번 포럼에 참여한 주요 연사 인터뷰를 비롯해 현장의 핵심 장면을 기사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한국에는 아직 낯선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는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자산을 관리하는 회사다.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지난달 공개한 패밀리오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에는 약 8030개의 패밀리 오피스가 있다. 이들이 보유한 운용 자산은 3조1000억 달러(한화 4290조 4000억원)에 달한다.
패밀리오피스가 가장 많은 지역은 북미(3180개, 39.6%)이며 그 뒤를 아시아태평양(2290개, 28.5%)과 유럽(2020개, 25.2%)이 잇는다. 보고서에서는 지금까지 북미 패밀리오피스가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으나, 향후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국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에서 급속한 부의 성장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태평양의 패밀리 오피스 수의 2030년 추정 상승치는 40%에 달한다.
최근 패밀리오피스에서 유산상속이 이뤄지면서 ‘차세대 패밀리오피스’의 자산 관리 전략이 재편되고 있다. 이 세대는 이전과는 뭔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바로 ‘임팩트 투자’에 대한 관심이다. 지난 17일, 제주에서 열린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차세대 패밀리오피스의 임팩트 투자’ 이야기를 전한다.
◇ “우리의 목적은 지역사회에서 장기적인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
“할아버지가 창립한 ‘뉴 헤리티지 그룹’을 2004년부터 아버지, 삼촌과 함께 운영하게 됐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인 2016년 패밀리오피스가 만들어졌구요. 사실 패밀리오피스는 ‘세대 간 승계’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가문 전체가 추구하는 목적과 다음 세대의 목적이 일치해야 하거든요. 우리의 비전은 ‘장기적 임팩트를 내는 것’에 있으며, 우리가 생활하는 ‘지역사회에서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이 (타오) 패밀리오피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햄튼 타오(Hampton Tao) C.F. & 낸시 타오 패밀리 오피스(CFNTF) 프로그램 매니저
CFNTF(C.F. & Nancy Tao Family)는 타오 가문의 1대인 C.F. 타오와 낸시 타오(Nancy Tao)의 이름을 따 2016년 설립된 홍콩의 패밀리 오피스다. 1978년 C.F.타오는 중국에서 부동산을 개발하는 ‘뉴 헤리티지 그룹(New Heritage Group)’을 창립했다. 뉴 헤리티지 그룹은 C.F.타오의 아들 리차드(Richard)와 폴(Paul)을 거치며 투자 사업에 집중하게 됐다.
현재 CFNTF는 기후 변화와 빈곤 문제, 식량 안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프로젝트와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홍콩의 고령화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기에, 앞으로는 홍콩의 비영리단체 등과 협력해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전 현재 패밀리오피스에서 블록체인 부분 투자를 맡고 있는데, 이를 임팩트 투자와 접목시키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임팩트’를 무엇으로 정의해야하는지, 그리고 성과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임팩트가 맞는지 항상 고민입니다. 패밀리오피스 입장에서 임팩트 투자 상품의 수익률이 낮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임팩트를 비롯한 비재무적 성과를 정의하고 측정하는 것의 중요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 日 패밀리오피스… “우리 사업이 진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지 알고 싶어”
“대학 졸업 후 NGO에서 일하고 싶어, 일본의 비영리기구(NGO)에서 몇 달간 인턴을 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일본에 사회문제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전엔 해외 이슈만 생각해서 일본 내부에도 이렇게 많은 과제가 놓여있다는 것을 몰랐거든요. 뉴욕으로 유학길을 떠났을 때, 록펠러 필란트로피 자문단(Rockefeller Philanthropy Advisors)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 유코 코시바(Yuko Koshiba) 일본 필란트로피 자문단 대표
유코 코시바(Yuko Koshiba)는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 공공 정책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획득하고, 일본의 사회혁신투자재단(Social Innovation and Investment Foundation·SIIF)에서 일을 시작했다. 2017년 설립된 사회혁신투자재단(SIIF)은 임팩트 지향 기업에 투자하고, 임팩트 평가 관련 사례 연구를 하는 등 일본의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선도하는 재단이다.
2023년에는 SIIF의 필란트로피 자문 사업 부문이 분사해 ‘필란트로피 자문단(Philanthropy Advisors inc.)’이 됐다. 자산가의 가치관을 반영한 맞춤형 필란트로피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자문단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략을 수립하고 임팩트를 측정하는 등 필란트로피 활동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지원한다. 필란트로피 자문단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유코 코시바는 패밀리오피스를 대상으로 필란트로피 자문을 주로 맡고 있다.
최근에는 아동의 건강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A재단의 자문을 맡았다. 재단 창립자의 딸은 설립 35년 차에 대표직을 물려받게 됐는데, 재단의 ‘사업이 정말로 현재 사회에 필요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신임 대표로 5년간 일하면서도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자문을 요청하게 된 것. 이에 필란트로피 자문단은 지난 40년간의 보조금 데이터를 분석해, 정신 건강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진 것을 설명했다. A재단은 ‘육체적 건강과 함께 마음 건강에도 이바지하겠다’는 사명을 다시금 수립하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신규 프로젝트도 시작하게 됐다.
“현재 일본의 필란트로피 분야에서는 임팩트 투자에 대한 열정이 뜨겁습니다. 특히 패밀리오피스의 경우 지난 몇십 년간 해온 일이 진짜 필요한 일인지 고민하다 자문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재무상태나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한 뒤, 사명과 비전까지 개선해 주기도 합니다. 임팩트 투자를 시작하기 전, 해당 패밀리오피스가 생각하는 ‘임팩트’가 어떤 의미인지 확인하고,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지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임팩트 투자 활성화에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해”
“교회에서 봉사활동으로 멕시코 교도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함께 간 친구의 삼촌을 우연히 만났어요. 그 삼촌은 ‘마약왕’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많은 범죄를 저지른 수감자였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어머니의 편지를 전하자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순간 인간은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고, 형제라는 것을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어요.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요. 태국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도 있는데,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결국 ‘일자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로버트 김(Robert Kim) 제레미 린 패밀리오피스(JLIN LLC) 상무이사 겸 CFO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 ‘제레미 린’의 패밀리오피스(JLIN LLC)의 상무이사 겸 CFO인 로버트 김(Robert Kim)은 청년 시절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임팩트 투자자’로서의 철학을 가지게 됐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며 사회문제와 자선활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대 후반부터 임팩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기회를 얻어 벤처 투자자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의 관심은 패밀리오피스에서 실제로 ‘임팩트 투자’를 실행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임팩트 중심 패밀리오피스인 ‘캡록(Caprock)’에서 수석 고객 고문으로 8년간 근무하며 100여 개의 임팩트 투자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2022년 제레미 린의 패밀리오피스에 합류했다.
“미국이든 아시아든 임팩트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해요. 임팩트에 대한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진 뒤 신뢰가 생겨야, 임팩트 투자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 생태계에서도 친밀한 관계와 커뮤니티가 중요한데, 패밀리오피스는 이런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가족 단위로 이루어진 아시아의 패밀리오피스는 그 자체로 이미 공동체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자원이 들지 않는 강점이 있습니다.”
제주=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