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5일(금)

“혁신과 포용, 두 축이 필요하다”…한국 임팩트 투자 생태계의 빈틈을 짚다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10·끝>
[현장] 한국 임팩트 투자의 다음 단계는?

우리의 임팩트 투자는 지향점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가. 지난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아시아를 이끄는 임팩트 투자자들이 한 곳에 모여 토론하고 성찰하게 한 핵심 질문입니다.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가 2016년부터 개최한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는 임팩트 투자 기관, 자산가, 패밀리 오피스, 재단, 금융기관 등 투자자뿐만 아니라 기업가도 함께 모여 임팩트 투자의 글로벌 트렌드를 짚고, 향후 전망을 토론하는 대표적인 임팩트 투자 포럼입니다. 미디어 파트너로 협력한 ‘더나은미래’는 이번 포럼에 참여한 주요 연사 인터뷰를 비롯해 현장의 핵심 장면을 기사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글로벌 임팩트 투자 네트워크(GIIN)의 지난달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전 세계 3907개 이상의 조직이 총 1조 5710억 달러(한화 약 2100조 원) 규모의 임팩트 투자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 이후 연평균 21%의 성장률을 기록한 수치다.

한국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2021년 한국 임팩트 투자 시장 규모는 약 7300억 원에 달했으며, 이는 2년 전과 비교해 약 2배 성장한 것이다. 특히 2018년에는 모태펀드와 성장사다리펀드가 약 3800억 원을 출자해 전체 임팩트 펀드 결성액의 53%를 차지했다. 공공 자본이 결합된 임팩트 펀드의 졸업을 2~4년 가량 앞둔 현재, 한국 임팩트 투자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는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의 사회로 패널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 이덕준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대표가 참여해 논의를 펼쳤다. 4인의 대표들은 한국 임팩트 투자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싼 묵직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난달 18일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왼쪽부터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 이덕준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대표가 패널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허재형=서울 성수동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지난 10년간 임팩트 커뮤니티를 만들어왔고, 임팩트 생태계 내 여러 주체들과의 연결을 만들어왔다. 최근 2년 전부터는 ‘필란트로피 자본이 사회혁신이나 근본적이 임팩트를 만들고자 하는 조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고민을 바탕으로 몇 가지 펀드를 만들고 있다.

도현명=15년 전에 임팩트 스타트업을 키우고자 사업을 시작했지만, 한국에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2019년이 되어서야 펀드도 만들고, 극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5년 차가 되었는데,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주제들은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뀌긴 하지만, 대부분 포트폴리오는 한국 기업이다. 지금까지 한 70여 개 정도 투자를 했는데, 3년 전부터 베트남에서 투자도 시작했다. 특히 요즘에는 대기업이 ESG 때문에 환경 분야 관심이 높아져서 이와 관련된 기업이 절반 정도다. 초창기부터 투자 기관으로서 임팩트 관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구소에서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제현주=2017년부터 투자를 시작해서 만 7년을 지나고 있다. 우리 회사는 설립 초기부터 ‘자본 시장과 임팩트 메이커를 잇는 다리를 짓는다’는 미션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자본이 움직이는 방식과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임팩트 메이커에게 흘러갈 수 있는 자본이 더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중재자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기후변화, 웰니스(Wellness), 교육, 미래의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솔루션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60% 정도가 기후테크 영역에 투자되고 있다.

이덕준=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는 2011년에 설립됐는데, 정관에 ‘임팩트 투자’를 목적으로 명시했다. 처음 5년 정도는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투자 클럽을 열고, 소셜벤처에 투자를 했다. 실리콘밸리로 이주해 작은 규모로 펀드를 운영하다가, 2018년부터는 한국에 돌아와서 벤처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기후나 환경 분야가 3분의 2 정도 차지하고, 헬스케어나 주거(Housing) 관련 솔루션에도 투자한다.

지난달 18일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발언하는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의 모습.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허재형=본격적인 질문을 던지겠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임팩트 투자가 빠르게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국의 임팩트 투자 생태계 성장 요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도현명=15년 전 창업을 시작한 기업가로서, 소셜벤처 창업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 때만 하더라도 아무도 ‘소셜벤처’가 무엇인지 몰라서 같이 창업을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3~4년이 흐르다가 ‘소셜벤처’, ‘임팩트 스타트업’을 창업하겠다는 기업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되게 독특하지만, 의미있는 일에 자신의 삶을 투자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투자 영역에서의 드라이브도 중요했지만, 일반 창업가 중 자신의 일이 ‘사회적 가치’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생태계가 커졌다. 특히 환경이라는 테마가 부상한 것도 큰 성장 요인이다.

제현주=자본시장 측면에서 짚어보자면, 2018년, 2019년 정부에서 임팩트 투자 혹은 사회 투자라는 이름으로 공적 자금이 VC 시장으로 많이 유입됐고, 덕분에 VC 중심의 임팩트 투자 시장이 굉장히 빠르게 성장했다. 사실 그 시기는 글로벌 임팩트 투자 시장도 주류화되고 확장되던 시점과 일치한다. 2021년 전후로는 ESG 키워드가 급부상하면서 비즈니스의 ‘비재무적 측면’이 중요해졌다. 특히 기후 아젠다는 많은 금융기관과 기업이 현실적인 리스크와 기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기후 테마에 대한 투자처 발굴 측면에서 임팩트 투자에도 자금이 많이 들어오게 된 계기라고 본다.

이덕준=두 분의 의견에 동의한다. 임팩트 투자는 스펙트럼이 있다. 임팩트 투자는 정반합의 ‘반’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금융투자가 재무 가치만 보니, 임팩트 투자를 통해서 통합적인 ‘합’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모태펀드가 시장에서 임팩트 투자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규모가 커지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진짜’ 임팩트 자금이 얼마나 형성되고 있는지에 대한 측면에서는 다른 평가가 있다.

이덕준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대표가 지난달 18일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발언하고 있다.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허재형=창업가뿐만 아니라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는 이야기가 많다. 최근 들어서 더 주목하고 있는 아이디어라든지 고민 지점이 있다면.

이덕준=10년 이상 임팩트 투자를 하고 있는데, 작동되는 부분과, 작동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자면, 2018년에 임팩트 벤처 펀드를 하나 만들었는데, 투자한 기업 중에서는 너무나도 명확한 미션을 가지고 잘 성장한 기업도 있다. 1~2년 사이에 IPO를 갈만한 회사들도 몇 개 보인다. 근데 다른 VC와 함께 투자자로 참여하다보니 사회문제를 푸는 것이 한계가 있다. 다른 방식의 임팩트 투자도 고려돼야 한다. 사실 지분 투자는 리스크도 많고, 접근성도 떨어지지 않나. 그리고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투자한 회사 중 몇 곳은 힘들어서 쓰러지기도 했다. 특히 아이돌봄 서비스나 저소득층 고객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은 초기부터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실제 투자 사이클에서 버티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 대응하는 협력 인프라가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제현주=일반적으로 펀드나 투자의 사이클을 8년에서 10년 정도라고 봤을 때, 그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최대 4년 정도가 남아있는 시점이다. 한 사이클이 끝났을 때, 우리가 시장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이에 대해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2022년부터 자본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들며, 임팩트 투자자뿐만 아니라 모든 펀드 매니저들이 유동성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제는 이 ‘뉴노멀’에 적응도 해야하는 시점이고, 자본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임팩트 투자자로서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기관 입장에서는 한 사이클이 긴 호흡이기 때문에, 이 사이클이 끝나야만 성과를 증명하고 다음 성장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다른 자산 클래스로의 다변화를 시도하고, 임팩트 투자의 한 사이클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성장 요인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고있다.

허재형=두 분 다 임팩트 투자가 다른 자산군으로 확장되고 있지 못하다는 부분을 짚어주셨다. 이젠 미래를 이야기해보자. 기후위기, 인구구조 변화 등을 포함해 한국 사회도 여러 이슈에 둘러싸여 있다. 임팩트 투자자로서 앞으로 어떤 아젠다를 더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다른 이해관계자와의 협업은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 궁금하다.

도현명=최근 베트남 지역 투자를 집행하면서, 한국의 투자 관련 금융 규제도 복잡한데 한국 펀드로 베트남에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한국은 금융 규제가 굉장히 강한 편이다. 그래서 결국 여러 조직의 협력으로만 풀 수 밖에 없더라. 우리가 다른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등과 협업을 하는 이유다. 그리고 임팩트 투자 영역에서도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근데 사실상 임팩트 투자 생태계로 자본이 유입되는 통로는 여전히 좁다. 이제는 스타트업의 지분 투자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등 다양한 투자 방식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지난달 18일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발언하는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의 모습.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제현주=결국 문제의 핵심은 ‘기후변화’와 ‘인구 구조의 변화’에 있다. 이 두 가지 큰 과제를 자본시장의 힘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한 축은 ‘혁신성’이고 다른 한 축은 ‘포용적 기반’일 것이다. 그런데 벤처캐피털(VC)이나 지분 투자 형태의 자본은 ‘혁신성’ 측면에서는 기여할 수 있지만, ‘포용적 기반’을 확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재 한국의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서는 포용적 자본의 부재가 가장 큰 공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자산 소유주들이 얼마나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지가 중요하다. 동시에 한국의 금융 규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창의적인 투자 방식이나 혼합 금융 구조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정책 입안자들이 이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임팩트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명확한 언어로 정의하고, 이를 사회와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이덕준=대중에게 친숙한 언어로 문제를 설명하고 접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한국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을 둘러싼 시위와 갈등이 커졌다. 하지만 이 문제를 ‘장애인만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모빌리티 산업 전체의 혁신으로 접근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토도웍스’라는 기업은 동력 보조장치가 탑재된 수동 휠체어를 개발했다. 중요한 것은 이 솔루션을 어떻게 모빌리티 산업의 혁신 프레임에 맞춰 확장하고, 사회적 변화로 연결할 것인가다. 또 다른 예로 사회혁신기업 ‘더함’은 단순한 부동산 개발을 넘어,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한 1000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입주 4년 만에 이웃 간의 사회적 자본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결국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일은 단독으로 이뤄질 수 없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역할과 금융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확한 소통 언어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사전 논의 과정에서 임팩트 투자자들의 구체적인 실천 과제도 도출됐다. 첫째, 국내 임팩트 투자 관련 정보와 데이터를 통합하고 공유하자는 것. 둘째, 한국의 임팩트 투자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생태계 구축을 위한 주요 의제를 논의하며 공동의 실천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토론자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임팩트 투자 생태계 성장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협력 의지를 다졌다.

제주=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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