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2>
[인터뷰] 맥신 베다(Maxine Bedat) 美 신표준연구소 대표
우리의 임팩트 투자는 지향점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가. 지난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아시아를 이끄는 임팩트 투자자들이 한 곳에 모여 토론하고 성찰하게 한 핵심 질문입니다.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가 2016년부터 개최한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는 임팩트 투자 기관, 자산가, 패밀리 오피스, 재단, 금융기관 등 투자자뿐만 아니라 기업가도 함께 모여 임팩트 투자의 글로벌 트렌드를 짚고, 향후 전망을 토론하는 대표적인 임팩트 투자 포럼입니다. 미디어 파트너로 협력한 ‘더나은미래’는 이번 포럼에 참여한 주요 연사 인터뷰를 비롯해 현장의 핵심 장면을 기사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누구나 옷장에 청바지 한 벌쯤은 있다. 그러나 이 청바지 한 벌이 탄생하고 버려지기까지의 연대기를 생각해 본 적은 드물 것이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한 연구소인 미국 ‘신표준연구소(New Standard Institute)’의 설립자 맥신 베다(Maxine Bedat)는 청바지의 ‘섬유-방직-재단-유통-구매-폐기’ 전 과정을 추적하며, 패션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2019년 설립된 연구소는 다양한 산업 분야의 30여 개 기업, 패션 브랜드 및 NGO의 전략 파트너로 협업하고 있다. 연구소는 지속가능한 패션 모범 사례와 그린워싱 사례를 연구해 누리집에 모아둔다. 최근에는 패션 업계에 환경 및 노동 변화를 촉구하는 ‘뉴욕 패션 법’ 지지 서명을 받는 등 입법 운동도 펼치고 있다.
맥신 베다는 컬럼비아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UN 산하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법률 담당관으로 일하며 국제법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2013년에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지향하는 패션 전자상거래 플랫폼(Zady)를 공동 설립했고, 이 회사는 미국 비즈니스 전문지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로부터 ‘소매 업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그의 저서 ‘지속 불가능한 패션 산업에 이의를 제기합니다(Unraveled: The Life and Death of a Garment)’가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그는 지속가능성이 단순한 마케팅 트렌드가 아니라, 패션 산업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변화라고 강조하며, 브랜드와 소비자가 진정한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7일, 제주에서 열린 ‘2024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맥신 베다와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책과 연구소에서 의류 생산 과정 별로 ‘지속가능성’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나.
“패션 산업이 배출하는 탄소는 전 세계의 약 10%로, 항공과 해운 산업을 합한 것보다 더 많다. 먼저 의류는 ‘섬유’에서 시작한다. 면화 생산을 위해서는 합성 화학 비료와 제초제를 통해 토양의 비옥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환경뿐 아니라 산업 종사자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섬유가 원단이 되는 ‘방직’ 공정에서는 많은 양의 열이 소비된다. 이 공정이 전체 패션업계 탄소발자국의 76%를 차지할 정도로 집약도가 높다. 원단 생산지에 직접 가보니 주변의 강은 오염되어 있었고, 저비용 생산 경쟁으로 인해 환경과 노동권은 뒷전이었다.”
―소위 ‘패스트 패션’ 등으로 인해 열악해지는 노동 환경의 문제를 말하는 것인가.
“수출의 80%가 의류 산업인 방글라데시의 봉제 공장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의 노동자는 꾸준히 잔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월 100달러라는 저임금을 받았다. 그는 ‘생각할 시간은 없다’며 ‘실수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의류 공장 노동자는 ‘효율성의 노예’가 되어 기계처럼 빠른 속도로 작업을 하는 데 매여있다.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되지 않는다. 덧붙여 ‘폐기’ 과정도 문제다. 미국에서는 버리는 의류의 80%가 폐기된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의류는 결국 매립지로 가게 되고, 옷을 태울 때 발생하는 연기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구조다. 많은 에너지와 인력이 들어간 엄청난 양의 의류 쓰레기가 지구를 해치기까지 하는 것이다.”
―정책적인 해결책을 마련한다고 했는데,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을 만들기 위해 어떤 규제와 법안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매년 1억 벌 이상의 의류가 생산되고 있다. 생산 단계에서 여러 해결책이 개발되고 있음에도 패션 산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모두가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해도, 수익이 우선시되는 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신표준연구소는 파타고니아를 비롯한 패션 회사 및 환경 단체와 함께 뉴욕주 의회에 ‘뉴욕 패션 법(New York Fashion Act)’을 제출했다.”
―‘뉴욕 패션 법’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공유해준다면.
“법안이 통과되면 글로벌 매출이 1억 달러 이상인 패션 회사는 매년 자사 제품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담은 실사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환경 및 노동 기준 준수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기업은 파리 협정에 맞춰 공급망에서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며, 화학 처리가 많은 ‘습식 가공’ 부문에서 화학 물질을 관리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 보호 조치도 동반되어야 한다. 내년 1월부터 뉴욕주의 입법 과정이 진행되는데, 이 법안이 통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패션 업계의 가치사슬에서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졌으나, 대안이 되는 사례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예를 들어,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잡초가 있는 곳을 확인할 수 있다. 합성 화학 비료나 제초제를 아예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AI 기술을 통해 최소한의 양만 사용하는 것이다. 탄소배출 집약도가 높은 섬유 과정에서도 혁신은 진행 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건조 과정에서 사용하는 보일러의 원료가 석탄이라는 것인데, 최근에는 전기보일러가 등장하고 있다. 또한 염색 과정에서도 저온 염색 기술이 개발됐다. 섬유를 재활용하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실제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섬유가 원료에서 직물로 바뀌는 과정에서 가장 큰 탄소발자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해 개인이 행동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을 제안하고 싶은가.
“현재는 소비자가 ‘그린워싱’을 구별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자사의 탄소 배출이나 사회적 영향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옷을 구매할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그 옷을 자주 입을 것인지, 너무 자주 새로운 옷을 사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옷이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며 옷장을 자주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옷을 구매할 때 가장 큰 결정 요소는 ‘그 옷을 많이 입을 것인가’다.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항상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웃음).”
제주=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