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2000조 돌파했지만…동력 잃은 ESG금융

국내 ESG금융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2000조 원을 넘어섰다. 외형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시장의 체력은 오히려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민간 부문이 5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하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시장 위축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지난 23일 ‘2024 한국 ESG금융 백서’를 발간하고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국내 167개 금융기관을 조사·분석한 결과, 2024년 말 기준 ESG금융 규모는 2012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대비 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성장세는 눈에 띄게 둔화했다. 2024년 연간 증가율은 8.9%에 그쳐 최근 수년간 유지해 온 20~30%대 성장 흐름에서 크게 내려앉았다. 고금리 기조와 수익성 악화의 영향 속에 민간 부문은 전년 대비 0.6% 감소하며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은 “금융산업은 규제와 정책에 극히 민감하다”며 “이전 정부의 소극적인 ESG 정책 기조가 시장 활력을 떨어뜨린 핵심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의 일관된 정책 신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S(사회)’에 편중된 ESG…기후위기 대응 ‘E(환경)’는 17% 불과

영역별 편중도 뚜렷했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분석에서 S(사회) 부문이 763조7000억 원으로 전체의 72.3%를 차지했다. 반면 기후위기 대응과 직결되는 E(환경) 부문은 180조5000억 원, 17.1%에 머물렀다. 통합 영역은 107조 원(10.1%), G(거버넌스)는 4조9000억 원(0.5%)에 그쳤다.

사회 부문 비중이 높은 배경에는 주택금융공사 등 정책성 대출이 있다. 분류가 비교적 명확하고 리스크가 낮은 금융상품이 ESG 실적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의 ‘안전자산 선호’가 기후금융 확산을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형별로는 ESG투자가 945조5000억 원(47%)으로 가장 많았고, ESG대출이 753조 원(37.4%)으로 뒤를 이었다. ESG채권은 247조5000억 원(12.3%), ESG금융상품은 66조6000억 원(3.3%) 수준이었다. 여전히 투자와 여신 중심의 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환경 부문 내부에서도 대출 편중 현상이 두드러졌다. 전체 환경 금융 중 대출 비중이 61.4%(110조8000억 원)에 달했다. 재생에너지 금융상품을 보유한 기관은 29곳에 불과했다. 금융기관들은 재생에너지 전용 상품 개발의 최대 리스크로 ‘정책 및 규제의 불확실성(29.4%)’을 꼽았다.

◇ 리스크 피하는 금융권…’전환금융’ 쪼그라들고 ‘그린워싱’ 논란은 여전

고탄소 산업의 전환을 지원하는 ‘전환금융’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철강·건설 등 탄소집약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려면 장기·고위험·대규모 사업을 포괄할 금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박남영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책임연구원은 “고탄소 산업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자금 공급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금리를 조정하는 지속가능연계대출(SLL)은 전환의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지만, 2024년 잔액은 4조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6% 급감했다. 보고서는 금융권이 리스크 관리 비용을 이유로 전환금융을 기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국내 금융기관들은 총 3조8000억 원 규모의 LNG 금융을 ESG금융으로 분류해 보고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서 LNG를 과도기적 에너지원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이 반영된 결과다. 다만 이를 둘러싼 적절성 논란과 ‘그린워싱’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보고서는 녹색금융과 전환금융을 구분해 공시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자금 부풀리기 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ESG 공시 체계의 신뢰성이야말로 시장 활성화의 전제 조건이라는 것이다.

김영호 이사장은 “전환금융과 스튜어드십 코드 역시 모두 ESG 정보에 기반한다”며 “시장 규율을 강조하면서 공시 의무화에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민병덕 의원도 “지속가능성 정보는 더 이상 비재무적 요소에 머물지 않고 금융 의사결정과 투자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신뢰성 있고 비교 가능한 공시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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