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사회공헌을 넘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

시스코는 지난 25년 동안 180여 나라에서 1만개 넘는 IT교육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무려 17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료로 교육받았다. 특히 저개발국가에 폭넓은 IT 기술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이 활동은 시스코가 진출하는 지역의 전문인력을 키워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영국의 유통업체 테스코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의외의 선택을 했다. 빈민가에 신선한 야채와 음식을 파는 매장을 연 것이다. 그동안 빈민가에는 패스트푸드 매장은 많지만 신선식품을 파는 마트는 없었다. ‘음식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불린 이 매장들을 통해 테스코는 빈민 지역의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면서 비즈니스의 기회도 만들었다. 신선한 과일로 빈곤과 폭력을 몰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는 기업의 사회공헌을 이야기하지만 외국에서는 지역사회 참여(Community Engagement)를 이야기한다. 번역하면 기업과 지역사회의 ‘관계 맺기’다. 지역사회는 기업과 어떤 관계일까? 기업이 지역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기업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업은 지역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사회공헌론’은 전통적이고 오래된 개념이다. 기업도 사회 안에 있으니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자선적이며 윤리적인 접근법이다. 솔직하게는 사회적 영향보다는 사업적 이익이 우선이다. 홍보나 마케팅의 목적이 크다. 기부금을 전달하거나 연탄을 나른 뒤 찍는 사진이 더 중요하다. 당연히 사회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회공헌은 축소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사회공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이다. 기업도 시민으로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의무’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사회공헌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혁신의 목격자] 10년을 돌아보니 보이는 세 가지 변화

한 달 간의 안식휴가를 다녀왔다. 대표가 된 지 10년만에 처음이었다. 10년 전 MYSC 매출은 2억2000만원을 간신히 넘겼고, 영업손실 3억원을 기록했다. 설립 이후 자본전액잠식을 경험하면서 영리법인을 폐업하고 비영리법인으로의 전환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지금은 매출 100억원을 넘어서며 투자 운용자산 600억원 이상, 130개 이상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10년전 임팩트투자는 누적 4건이 고작이었다. 국내 최초의 사회혁신 전문 컨설팅·임팩트투자사를 표방했던 MYSC에게 당시는 무척이나 곤고한 시기였다. 사회혁신과 임팩트투자는 과연 언제 지속가능해질까란 질문은 그 당시 사치스러운 질문이었다. 한국에서 사회혁신과 임팩트투자는 과연 지속가능할까란 질문이 진실에 가까웠다. 안식휴가는 1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에서 다시 그 질문을 마주해볼 수 있는 여유였다. 그때로부터 지금은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까? 크게 세 가지의 변화를 개인적으로 반추해봤다. 첫째, ‘임팩트’라는 영역이 경제계와 자본시장의 메인 스트림에 포함됐다. 과거에 ‘임팩트’는 영리와 비영리 사이에 있는 무언가, 또는 두 섹터의 융합이라는 관점만으로도 충돌되는 버거운 논의들이 지배했다. ‘MYSC는 비영리법인일 줄 알았다’고 말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런 관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2016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소셜 벤처링’(social venturing)이란 2박 3일 워크숍에 참여했을 때다. 참가비만 1만 달러가 넘었지만 초대를 받아 참여한 이곳에서 나는 응당 ‘소셜’이란 단어를 보고 사회적기업가들 또는 대기업의 사회공헌 담당자들이 모일 것으로 생각했다. 참가자들은 놀랍게도 바클레이스, 비자, 마스터카드 등 다국적 대기업의 신사업 또는 혁심 담당임원들이었다. 이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 모태펀드에 ‘임팩트투자’ 출자 계획이 있는지 문의한 적이 있었다. 담당자는 짧게 회사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청년 창업가 육성의 조건

지난해 6월 전국에서 일제히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거의 모든 지역의 후보자들이 ‘청년 창업 지원’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왜 그랬을까. 지역경제 활성화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일까. 과거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공약으로 대기업 유치를 약속했다. 지금은 이런 공약이 먹히지 않는다. 수도권 규제 완화로 대기업이 수도권으로 이전하고 임금 인상과 강화된 노동법 때문에 지방에 있던 공장이 폐쇄되거나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를 막을 수 없다. 현실 인식이 부족한 일부 정치인들을 제외하고 이 정도는 이미 학습됐다. 그다음으로는 산업단지 조성 공약이 유행했다. 그러나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 지방산업단지 중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 역시 이미 학습이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카드가 청년 창업 육성이 됐다. 이 카드는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스타트업이 창출하는 일자리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이제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아닌 스타트업이 됐다. 문제는 지역 창업을 활성화하거나 스타트업을 지역에 유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창업과 취업의 기회를 찾아 지역을 떠나고 있지 않은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지금까지 1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중 90%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수도권의 편리함과 효율성에 익숙해진 창업가들을 어떻게 지역으로 끌어내린다는 말인가. 해법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변화는 서울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에 최초의 창업 붐이 일었을 때부터 스타트업은 투자사들이 자리 잡은 강남 테헤란로에 몰려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멘토와 선무당, 그 균열과 균형 사이

“점을 AS 받는다고요?” 저녁을 먹으러 가던 택시 안에서 선배는 잠깐 점집에 들르자고 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점을 보라는 호객행위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내 생시(生時)를 풀던 역술가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를 하면 대성할 팔자라 호언장담했다. 난생처음 삥을 이렇게 뜯기는구나 허무한 쓰나미가 스멀스멀 몰려왔다. 드로잉은커녕 내가 쓴 글씨도 못 알아보는 천하제일 악필이 디자이너라니요. 그것도 웨딩? 창업한 이래 이런 선무당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시니어 인턴 지원 사업으로 모신 선생님은 어느 주말 내비게이션도 길을 잃는 논두렁 밭두렁 사이의 전원주택으로 나를 불렀다. 여기서 집을 짓고 산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텃세가 심하다는 정착기가 1절. 앞으로 농업이 유망하니 여기 들어와 농사를 지으라는 충고가 2절. 지역에서 자리 잡으려면 일자리 지원금을 받아 “날 고용하세요!”라는 3절에 들고 간 샤인머스캣 보따리를 풀던 손이 머쓱해졌다.  현장 실사를 겸해 사무실에 찾아온 한 컨설턴트는 두 시간 동안 딸 자랑만 늘어놓았다. “정 대표가 딸 같아서”라는 코멘트에 코털까지 쭈뼛 소름이 돋아 재채기를 쏟으며 서둘러 배웅했다. 처음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배정된 멘토는 초면에 “이거 진짜 할 거예요?” 물으며 다리를 삐딱하게 꼬았다. 덕분에 내가 누군가의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심혈을 기울여 몇 달 만에 만든 시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어떤 심사위원은 “애 엄마가 운동화 질끈 묶고 달릴 생각을 해야지. 또각거리면서 하이힐 신고 다니는 꼴인데?”라며 코웃음 쳤다.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는 역량을 보여드리려 몇 달을 밤새워 만들었다”며 애써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소비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20여 년 전 회사 동료가 비건 선언을 했다. 그때는 같이 갈 식당이 없었다. 식당에 가면 그는 밥과 야채 반찬만 먹어야 했다. 이제는 비건이 유행이다. 비건 식당뿐 아니라 비건 빵집, 비건 아이스크림 가게도 등장했다. 일반 식당도 비건 메뉴를 내놓고 있다. 우유와 버터가 없는 빵과 아이스크림. 그런데 맛도 좋다. 몇 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에 어느 군인이 진정을 제기했다. 군 식당에서 비건을 고려하지 않아 차별받고 있다는 취지였다. 흥미로운 이 사건은 국방부가 비건 메뉴를 개발하겠다고 답해 종결됐다. 우리나라 채식 인구는 약 250만명으로 전체의 3~4%로 추산된다. 관련 사업은 크게 성장하고 있다. 한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 채식을 하면 1년에 15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채식을 하면 2050년까지 매년 약 80억t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무려 22%다. 소비가 환경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난 비건이 될 자신은 없다.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를 먹지 않는 ‘간헐적 비건’이 될 용의는 있다. 소비자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다. 소비자가 없으면 기업은 존립할 수 없다. 기업의 이익은 모두 소비자에게서 나온다. 그럼 소비자가 기업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나쁜 기업에 혼쭐을 내고 착한 기업에 돈쭐을 내서 기업을 바꿀 수 있을까? ‘개념있는 소비’를 통해 환경을 살리고 기업이 인권을 존중할 수 있도록 추동할

[진실의 방] 이상한 어른

D는 대구에 있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엄마 아빠 없는 저런 애랑은 친구 하면 안 돼. 어른들이 D를 가리키며 말했다. 중학생 때는 친구와 길을 걷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D를 향해 돌진했다. 급하게 피하다가 길바닥에 쓰러졌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친구 엄마였다.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못마땅해 차로 위협한 것이다. 그때부터 D는 어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른이 말을 걸어오면 무조건 욕을 했다. 무시하는 말을 들으면 주먹을 날렸다. 보육원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치고 싸움을 하다가 재판을 받았다. 소년원에만 세 번을 들락거렸다.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을 만난 건 열아홉 살 때다. 서울소년원을 출소한 직후였다. 윤 총장이 말했다. 이제부터 날 ‘아버지’라고 불러라. 소년원에 세 번 다녀왔다고 하면 다들 사람 취급도 안 하는데 아버지는 무슨. 참 이상한 어른이네. D가 차갑게 굴어도 윤 총장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잘 지내나, 어려운 거 없나, 아버지가 도와줄게 하며 챙겼다. 1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아버지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어느 날 윤 총장이 물었다. 아버지가 소원이 하나 있는데 고등학교에 다녀보면 안 되겠나?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건 아버지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서였다. 졸업장을 받던 날 아버지는 꽃다발을 사 들고 D를 찾아왔다. 기념으로 같이 짜장면을 먹었다. 이제 너도 스물네 살이니까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한다. 윤 총장의 말에 D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 이제 여섯 살이에요. 아버지 만난 게 6년 전이니까 여섯

김정빈 수퍼빈 대표
[쓰레기공장 이야기] 시장의 원리에서 답을 찾다

지난 20일 세계은행 관계자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아이엠팩토리를 방문했습니다. 아이엠팩토리는 폐페트병으로 ‘r-Flake’라는 재활용 소재를 만드는 수퍼빈 공장입니다. 세계은행은 UN 산하의 국제금융기구로 전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사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날 방문한 에너지환경 부문 선임담당관인 주누 슈레스타 박사는 지난 수년간 아시아 지역 내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장 방문은 4층에 있는 ‘공존의 공간’에서 시작해 한 층씩 아래로 내려가면서 진행됐습니다. 공존의 공간에는 업사이클 아티스트들이 기부한 강아지 조각, 전등 등이 있습니다. 일부 마감재는 페플라스틱을 사용했죠. 따로 마련된 유기동물 임시보호소도 운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슈레스타 박사는 흔히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재활용 공장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재활용이라는 행위는 결국 문화와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이죠. 3층에서는 순환경제에 대한 콘텐츠를 소개했습니다. 순환자원회수기 ‘네프론’에 페트병과 빈캔을 넣어서 포인트를 적립하는 체험도 진행했습니다. 2층은 통제실입니다. 아래 1층에 있는 거대한 재활용 설비들이 공장 내 서버로 연결돼 생산 현장의 다양한 데이터를 추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활용 소재 생산에 따라 얼마나 많은 탄소배출량이 감축되는지, 또 이렇게 생산된 재활용 소재들이 향후 포장재 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전기전자·섬유 산업 등에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게 목표였다면 실현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재활용이 하나의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 다른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조건에 부합해야 하니까요. 우선은 PET와 같은 특정 플라스틱 소재를 결정하고 작은 범위에서부터 재활용의 새로운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산업보조금은 살리고, 사회보조금은 죽이고?

얼마 전 대통령실은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내년도 보조금 예산을 5000억원 이상 삭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에 내년 예산안을 다시 작성할 것을 요구했고, 재검토 과정에서 국고보조금 사업이 대거 삭감·폐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고보조금은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올해 국고보조금 규모는 약 102조원이다. 이 중 81%가 지방자치단체, 19%가 민간에 교부된다. 민간보조금은 개인, 영리법인, 개인사업자, 공공기관·학교, 비영리법인에 교부되는데, 분야별로 살펴보면 산업·중소기업·에너지 22%, 농림수산 20%, 문화·관광 18%, 교통·물류 9%, 사회복지 8% 등이다. 대부분이 산업과 농수산, 관광 분야에 지출되고 비영리단체들이 주로 활동하는 분야인 사회복지는 8%에 불과하다. 지난해 사회복지 분야 예산 비율은 16%였는데 1년 새 절반으로 줄었다.  대통령실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2년도 비영리민간단체(이하 비영리조직) 국고보조금 규모는 3조4452억원(직접지원과 매칭펀드 국비)으로, 전체 민간보조금 22조8800억원의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85%가 영리기업과 개인, 공공기관 등에 교부됐지만, 15%의 비영리조직에 대해 집중 감사가 진행된 것이다. 그리고 감사 결과를 근거로 비영리에 대한 예산 축소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보조사업자 중 주식회사 감사에서 부정수급 사례가 발견됐다면서 향후 주식회사에 대한 보조금을 감축하겠다는 꼴이다. 이해 가능한 정책인가. 보조사업자의 도덕적 해이, 부정한 집행이 문제라면 개인, 영리, 비영리 등 구별 없이 위반 사례를 조사하고 문제 단체를 강력히 제재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실은 지난 정부에서 민간 단체 보조금이 급증했다며 비영리조직에 대한 특혜가 있었던 것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이 기간 민간보조금뿐 아니라 전체 국고보조금이 66조9000억원(2018년)에서 102조원(2022년)으로 증가했다. 이 중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 산산조각이 나다

“더 이상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자 중 하나인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지난달 25일 아스펜 아이디어스 페스티벌 행사에서 ‘ESG’라는 용어가 정치적으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쓰이는 등 오용되는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는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핑크가 보여준 행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많은 화제가 됐다. 실제 핑크는 2018년 블랙록의 연차보고서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성과를 내며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개적으로 ESG를 지지한 이후, 계속해서 기업에 ESG 이슈를 고려한 경영을 강조해 왔다. 나아가 2021년에는 기업들에 비즈니스 모델이 넷제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계획을 공개하도록 요청했다. 덕분에 작년 기준으로 미국 대기업의 82%가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등 많은 기업이 RE100과 같은 이니셔티브에 가입하며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감축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핑크의 이번 발언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SG를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의 어느 의원은 최근 몇 년간 자산운용사가 좌파의 압력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주장하며, ESG 추세를 멈추려는 노력의 승리라고 했다. 또한 보수 성향의 주주들은 올 1월부터 5월 말까지 ESG를 반대하는 내용의 결의가 최근 3년간 400% 이상 증가하는 실적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전히 ESG에 관심을 보이는 곳도 많다. 한국의 경우 ESG 성과를 내는 기업에 금리를 우대하는 정책이 운영되고 있고, ESG 역량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공공과 대기업의 지원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정부 보조금의 올바른 관리, 근본 해결책 제시해야

‘눈먼 돈’이라고 일컫는 몇 종류의 돈이 있다. 정부 보조금이나 출연 등을 통해 조성된 공공기금 등이다. ‘먼저 찾아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이다. 보조금이 주인 없는 돈, 눈먼 돈이라는 얘기는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요즘 유난히 정부 보조금에 대해 말이 많다. 드디어 정부에서 문제해결 의지를 표명한 건가 싶다. 핵심은 타이밍과 맥락이다. 하필이면 정권이 바뀐 시점에 조사가 시작되고 적발된 문제를 보면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내용들이 부각된다. 정말 순수하게 보조금의 오남용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고 해도 공교롭다. 보조금은 우리 사회의 문제해결을 위한 일종의 정부 투자금이다.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서든 접근가능하고, 양쪽 모두 실수와 실패를 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보조금 문제는 정치 공방이 돼서는 안 되며 사회발전을 위한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가져가야 한다. 종종 보조금이나 후원금의 배분심의와 집행 현장 조사에 가게 된다. 돈이 잘못 쓰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특히 보조금 지급 결정은 대체로 정책 결정에 따라 급하게 이루어진다는 데서 문제가 출발한다. 해당 사업 주무 부처는 정해진 기한 내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성과관리가 어려운 질적 성과에 집중하는 대신 사업을 드러내놓고 홍보하기 좋은 다수의 취약 대상에게 배분하는 선택을 한다. 약자 중심의 배분원칙이다. 신생조직, 형편이 어려운 대상, 상대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있는 소규모 단체들에 우선권이 주어진다. 이러한 곳들은 경험과 역량, 행정 여력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어서 지원이 시급한 한편 늘 투명성 리스크가 높다. 보조금 배분에 약자 우선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껌값과 쌀값, 오해와 편견을 넘어

지난해 농업계는 쌀 가격 때문에 큰 혼란을 겪었다.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된 게 문제였다. 곡물자급률이 20%도 채 안 되는 나라에서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 문제라는 설명이 쉽게 받아들여지긴 어려웠다. 농민들은 밥 한 공기의 쌀값이 껌값보다 못해졌다고 한탄했다. 2022년 기준 국내 쌀 생산량은 376만t이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쌀이 생산된 1977년 600만t에 비하면 37% 줄어든 수치였다. 반면에 인구는 3600만명에서 5100만명으로 늘었다. 그러니 쌀이 많이 생산돼 문제라는 진단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쌀 수요가 줄어서 생겨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79년 135.6kg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줄어 지난해에는 56.7kg까지 떨어졌다. 쌀이 많이 생산된 게 문제라고 진단했으니 대책은 쌀 생산량을 줄이는 쪽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대안은 태생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우리나라는 벼농사에 적합한 기후대이고 농업 투자는 대부분 벼농사를 잘 짓는 데 집중됐다. 1995년 발효된 WTO 협정에서도 쌀 시장을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이 모두가 쌀이 너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식량안보를 고려하면 논 면적은 유지해야 하고, 콩과 밀 등 대체 작물은 쌀을 생산했을 때의 소득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밀가루를 많이 먹으면서 쌀을 덜 먹게 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착각이다.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은 1980년 38.4kg였고, 40년이 지난 지금은 36kg으로 약간 줄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식단이 바뀌었다. 건조한 사막기후에 맞게 이 나라는 유목과 밀이 주식 작물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소득이 높아지자 쌀 소비량이 빠르게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지독하게 외롭고 찬란하게 눈부신 엄마라는 세계

경력보유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자립이라는 미션을 정관에 기재하던 3월을 기억한다. 입춘은 지났건만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2019년의 어느 봄. 경력이 단절되고 경제권을 상실했을 때 마주한 건 자본주의에서 돈은 곧 인권, 결정권, 통제권이라는 서슬 퍼런 민낯이었다. 창업과 창간이라는 예상치 못한 인생의 트랙으로 급격한 U자 커브를 그렸다. 엄마의 잠재력에 주목한다는 슬로건에 정작 육아 정보 하나 없는 생경한 엄마의 서사, 사양산업이라는 잡지로 출발한 포포포 매거진이 그 시작이었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모순덩어리의 시간이었다.  대체 누가 왜 보는 걸까. 상상으로 그리던 독자를 찾아 책 박스를 이고 지고 북페어에 나가 누군가의 딸들을 만났다. 그들이 한참 책을 들여보다 머뭇거리며 꺼낸 질문엔 대게 호기심과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엄마가 되어도 제 삶은 망하지 않을까요?”라는 동일한 질문을 꺼내는 다른 얼굴들이 부스를 찾아왔다. 우리가 주고받은 질문은 다음 호 주제가, 존재의 이유가, 성장의 동력이 됐다. 저출산이라는 문제만 있고 여성에 대한 고민은 부재한 현실은 닭 없는 달걀과 같다. 이들에게 한시적인 지원 정책은 20년 뒤에 찾아갈 수 있는 로또 번호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5번은 성평등 달성과 여성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다. 이는 모든 국가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경제 및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와 리더십의 공평한 기회 보장을 포함한다. 유엔여성기구와 유엔글로벌콤팩트는 2010년 ‘성평등을 위한 노력은 더 좋은 기업을 만든다’는 모토로 여성역량강화원칙(WEPs)을 발족했다. 2023년 지금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온통 타인을 돌보는 삶에서 실종된 엄마의 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