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세계은행 관계자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아이엠팩토리를 방문했습니다. 아이엠팩토리는 폐페트병으로 ‘r-Flake’라는 재활용 소재를 만드는 수퍼빈 공장입니다. 세계은행은 UN 산하의 국제금융기구로 전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사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날 방문한 에너지환경 부문 선임담당관인 주누 슈레스타 박사는 지난 수년간 아시아 지역 내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장 방문은 4층에 있는 ‘공존의 공간’에서 시작해 한 층씩 아래로 내려가면서 진행됐습니다. 공존의 공간에는 업사이클 아티스트들이 기부한 강아지 조각, 전등 등이 있습니다. 일부 마감재는 페플라스틱을 사용했죠. 따로 마련된 유기동물 임시보호소도 운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슈레스타 박사는 흔히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재활용 공장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재활용이라는 행위는 결국 문화와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이죠. 3층에서는 순환경제에 대한 콘텐츠를 소개했습니다. 순환자원회수기 ‘네프론’에 페트병과 빈캔을 넣어서 포인트를 적립하는 체험도 진행했습니다. 2층은 통제실입니다. 아래 1층에 있는 거대한 재활용 설비들이 공장 내 서버로 연결돼 생산 현장의 다양한 데이터를 추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활용 소재 생산에 따라 얼마나 많은 탄소배출량이 감축되는지, 또 이렇게 생산된 재활용 소재들이 향후 포장재 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전기전자·섬유 산업 등에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게 목표였다면 실현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재활용이 하나의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 다른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조건에 부합해야 하니까요. 우선은 PET와 같은 특정 플라스틱 소재를 결정하고 작은 범위에서부터 재활용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노력은 구체적으로 세분화되지 않고 큰 범위의 전체 플라스틱을 한번에 해결하기 위한 접근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접근이 결국 폐플라스틱 재활용 분야에서 구체적인 혁신의 사례가 나오기 어렵게 만든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에 기대지 않고 시장의 원리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기업이 시민으로부터 재활용품을 구매하고, 이렇게 구매된 재활용품으로 고부가가치 소재를 만들어서 다시 산업과 연결하는 것이죠. 이러한 사업 구조는 폐플라스틱 문제 해결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으며, 그 대안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은 제도와 정책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렇게 사업이 먼저 치고 나가면 제도와 정책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사실 이러한 순서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슈레스타 박사는 아시아의 많은 개도국이 폐기물 문제, 그중에서도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플라스틱 사용에 점점 엄격해지는 국제 기준과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추세 속에 개도국의 빈곤 문제를 악화시킬 거라고 우려했습니다. 사실 기후위기로 인한 여러 문제가 빈곤과 연결돼 있다는 건 이미 많은 연구로 입증됐습니다. 이 중 폐기물 문제는 개도국의 생존과 환경, 빈곤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정책 개발에 대한 역량이 부족한 개도국에는 시장 기반의 폐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이 필요합니다. 이날 아이엠팩토리를 떠나며 슈레스타 박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재활용의 개념이 다른 차원으로 구현한 현장을 직접 보고 갑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의 사례가 국제 사회에 알려지도록 역할을 하겠습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