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빈 수퍼빈 대표
[쓰레기공장 이야기] 잊어버릴 권리, 기억해야 할 의무

오랜 인연을 이어온 미국의 한 대학교 영화과 교수가 올 여름에 한국에 다큐를 찍으러 왔습니다. 오래간만에 재회한 자리에서 그는 지난 7년 간 필자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폐기물과 쓰레기 이야기를 읽고 다큐멘터리를 구상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잊어버릴 권리, 기억해야 할 의무(Right to Forget, Duty to Remember)’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사용하고 나서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대상물을 버립니다. 버리는 행위는 그 대상물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버린 쓰레기와 폐기물의 흔적을 남기게 되고, 다음 세대는 이 흔적으로 우리를 기억하게 됩니다. 폐기물이 남긴 흔적에 우리의 책임이 있습니다.   멀리 바다나 산 속에 버린 쓰레기로 고통받는 거북이나 고래, 코끼리 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거대한 소각장과 매립장 그리고 다양한 폐기물 처리장 등은 이미 사회의 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흔적들은 불편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가 편리하고 풍요롭기 위해 소비한 이후의 모습들입니다. 실제로 재활용선별장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재활용품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며 살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질문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분리배출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지고 싶은가?”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더럽고 못난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이나 포장재, 일회용품을 사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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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공장 이야기] 우리는 왜 항상 재활용에 실망하고 실패하는가?

지난 22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하는 교사 워크숍에 특강을 다녀왔습니다. 탄소중립 시범학교, 생태전환교육 연구학교, 탄소제로실천 선도학교의 담당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페트병 라벨을 제거하고, 재활용에 관련된 문제를 푸는 영상을 보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각 학교의 활동 결과를 공유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날 워크숍을 주관한 장학사는 탄소중립 시범학교와 생태전환교육 연구학교, 그리고 탄소제로실천 선도학교의 다른 점을 설명했습니다. 프로그램마다 목적과 성격은 달랐지만 결국은 지향점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속가능한 환경이나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이 현장에서는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많은 사람이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 넷제로(Net-Zero), 탄소저감(Carbon Negative), 기후긍정(Climate Postive)의 차이점을 정확히 모르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전주기평가(Life Cycle Assessment) 등의 뜻도 잘 알지 못합니다. 환경이나 재활용 관련 개념이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워지고 복잡해졌을까요? 기점은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입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기존 방식대로 생산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방식으로는 지구생태계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존 생산 방식의 평가, 소비 방식에 대한 제재 그리고 이에 따른 온실가스의 발생량을 측정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방법론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직면한 인류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재활용을 포함한 폐기의 단계에 대해서 지금까지 없었지만 다음세대를 위해 필요한 새로운 제도들을 만드는 중입니다. 재활용 방식도 분리배출과 정부보조금 등의 방식을 벗어나 미래 산업에 맞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설계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활용으로 인한 탄소배출 감축량은 탄소배출권 형태로 자본시장과 연결되며, 순환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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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공장 이야기] 시장의 원리에서 답을 찾다

지난 20일 세계은행 관계자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아이엠팩토리를 방문했습니다. 아이엠팩토리는 폐페트병으로 ‘r-Flake’라는 재활용 소재를 만드는 수퍼빈 공장입니다. 세계은행은 UN 산하의 국제금융기구로 전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사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날 방문한 에너지환경 부문 선임담당관인 주누 슈레스타 박사는 지난 수년간 아시아 지역 내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장 방문은 4층에 있는 ‘공존의 공간’에서 시작해 한 층씩 아래로 내려가면서 진행됐습니다. 공존의 공간에는 업사이클 아티스트들이 기부한 강아지 조각, 전등 등이 있습니다. 일부 마감재는 페플라스틱을 사용했죠. 따로 마련된 유기동물 임시보호소도 운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슈레스타 박사는 흔히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재활용 공장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재활용이라는 행위는 결국 문화와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이죠. 3층에서는 순환경제에 대한 콘텐츠를 소개했습니다. 순환자원회수기 ‘네프론’에 페트병과 빈캔을 넣어서 포인트를 적립하는 체험도 진행했습니다. 2층은 통제실입니다. 아래 1층에 있는 거대한 재활용 설비들이 공장 내 서버로 연결돼 생산 현장의 다양한 데이터를 추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활용 소재 생산에 따라 얼마나 많은 탄소배출량이 감축되는지, 또 이렇게 생산된 재활용 소재들이 향후 포장재 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전기전자·섬유 산업 등에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게 목표였다면 실현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재활용이 하나의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 다른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조건에 부합해야 하니까요. 우선은 PET와 같은 특정 플라스틱 소재를 결정하고 작은 범위에서부터 재활용의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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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공장 이야기] 재활용 사업에도 디지털 첨단기술을 허하라

2023년 5월 25일. 대한민국은 누리호 3차 발사에 성공하면서 우주강국 G7에 합류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전기차로 유명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대표는 자율주행 시대를 눈앞에 뒀다고 공언합니다. 또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장비 하나로 건강, 통신, 음악, 영상, 금융서비스와 쇼핑까지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종종 폐지를 줍는 할머니, 공병을 모으러 다니시는 할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작은 카트나 손수레를 끌며 직접 재활용품을 수집합니다. 또한 우리도 가정에서도 분리배출에 정성을 다합니다. 도시 곳곳에는 고물상이 있고 그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고철, 책이나 종이박스 등 폐지, 망가진 전자제품, 사용하지 않는 화분 등 우리 생활에서 나온 수많은 폐기물이 쌓여 있습니다. 좀 더 재활용품을 따라서 들어가 보면 재활용선별장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많은 사람이 선별라인에서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재활용품 더미 안에서 진짜 재활용될 것을 손으로 골라냅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재활용품들이 결국 기대하는 것처럼 유용하게 재활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활용이 잘 되려면 결국 재활용품을 활용한 제품으로 시장에서 돈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갖고 있어야 하며, 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싶은 재활용품을 수급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를 산업의 공급망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명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재활용의 가장 큰 변화는 “재활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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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공장 이야기]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로

날씨는 따뜻해지고, 바야흐로 봄입니다. 식욕과 소비 욕구가 덩달아 충만해지는 계절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꼭 갖고 싶은 옷이나 신발, 가방도 많고, 매력적인 전자제품도 눈에 밟히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 음식들도 넘쳐납니다. 이러한 풍요와 편리함은 인류가 만들어 온 위대한 문명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 문명에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쓰레기와 폐기의 현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쓰레기 현장의 규모는 너무나 크고 위협적이며 심지어는 어둡고 침침해서 누구도 그 실체와 모습을 직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번 용기를 내서 함께 한번 상상해 볼까요? 우리 사회는 수많은 산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화장품 산업, 장난감 산업, 음식이나 음료 산업, 전자제품 산업 그리고 생필품 산업 등. 이렇게 많은 산업에서 생산한 제품들은 결국 어디로 갈까요? 제품마다 약간의 시차는 있겠지만 결국은 모두 쓰레기장으로 모입니다. 그러면 그 모든 걸 받아내야 하는 쓰레기장의 규모는 얼마나 커야 할까요? 상상이 가시나요? 아마도 우리 문명이 생산하는 모든 제품을 순차적으로 다 담을 수 있는 규모여야 할 겁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요즘 그 유명한 ‘챗GPT 4.0’에 물어봐도 좋습니다. 그 정도 크기의 쓰레기장을 가진 나라나 도시를 찾아 줄 수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많은 쓰레기가 쓰레기장 안에 다 담지 못하면 나머지 쓰레기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우주로 가거나 공기 중에 분해됐을까요? 아마도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바다로, 강으로 또는 땅속으로 들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너무 좌절하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좀 더 자세히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