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쓰레기공장 이야기] 잊어버릴 권리, 기억해야 할 의무

김정빈 수퍼빈 대표
김정빈 수퍼빈 대표

오랜 인연을 이어온 미국의 한 대학교 영화과 교수가 올 여름에 한국에 다큐를 찍으러 왔습니다. 오래간만에 재회한 자리에서 그는 지난 7년 간 필자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폐기물과 쓰레기 이야기를 읽고 다큐멘터리를 구상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잊어버릴 권리, 기억해야 할 의무(Right to Forget, Duty to Remember)’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사용하고 나서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대상물을 버립니다. 버리는 행위는 그 대상물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버린 쓰레기와 폐기물의 흔적을 남기게 되고, 다음 세대는 이 흔적으로 우리를 기억하게 됩니다. 폐기물이 남긴 흔적에 우리의 책임이 있습니다.

멀리 바다나 산 속에 버린 쓰레기로 고통받는 거북이나 고래, 코끼리 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거대한 소각장과 매립장 그리고 다양한 폐기물 처리장 등은 이미 사회의 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흔적들은 불편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가 편리하고 풍요롭기 위해 소비한 이후의 모습들입니다. 실제로 재활용선별장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재활용품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며 살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질문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분리배출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지고 싶은가?”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더럽고 못난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이나 포장재, 일회용품을 사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꼼꼼히 공부하고 따져봐서 기업들의 그린워싱(Green Washing, 거짓 친환경 제품)에 속지 않으면 됩니다. 작은 행동 하나가 결국 흔적이 되고 이 흔적들이 나를 설명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더 나아가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뿐만 아니라 폐기물과 재활용 산업 내 있는 기업들의 역할도 많이 변화해야 합니다. 최근 페트병 분리배출 제도 덕분에 페트병 무인회수기가 많이 보급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인회수기 중 수집단계에 정확한 선별 기능없이 재활용품을 파쇄를 해서 수집하는 제품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고품질 재활용을 위해서는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파쇄보다는 형태를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압착으로 수집해야 최종 재활용 가공공정에서 정확한 선별과 품질 가공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게 작동됩니다. 예를 들어 페트병을 모아 다시 페트병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활용 대상 플라스틱이 반드시 페트병으로만 모아져서 가공됐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수집단계에서 파쇄해버리면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또한 수집단계에서 파쇄는 조각 플라스틱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쓰레기와 폐기물, 재활용과 연관된 수 많은 문제에 완벽한 답은 없지만 대안 들 중에서 무엇이 더 옳은가를 판단하는 기준과 방법은 있습니다. 기업들이 돈을 위해서,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옳지 않은 방법을 선택하지 않도록 우리가 제품과 서비스의 환경 가치를 잘 판단하고 또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이 바로 기업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쓰레기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 그래서 행동을 바꿔서 우리의 흔적까지 바꾸는 변화는 그 어떤 물질적 자산보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귀한 문화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누군가의 부모이고 또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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