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고민 끝에 찾은 답은 ‘ESG’

[인터뷰] 진재승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비상장 기업이 ESG위원회를 설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내 대기업들이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를 두고 관련 정책을 챙긴 지도 1~2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상장 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고, 상장을 앞둔 그룹 계열사가 대부분이다. 유한킴벌리는 지난해 7월 CEO 직속으로 ESG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이사회 구성원과 주요 경영진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비상장사인 유한킴벌리가 의무적으로 따라야 할 사항은 아니다. 이러한 행보를 주도한 진재승(58) 대표는 “미래를 위해 가야 할 길이라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서 “ESG 각 분야별 소위원회와 리더급으로 구성된 실무 그룹 위원회를 꾸려 ESG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재승 유한킴벌리 대표는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해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만난 그는 “기업의 핵심 주체는 결국 사람”이라며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함께 성장해야만 기업도 지속가능하다”고 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진재승 유한킴벌리 대표는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해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만난 그는 “기업의 핵심 주체는 결국 사람”이라며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함께 성장해야만 기업도 지속가능하다”고 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26일 방문한 서울 송파구 유한킴벌리 본사는 한산했다. 매달 두 번씩 시행하는 ‘재충전의 날’이라 직원 대부분이 출근하지 않았다. 이날 만난 진재승 대표는 “지구 환경을 위하는 경영이 중요한 만큼 직원들이 충분히 쉬고 생각할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 ESG에 대한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높은데 결국 제도로 만들어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SG 시작, 직원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사회(S) 부문 소위원회를 직접 챙기신다고요.

“외부에서 위원을 모시기보다 협업에 종사하는 이사회 멤버로 목표와 방향을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환경은 제조부문장인 부사장이 맡고, 사회는 최고경영자(CEO), 거버넌스(G)는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주도합니다. 현업 종사자들이 챙길 수 있는 디테일이 있으니까요.”

―내부 반응은 어떻습니까.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죠.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직접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지난해 1월 취임한 이후부터 전 직원 1500여 명을 대상으로 1대1 미팅을 진행하고 있어요.”

―물리적으로 가능한가요?

“천천히 해나가면 됩니다. 요식행위가 되면 안 되니까 한 사람당 20분 정도 진행해요. 하루 2~3명씩 만나도 2년 6개월 정도 걸립니다(웃음). 지금 약 40% 정도 면담을 마쳤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가나요?

“우선 라포르(rapport) 형성을 위해 개인적 고민이나 가족 이야기를 하죠.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겪은 일이나 취미활동, 가족과 일어난 에피소드요. 분위기가 풀리면 회사의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눕니다. 그러면 솔직한 이야기들이 나와요. 일례로 1984년에 시작한 공익 캠페인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가 경영학 서적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지만,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더 강화하자는 얘기도 나왔어요(웃음).”

―캠페인 덕에 일찍이 ESG 경영을 도입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1980년대 기업의 미덕은 성장이었습니다. 유해 물질을 배출에 대한 고려 없이 생산 라인을 최대로 돌려 매출을 올리는 게 기업의 역할이라고 했으니까요. 덕분에 당시 한국은 연평균 경제성장률 9.7%를 기록할 정도로 고도 성장을 이뤘지만, 결국 기업은 사회·환경과 함께 가야 한다는 명제로 귀결됐습니다. 캠페인은 말 그대로 선언이고 상징이죠. 결국 그 아랫단에서 실천해야 하는데, 캠페인을 40년 가까이 이어온 덕에 기업의 정체성과 사회적 책무를 잊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ESG 경영, 고객의 마음을 읽는 것

진재승 대표는 1989년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입사 당시에도 구직자들 사이에 ‘좋은 기업’ 선호가 있었다”며 “기업이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지배 구조가 건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이제 ESG 열풍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유한킴벌리는 기저귀와 생리대, 티슈 등 일회용품을 주로 만듭니다. 업을 지속하려면 지구 환경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죠. 국내외에 지금까지 54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고 가꿨고, 몽골에서만 1000만 그루 이상 나무 심기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제품 소재도 친환경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데, 유한킴벌리의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린 액션 얼라이언스(Green Action Alliance)’라는 협의체를 이뤄가기 위해 LG화학, 롯데케미칼을 시작으로 여러 기업과 협력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ESG는 혼자 할 수 없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소비자들은 친환경 제품을 원하고, 기업은 혁신을 통해 해답을 찾아야 하지요. 제조업은 서플라이 체인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제품에 쓰이는 원자재 공급이 제대로 돼야 하는 거죠. 기저귀 하나도 안감, 부직포, 흡수체, 방수포, 고무줄 등 다양한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소재를 만드는 전문성 있는 기업들의 노력이 필요한 거죠. 소재, 제조, 물류, 유통, 폐기 등 각 부문 기업들이 동시에 ESG 측면을 고려해야 진짜 ESG 제품이 나오는 겁니다.”

―위생용품에 대한 소비자의 친환경 요구가 유독 큽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냐는 것과 시장에서 살아남느냐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조금 더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그렇다고 품질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곧장 고민에 빠져요. 소비자들의 기준은 엄청나게 까다롭습니다. 기저귀를 예로 들어볼게요. 현재 100% 유기농 순면 커버 소재 기저귀를 공급해 오고 있는데요. 거슬러가면 2008년에 친자연 제품을 목표로 기저기 상품을 출시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점유율이 1~2%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제품력과 환경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개선 작업을 거듭했고 현재 국내 기저귀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효자 제품이 됐어요. 처음에는 미약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소비자들의 선호를 파악하면서 개선하고 보완하는 것도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뚝심’이 반드시 성공하진 않습니다.

“물론 방향 설정이 우선이겠죠. 친환경은 이미 결정된 방향입니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기술을 개발하고, 소비자 만족도도 높일 수 있어요. ESG 요소를 고려하면서 경영을 하는 게 쉽진 않으니까, 먼저 만들어 보고 시도해본 기업들이 선도할 수 있어요. 캠페인으로 나무를 심더라도 어느 지역에 심고,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는 오래 사업을 지속해야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에서 반응할까요?

“시장은 결국 경쟁이니까 좋은 제품이 나오면 반드시 다른 기업들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밸류체인 전반에 ESG 요소가 도입된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시장에서 선호하고, ‘스노볼 임팩트’처럼 결국 산업계 전체가 따라가게 될 겁니다.”

―기업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은 뭔가요?

“언젠가 이런 생각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회사의 의사 결정권자는 누구인가.’ 이따금 고민해 봤는데 대표이사는 아니었어요. 소비자, 즉 대중이 원하는 방향을 파악하고 결정하는 게 대표였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대중이 기업을 움직이는 거죠. 지금 ESG 열풍도 대중이 원하는 여러 요소가 한 키워드로 대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는 ‘오늘날의 모든 사회적 이슈에는 감춰진 기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ESG는 기업에 기회이면서 지속가능한 길입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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