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우크라이나 난민 르포] 부서진 터전, 사라진 삶 되찾을 때까지

“이곳을 떠나야 한다. 국경을 넘어라. 러시아 군인들이 들어오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엄마와 함께 일단 떠나라.”

아버지가 딸에게 말했다.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출발해 이웃 나라 몰도바를 거쳐 루마니아까지 직접 차를 몰고 가야 하는 험난한 피란길이었다.

2월 24일(이하 현지 시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러시아 군함이 들이닥친 오데사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설득에 못 이겨 옐리자베타 마르첸코(22)는 엄마와 함께 피란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57세의 아버지는 고향에 남아야 했다. 18~60세 우크라이나 남성을 대상으로 전시 총동원령이 내려지면서 출국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차를 정비했다. 기름도 가득 채워넣었다. 3월 2일 새벽, 모녀는 집을 나섰다.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나 믿지 말아라.”

헤어지기 전 아버지는 딸에게 여러 차례 당부했다. 가족은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날은 옐리자베타의 스물두 번째 생일이었다.

두 달 넘게 계속된 전쟁으로 4월 말 기준 우크라이나 국민 1300만명이 피란민 신세가 됐다. 전체 인구(약 4100만명)의 4분의 1이 넘는 숫자다. 530만명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났고, 770만명은 국내를 떠돌고 있다.

난민들이 처한 인도적 위기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국제구호개발 NGO인 ‘한국월드비전’과 함께 루마니아를 찾았다. 지난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제2의 도시인 ‘이아시’,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인 ‘시레트’ 등을 돌며 우크라이나 난민을 만났다. ‘루마니아월드비전’ 자원봉사자로 합류한 옐리자베타가 한국 팀의 일정을 함께 하며 통역을 도왔다.

지난 4월 12~16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처한 인도적 위기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월드비전’과 함께 루마니아를 찾았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제2의 도시인 ‘이아시’, 우크라이나 접경 ‘시레트’에서 난민들을 만났다. 격전지인 ‘마리우폴’에서 피난온 폴리나 양. 이웃집이 폭격을 맞아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시레트=루마니아월드비전

# 전쟁을 목격한 눈동자

루마니아 이아시 공항에서 차로 4시간을 달려 국경 검문소가 있는 시레트에 도착했다. 4월 14~15일 이틀간 국경 근처에 머물며 난민들을 인터뷰했다.

국경에 도착해 처음으로 만난 우크라이나 난민은 딸과 함께 수도 ‘키이우’에서 피란 온 여성 엔지니어였다. 여행 가방을 끌면서 지나가는 모녀를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이 신장 투석을 받고 있어요. 전쟁이 나서 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투석도, 치료도 못 받고 그냥 누워 있어요. 피란도 같이 올 수가 없었어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남편을 우크라이나에 혼자 두고왔어요.”

엄마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 딸이 엄마의 등을 만지며 위로했다. 아내로, 엄마로, 직장인으로 평범하게 살았지만 보통의 삶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루마니아까지 어렵게 왔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다. 동생이 있는 캐나다로 떠날 예정이라고 말하며 모녀는 자리를 떴다.

일곱 살, 열한 살 된 두 딸을 데리고 입국한 한 여성은 “많이 지치고 힘든 상태”라고 했다. 그는 “‘도네츠크’에서 키이우를 거쳐 루마니아로 왔는데 기차를 타기 위해 400㎞를 걸었다”면서 “도로 곳곳이 봉쇄됐고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눈을 녹여서 끓여 먹었다”고 했다.

’도네츠크’에서 온 여성과 두 딸. 도시가 파괴되면서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눈을 녹여서 끓여먹기도 했다. /시레트=루마니아월드비전

‘마리우폴’에서 온 피란민 폴리나(11)양은 자진해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섰다. 고향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마리우폴은 이번 전쟁의 최대 격전지다.

“폭격으로 집이 마구 흔들렸어요. 옆집은 폭격을 맞아 사라졌고 차도 터져버렸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마리우폴을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어요.”

폴리나는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어린아이의 눈동자는 차갑고 황량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4월 중순까지 루마니아로 넘어온 우크라이나 난민은 78만300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90%가 여성과 아이들이다. 실제로 국경에서 만난 난민 대부분이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우크라이나 난민 취재 일정을 함께한 조명환 한국월드비전 회장은 “전쟁으로 아이들이 받는 상처와 불안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면서 “난민 아이들의 심리 지원, 교육권 보장을 위해 전 세계 월드비전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4월 13일(현지 시각)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 있는 난민센터 ‘롬엑스포’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이 2시간 동안 열렸다. /부쿠레슈티=루마니아월드비전

# 그들도 나를 도와줬을 테니까

국경을 넘어온 피란민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 구호 단체들이다. 쭉 뻗은 이차선 도로 양옆으로 글로벌 NGO의 로고가 박힌 천막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전 세계 NGO들은 전쟁 초반부터 국경 지역에서 긴급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쉼터와 음식, 위생 키트, 생필품 등을 제공하고 국경 지역 소방관들과 협력해 난민들의 이동을 돕는다.

월드비전 직원인 알베르토 드로카는 전쟁 발발 다음 날인 2월 25일 시레트로 달려와 지금까지 국경에서 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어요. 열일곱 살 남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국경을 넘어왔는데 오자마자 울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이 대부분 18세가 넘어서 출국을 못 했는데 자기만 생일이 안 지나서 나왔다며 친구들이 너무 걱정된다고 했어요. 혹시 전쟁에 나가서 다치거나 죽진 않을까 두렵다고 했어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도대체 왜 난민을 도와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면 마음이 바뀔 거예요.”

난민을 돕기 위해 국경으로 매일 출근하는 시민 자원봉사자도 많다. 클라라 추치코(14)양도 그중 한 사람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터전이 파괴되고 병원과 학교가 공격받고 민간인이 죽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고요? 만약 내가 난민이 된다면 분명히 누군가 나를 도와줬을 테니까요.”

클라라는 국경에서 20㎞ 떨어진 도시에 산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 국경으로 와서 피란민들을 돕고 있다. 벌써 42일째다.

“말하는 것조차 힘든 이야기가 있어요. 키이우에서 온 여섯 살 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어딘가 좀 충격을 받은 것 같았어요. 알고 보니 이웃에 살던 임신부가 러시아 군인에게 총격을 당해 죽는 장면을 봤다고 했어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전쟁 초기 발디딜 틈 없이 붐볐던 국경은 이전보다 한산한 모습이었다. 한 달 전만 해도 난민들이 서류를 확인하고 등록하는 데에만 7~8시간씩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그때만큼 사람이 많지 않다. 국경 분위기를 살피던 김동주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국경 지역에 집중되던 NGO들의 지원이 점점 난민센터로 옮겨가고 있다”면서 “남의 나라에서 장기간 생활해야 하는 난민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우크라이나 내부에 남아있는 피란민은 어떻게 도울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 외곽의 작은 교회가 운영하는 난민 쉼터. 우크라이나 아동들이 교회에서 마련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부쿠레슈티=루마니아월드비전

# ‘시민’이 ‘난민’을 만났을 때

13일에는 루마니아 최대 난민센터인 ‘롬엑스포’를 찾았다. 부쿠레슈티에 있는 롬엑스포 난민센터는 위치부터 파격적이다. 수도 외곽이 아닌 중심지에 자리한 대형 컨벤션센터를 난민센터로 지정해 접근성을 높였다. 러시아가 오데사로 진격할 경우 루마니아로 난민이 쏟아질 것을 대비해 2000개의 침상을 마련해 뒀다. 입구에서는 부쿠레슈티 공무원들이 난민들의 정보를 등록하고, 안쪽에서는 NGO들이 필요한 식품이나 생필품을 제공한다.

월드비전은 이날 롬엑스포에서 난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진행했다. 페이스 페인팅, 버블쇼, 매직쇼 등이 2시간 동안 펼쳐졌다. 호랑이 그림 페이스 페인팅을 한 카밀라(3)양에게 기분이 어떤지 물었더니 대답 대신 ‘으르릉’ 하고 호랑이 흉내를 내며 웃었다. 김동주 팀장은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은 매주 수요일 진행될 예정”이라며 “낯선 땅에 온 난민 아동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일상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도 외곽에 있는 작은 교회가 운영하는 난민 쉼터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교회 부설 유치원 건물 2층에서 13명의 아이들이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절반은 난민 아동, 절반은 지역 주민의 자녀들이었다.

전쟁이 터진 후 교겔 앙겔 목사는 방학을 맞아 비어있던 교회 유치원을 난민 쉼터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지역에 사는 대학생 15명이 난민을 위해 통역 봉사를 해주고 주민 30명이 번갈아가며 자원봉사자로 나서주고 있다. 월드비전은 이 교회에 난민 아동을 위한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5월부터는 난민 아동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교회 한쪽 공간에 온라인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할 계획이다. 온라인 강의에 필요한 태블릿 등 기기와 교재는 월드비전이 지원한다.

앙겔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난민들이 우리 쉼터에 머무르게 됐을 때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가장 중요한 미션입니다. 같이 공놀이하고 공부하고 서커스도 보러 다니면서 우리를 이웃으로, 친구로 느끼면 좋겠어요. 집을 떠나온 난민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이곳에서 집처럼 편안히 생활하길 바랍니다.”

전쟁이 끝나도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NGO들의 지원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부서진 터전과 삶, 마음을 복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월드비전의 지원 목표액은 8740만달러(약 1113억원). 한국은 이중 200만달러(약 25억원)를 지원할 계획이다.

루마니아에서 만난 시민들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향한 지지와 연대를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로 입을 맞춘 것처럼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그들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보호받아야 하고 관심받아야 한다. 그들이 터전과 일상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부쿠레슈티·이아시·시레트=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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