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1일(일)

‘여성의 삶’ 응원한 40년 발자취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40주년]

여성의 역사에는 굴곡이 많았다. 40여 년 전까지도 우리나라에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았다. 1980년 국내 여성 청소년의 고등학교 취학률은 56.2%였다. 그 나이대 여성 청소년 2명 중 1명만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셈이다. 대학교 취학률은 8.1%. 남성의 절반 수준이었다.

1990년대에는 민주화 물결을 타고 다양한 여성 이슈가 조명됐다.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한 굵직한 법들이 제정되는 등 여성운동도 탄력을 받았다. 여성을 지원하는 단체 수도 크게 늘었다. 2000년대에는 ‘여성의 일’이 화두였다. 여성의 교육 수준은 높아졌지만 출산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 몫이었고 여성은 사회 진출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1982년 설립된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설립명 태평양 복지회)의 역사는 우리나라 여성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1980·90년대 재단의 주요 사업은 ‘여학생 교육 지원’이었다. 1990년대부터는 ‘여성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업에도 집중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여성 시설에 생필품을 전달하고 시설 개·보수 등을 지원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여성의 자립’을 돕기 위해 다양한 여성 취업 지원 사업을 전개했다. 지난해 기준 재단의 누적 지원금은 약 153억8500만원. 지원 건수는 6만여 건에 달한다. 화장품 기업으로서 여성과 함께해 온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의 40년을 돌아봤다.

‘여성의 공간’을 만들어 드립니다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이 여고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건 설립 이듬해인 1983년부터다. 1989년 기준 여고생 4000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1990년 여성의 고등학교 취학률은 85.4%로 크게 높아졌지만, 대학교 취학률은 24.5%로 여전히 낮았다. 당시 대학생 104만명 중 여대생은 29만6100명(28.5%)에 불과했다. 1993년 여대생 장학금 사업을 신설한 이유다.

1990년대는 국내 여성운동의 전성기였다. 민주화 분위기에서 환경·장애인·노동 등 이전까지 묻혀 있던 다양한 이슈가 드러났다. 여성의 인권 문제도 주요 담론으로 떠올랐다. 가정 폭력과 성폭력, 고용 불이익 같은 주로 여성이 피해자인 상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1995년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사회 영역에서 남녀평등을 촉진하고 여성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내용의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됐다. 이는 본격적인 여성 정책 추진의 발판이 됐다. 1998년에는 법무부, 노동부 등 정부 6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설치됐다. 이후 노동시장에서 성차별을 금지하고 여성 노동권 보장을 위한 각종 제도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여성을 돕는 단체도 증가했다. 그러나 재정 상황은 열악했다. 단체들의 연간 예산 규모는 100만원부터 36억원까지 편차가 컸다.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은 1996년부터 미혼모나 여성 장애인, 여성 노인 등을 위한 시설에 생필품을 지원했다. 화장품처럼 아모레퍼시픽에서 제공할 수 있는 물품 외에도 차량, 주방용품 등 시설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현물을 전달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공간 개선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부모가정센터, 여성 청소년지원센터 등 낙후한 여성 시설을 안락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해주는 사업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여성이 언제든 편안하게 휴식하고 공감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였다. 2005년에는 목욕 시설과 화장실을 대상으로 하다가 2009년 휴게실·교육장·상담 공간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2015년부터는 시설 성격에 따른 맞춤형 공간 컨설팅, 해당 공간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지원, 사후 관리, 정리 수납 컨설팅 등으로 확장했다. 지난해까지 72억8075만원을 투입해 578곳의 환경을 개선했다.

2019년 한국여성재단이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의 공간 개선 사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단체 역량과 이용자 만족도, 구성원 간 소통 횟수 등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자들이 하루 평균 머무는 시간은 76.2분에서 119.7분으로 크게 증가했다. 시설에 입소한 한 이용자는 “이전에는 강당이 꼭 수용소 같아서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한다고 해도 조금 무서웠는데 이렇게 예쁜 공간에서 참여한다면 더 재밌을 것 같다”고 했다.

2011년부터는 ‘희망날개’ 사업을 통해 이주 여성 커뮤니티를 지원했다. 문화 콘텐츠 창작 활동을 독려하고, 페스티벌을 여는 등 이주 여성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도왔다. 4년 동안 57개소에 6억8500만원을 지원했다.

여성의 일, 여성의 자립

2000년대에는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성들도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고용 시장의 문은 남성에게 더 넓었다. 2008년 전체 취업률은 여성(75.4%)이 남성(78%)에 비해 여전히 낮았다. 정규직 취업률은 여성이 52.3%, 남성이 60%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취업에 성공해도 여성에게는 여전히 출산과 육아, 가사 노동의 부담이 지워졌다. 이는 기혼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이어졌다.

1997년 IMF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 두 번의 경제 위기를 거치는 동안 근로자 소득이 줄면서 남성 가장의 홀벌이로는 가계 경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맞벌이의 필요성이 커졌다. 자녀를 어느 정도 키운 여성들은 다시 노동시장으로 나와야 했다. 2011년 맞벌이 가구 비율(43.6%)이 홀벌이 가구 비율(42.3%)을 추월했다. 하지만 재취업하는 여성들은 경력 단절 전에 비해 종사상 지위가 낮은 일자리를 얻어야 했다. 이 같은 여성의 상황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2008년에는 ‘경력 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이 제정됐다. 경력 단절 여성이 다시 노동시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상담, 직업훈련, 구직 활동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은 저소득층 여성의 일자리를 주목했다. 저소득층 여성은 특히 충분한 취업 준비 기간이나 교육 기회를 확보하기 어려워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재단은 2008년부터 최근까지 ‘뷰티풀 라이프’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경력 단절 여성, 중·장년층 여성 등 대상자 상황에 맞춘 직무 교육을 제공하고 취업 가능한 기관과 연계한다. 온라인 창업, 장애인 인식 개선 전문 강사 등 진로는 다양하다.

이 밖에 여성이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육아로 인한 부담이나 정서적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와 심리 상담 서비스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한다. 경력 단절 여성을 정리 수납 컨설팅 전문가로 육성해 공간 시설 개선 사업과 연계하기도 한다. 정리 수납 컨설턴트 과정을 수료한 경력 단절 여성이 여성 시설에 방문해 공간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뷰티풀 라이프 사업에 123억3000만원을 지원했으며, 4423명이 참여했다.

김태우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사무국장은 “일자리 지원 사업 대상을 취약 계층이 아닌 모든 여성으로 확대하고, 뷰티 산업에 특화된 아모레퍼시픽의 장점을 활용한 취업 연계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여성과 관련된 새로운 사회문제를 발굴해 시대상에 맞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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