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수적인 나라 아일랜드에서 낙태죄 폐지 이룬 힘은 하나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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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소원 심판이 7년 만에 다시 열린다. 헌법재판소가 다음달 초 선고 예정인 이번 심판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가운데 무엇을 우선시 하느냐가 쟁점인 사안. 지난 2012년 ‘합헌’으로 결론 났던 헌법적 판단이 뒤집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에 심리 중인 조항은 낙태한 임부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형법 269조 1항)’와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270조 1항)’가 있다. 현재 국내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강간·준강간· 근친상간·유전학적 질환 등을 제외한 낙태 행위는 전면 불가다. 불법 낙태 시술을 받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하고, 시술한 의사 또한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는 여성계와 시민단체들은 “낙태죄의 가장 큰 문제는 여성의 몸을 통제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며, 낙태의 고통과 무게를 여성에게만 전가한다는 점”이라며 헌재를 압박하고 있다. 낙태죄 헌법소원 심판을 앞두고, 그레이스 윌렌츠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지부 낙태 비범죄화 캠페인·조사 담당관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 2월 22일 ‘시민사회, 낙태죄 위헌을 논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그를 인터뷰했다.

그레이스 월렌츠 담당관은 “낙태죄 폐지를 위한 국민투표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국제앰네스티는 지속적으로 ‘낙태 비범죄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낙태가 비범죄화 되어야 하는 이유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많다. 낙태 비범죄는 국제보건기구(WHO) 등을 포함해 국제적으로 광범하게 인정되고 있다. 무엇보다 법적으로 낙태에 대한 규정은 낙태가 필요한 여성의 의지를 바꾸지 못한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안전한 낙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건강, 안전, 자기결정권 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들이 자신의 건강과 몸, 삶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의료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기소에 대한 두려움은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료의 본질을 잃게 만든다. 낙태는 정부가 법과 규정, 그리고 의료기준에 적용되는 다른 보통의 건강 보건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그는  “낙태 범죄화는 어떻게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일랜드에서 태아의 치명적 장애진단을 받고도 낙태를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야 했던 두 명의 여성, 아맨다 멜럿(Amanda Mellet)과 소이한 윌란(Siobhan Whelan)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멜럿과 윌란은 자신이 겪은 일을 유엔 자유권위원회에 진정했고, 위원회는 아일랜드의 낙태금지법이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굴욕적인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면서 “낙태 범죄화로 인한 수치심과 낙인이 두 여성에게 심각한 고통을 주었다”고 지적했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5월 낙태죄를 폐지했다. 가장 보수적인 국가중 하나인 아일랜드에서 낙태죄 폐지는 어떻게 이슈화됐나.

“아일랜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톨릭 국가로, 지난 1861년 낙태 금지법을 제정한 이후 157년간 이를 유지했다. 낙태를 하면 최고 징역 14년형에 처했다. 아일랜드에서 낙태를 허용했던 경우는 임부의 생명이 위독한 경우뿐이었다. 수정 헌법이 발효된 이후 약 17만 명의 아일랜드 임신부가 영국 등에서 ‘원정 낙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년 인도 출신의 당시 31세이던 할라파나바르가 태아가 생존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불법이라는 이유로 낙태수술을 거부당했다. 결국 태아가 숨지고 나서 수술을 받았지만 후유증인 패혈증이 악화해 산모가 숨지면서 여론이 형성됐다.”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아일랜드 정부는 지난 5월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투표 참가자 66.4%가 폐지를 찬성해 낙태금지를 규정한 1983년의 개정 헌법 제8조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아일랜드에서는 여성이 원할 경우 임신 12주 이내, 태아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나 임부 건강이 위험할 때에는 12∼24주 사이 낙태가 가능해졌다.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지부에서 근무하며 낙태 비범죄화를 촉구하는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지부는 2014년부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는 낙태를 전면 금지한 수정헌법 8조를 성공적으로 폐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는 새로운 낙태 관련 법을 모니터링하고, 여성의 낙태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It’s Time’ 캠페인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2015년 9월 26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낙태금지법 개정을 요구하며 사람들이 모여 행진했다.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의 낙태 합법화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나?

“수 년 동안 여성들과 시민사회는 문제의 심각성을 확산할 수 있는 여러 플랫폼을 활용했다. 특히 낙태 금지법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있는 여성들을 목소리를 듣고 세상에 알리는 데 집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확산할 수록 아일랜드 시민들이 낙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낙태를 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거나 자체적으로 구한 불법 낙태 약을 복용해야 했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의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공식적으로 공유되거나 가족 혹은 주변을 통해 퍼져 나가면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여성들이 낙태를 필요로 하는 복잡한 이유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국제 사회의 공조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대대적인 글로벌 캠페인을 통해 유엔인권기구들로부터 아일랜드의 낙태죄가 여성과 소녀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강력한 비판을 이끌어냈다. 이 모든 캠페인과 전략들이 합쳐져 아일랜드 정부를 압박할 수 있었고 마침내 시민의회의 설립과 의회특별위원회의 구성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아일랜드 정부는 금지조항 삭제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시민 절반 이상이 낙태 비범죄화에 찬성해, 낙태금지를 규정한 헌법 제8조가 폐지됐다.”

현재 OECD 35개국 중 25개국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 7개국은 의사와 상담하고 숙려 기간을 거친 뒤 낙태할 수 있으며 노르웨이, 캐나다 등 18개국은 제한 없이 본인 요청에 따라 낙태가 가능하다.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영국 등 5개 국가에서는 조건부 낙태를 허용한다. 반면 한국, 뉴질랜드, 이스라엘, 칠레, 폴란드 5개국에서는 낙태가 불법이다.

–낙태에 관한 국제 사회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미 국제 사회는 임신 초기에 ‘여성의 요청이 있을 경우’ 낙태를 할 수 있게 권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 여성의 건강과 삶이 위협받거나, 성폭력으로 임신한 경우, 또는 태아에게 치명적인 신체 혹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경우 등 최소한의 범위에서 임신 후기에도 낙태가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한국도 낙태죄 헌법소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아일랜드 캠페인 담당관으로서 한국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전인 2015년,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지부는 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낙태에 대한 입장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조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종교가 낙태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사에 응답한 사람들 중 종교가 있다고 답한 사람의 82%는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고 밝혔고, 절반 이상의 사람들(56%)은 낙태를 인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에 찬성하며 그 이유로 낙태를 결정할 여성의 권리와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권리 간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도 아일랜드만큼 보수적인 국가이지만 현재 많은 여성들이 낙태죄 폐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알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여성의 숫자가 늘어갈수록 침묵과 낙인은 무너지고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박민영 더나은미래 기자 bad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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